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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5. 2021

D-10 | 프랑스까지 갔는데 삥을 뜯겨야 하나요


해외에서 한달살기의 빛과 그림자 중 그림자만 느끼고 온 여행기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여섯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모르는 버스 타기


지하철은 차량 내부에 노선도가 있고 역이 몇 개 되지 않아서 타기가 편하다. 그러나 버스는 정류장도 훨씬 많고 이동도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지금 이 버스가 어디로 갈지 알기 힘들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암호를 해독하듯 이 버스가 어디로 갈까 내가 원하는 그곳으로 갈까, 찾아보고 있는데 다행히 버스 전체 노선도가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앙티브 시내에서 출발해 도시 이름은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그곳, 시내 위쪽으로 가는 노선이 딱 하나 있었다. 6번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마침 6번 버스가 서 있었는데 문이 닫혀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출발하려나, 답답한 마음을 여미고 가만히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데 버스정류장 부스 뒤편에서 계속 시끌시끌하던 남자들 중 한 명이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나에게 뭔가를 말한다. 나는 얼굴로 열심히 물음표를 그리며 암 쏘리? 하고, 그 사람은 프랑스로 말했다가 영어로 말했다가 한다. 남자는 나보고 좀 알아들으라고 이리저리 애를 쓰는데 나는 끝까지 암 쏘리? 암 쏘리… 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만다. 사실 대충은 알아들었다. 남는 돈 있냐고 하는 것 같았는데, 프랑스까지 와서 삥 뜯기고 싶지 않아서 프랑스어도 영어도 못하는 척했다. 그 남자는 알겠다며 사라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 아예 내 옆으로 와서는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 암프롬코리아.

- 싸우스?


싸우스는, 싸우스는, 싸우스는, 뭐였더라. 조금 전 영어 모른 척의 후폭풍인지, 싸우스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 놀스?

- 오 노, 싸우스.


아아아 그래, 북쪽이 놀스지, 그럼 난 싸우스. 내가 대답을 좀 늦게 하니 그 사람이 미심쩍은 듯 쳐다본다. 그 사람은 말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 듯 한참 고민하더니 아주 힘겹게, 북쪽은 압박이 심하지, 라고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나처럼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프랑스인인가 보다. 남쪽은 그렇지 않지? 라고 묻는 남자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데모크라시(민주주의)” 하고는 말았다. 남자는 오케이굿 바이 하고는 젠틀하게 사라졌다. 너 영어 할 수 있네, 그럼 나돈 좀 줄래, 라고 할까 봐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 나만 혼자 떨어져 서있었다. 급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후다닥 자리를 옮겼다.


이 타이밍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참 멋쩍지만, 나는 외고를 나왔다.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북인지 남인지 묻는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분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남쪽인지 북쪽인지 의식하지 않았다. 한국에 살다가 둘로 갈라진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남한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싸우스인지 놀스인지 매번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외국에 나가야만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관종인 게 틀림없어


프랑스 버스는 아직 어떻게 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빨간 버스를 탈 때처럼, 기사님에게 가려는 목적지를 말하고 그 만큼에 상응하는 요금을 내고 티켓을 받고 타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우루루 버스에 타는 앞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아무도 돈을 내지 않는다. 딱 한 명이 카드를 찍었을 뿐이다. 나는 교통 카드가 없는데. 열 명 정도가 올라탔는데도 답이 안 나왔다. 나는 쭈뼛거리며 기사님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 툭 치면 툭 나오는 말, 단골 멘트, 두 아이 헤브 투 페이 나우(지금 내야 되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기사님은 무심도 하시지, 나에게 그냥 손만 내민다. 일단 5천 원이면 대충 될 것 같아 5유로를 내미니 티켓과 잔돈을 주고는 끝이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 혼돈 속에 앉을 자리를 찾아 들어가니 맨 뒷자리 중 양 끝이 차 있어 자연스럽게 가운데에 앉았다. 수학여행 갈 때 일진 중에서도 일진이 앉는다는 그 자리. 나는 관종인 게 틀림없다. 사람들이 은연중에 나를 한 번씩 쳐다본다. 나도 사람들을 한 번씩 쳐다본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한 표씩 준 거고 그 사람들도 나한테 한 표씩 준 건데, 내가 받은 표는 15표, 몰표다. 부담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일단은 앉을만한 자리가 여기밖에 없다. 프랑스 버스는 특이하게 역방향으로 앉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런 곳에 앉으면 내가 언제쯤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상황 파악을 할 수 없다.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들어오면서 그러고 싶지 않아도 나를 무조건 한 번은 쳐다보게 되어있다. 내가 딱, 맨 뒤 가운데에 앉아 있으니까. 나는 오늘 한 번도 아시아인을 본 적이 없다. 이곳엔 아시아 사람이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너무 소심해서 이곳의 유일한 아시아인이 될 수 없다. 그런 타이틀을 가질 자격이 없다.





▼ 방금 글로 읽은 상황을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FylRwy99D8&t=4s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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