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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5. 2021

D-9 | 생리 얘기를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만


30대 여성으로서, 내 인생에 관한 깊은 고찰을 적은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일곱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인생이 불규칙해서 

생리도 불규칙한가 봐 


여자에게 생리란 건강의 척도다. 드라마 보조 작가를 하며 방송 쪽에서 일한 언니들을 많이 만났다. 그 언니들은 하나같이 하혈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며칠씩 밤을 새며 쪽잠을 자고, 꼼짝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열 시간 넘게 앉아 있고,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몇 개월을 살면 누구나 몸이 망가진다. 고생한다고 몇 만원짜리 비싼 음식을 때려 넣으면 뭘 하나. 소화할 시간도 안 주는데. 이렇게 힘든 마감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가 말한다. 사실 나 그때 하혈했었다고. 남성들이 어떤 식으로 건강이 무너지는지 알 수 없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정말 한참 후에나 아주 조심스럽게 나오는 거니까. 세상 어떤 직업이 하혈까지 버텨내야 하는가. 생리주기가 불순한 나는 다행히도 하혈을 하지 않았다. 딱 한 번 생리할 때가 안 됐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 있어서 심장이 철렁했었는데 다음날 추이를 지켜보니 생리가 일찍 시작한 거였다. 생리가 한 달도 되지 않아 시작한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만약 정말 하혈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 자리에서 일을 그만뒀을까. 거기가 나의 마지막 최종라인이었을까. 어쨌든 그때 나는 죽을 것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을 꾸역꾸역 넘겨가며 끝까지 버텼다. 건강해서 다행이었다.


작가는 머리와 감정을 쓰는 일이다. 몸을 쓰진 않지만, 전력으로 몸을 쓰는 일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와 감정을 쓰고 나면 완전하게 소진된다. 매일 글을 쓰는 와중에 건강을 위해 한 시간씩 밖에 나가 걷는다는 얘길 했을 때, 아는 배우 오빠가 나에게 그랬다. 이제는 뛸 때도 되지 않았냐고. 나는 황당했다. 나는 걸으러 나왔고 그래서 걷는 건데 뛰라니. 내가 왜 뛰어야 하지? 그는 운동하러 나간 거니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뛸 생각이 없다고 아무리 여러 번 말을 해도 오빠는 그 다음에 또, 이제 뛸 때도 되지 않았어? 라고 했다. 나는 몇 시간씩 글을 쓰고, 다음엔 뭘 써야 하나 늘 시달리는데 그런 사람에게 왜 안 뛰냐니. 작가는 스트레스와 싸워야 한다. 작가는 예민해서 작은 것에도 큰 반응을 하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예민한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긴 하지만, 예민함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직군이기도 하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예민한 순간들을 직물을 짜듯 엮어내야 한다. 고통이 더는 고통이 아니라면 작가가 무슨 글을 쓰겠는가.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쓴 글이 어떻게 슬픈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소설책을 집어드는 것은 행복하게 끝나는 다른 사람의 불행이 보고 싶은, 지금 불행한 누군가가 아닌가. 나는 밖에 나와 걷는다는 나에게 이제 뛰라며 농담을 건네는 친구의 말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의 감수성은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작가 생활은 가능하다. 어쨌든 하혈은 하지 않으니까. 나는 몇 년 전에 스친 눈빛에도 오늘 아파하며 나를 더 날카롭게 벼른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행하고 생리는 오늘도 하지 않는다. 내가 생리를 한 달 간격으로 일정하게 하는 건 어딘가에 적응한 후 한 달 정도가 지나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2~3개월 정도가 전부다. 나는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꼭 무언가 새로운 일이 터지는 삶을 살았다. 인생 자체가 불규칙해서 내 몸도 규칙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 곳에 고정되기를 원하는데 삶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안 그런 쪽만 선택했기 때문이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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