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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Oct 15. 2022

너의 아담 드라이버


젊지도 않은데 청춘 같은 시간을 보냈다. 캐나다를 떠나기 전 날, 나는 W와 함께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캐나다는 배가 맛있고 종류가 다양해서 테이블 위엔 마트에서 어제 사 둔 배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핫 초콜릿을 시켰고 W는 이 카페는 커피가 참 맛있다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녀는 커피는 역시 따뜻해야 온전한 향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10월이지만 캐나다엔 벌써 겨울이 왔다. 


W는 하얀색 니트에 갈색 코트를 걸쳤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의 바로 뒷자리, 그녀를 등진 자리에 앉은 남자 역시 하얀색 니트를 입고 있었고 의자에 갈색 코트를 걸어두었다. 남자는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고 키가 컸다. 나는 W에게 남자가 아담 드라이버 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볼 때마다 우는 영화가 있는데 그게 바로 <결혼 이야기>라고 했다. 나는 검지를 곧게 펴고 남자 쪽을 향해 뻗으며 말했다.


"가라! 스칼렛 요한슨!"


그러나 W는 남자에게 가지 못했다. 여기는 캐나다라고, 캐나다에선 그냥 편하게 모르는 사람한테도 말 걸고 그러는 거라고, 근데 못하겠다고, 말한 건 그녀였다. 나는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대사를 줬다.


"어머, 세상에. 우리 똑같은 옷을 입었네요? 너무 신기하다. 같이 사진 찍을래요?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될까요? 혹시 인스타 하세요?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ㅡ 그럼 된 거라니까?"


비슷한 옷을 입은 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그걸 SNS에 올리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이 벌어진 김에 서로의 SNS 아이디도 공유하는 상황에 대해 W는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듯했다. 여기가 캐나다인 건 맞지만, 그녀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럴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10초만 참으면 돼."

"10초?"

"맷 데이먼이 나온 영화가 있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라는 영화인데 거기서 맷 데이먼이 그런 얘기를 해. 자기 아들들한테 너희 엄마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얘기하는 장면인데, 카페를 지나가다가 정말 예쁜 여자를 본 거야. 첫눈에 반했는데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때 생각한 거야.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 10초만 참으면 된다. 맷 데이먼은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여자한테 말을 걸었어. 그리고 결혼한 거야."

"어머머..."

"근데..."
"응."

"여자가 죽었어..."

"어???"

"그리고 동물원을 사서... 동물들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았어..."

"그러지 말지... 죽지는 말지..."

"그러니까 딱 10초 참고 가서 말 걸고, 동물원만 안 사면 돼. 그럼 안 죽어."

"아..."


그래도 W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제법 캐나다인이 되었는데도 아직 모르는 듯했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야! 화장실 어디냐고 물어봐. 저분한테."

"화장실 어딘지 아는데?"

"아... 왜 알아..."


그녀와 아담 드라이버는 인연이 아닌 걸까? 인연이 아니라면,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왜 둘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을까? 그녀와 나는 그녀의 운명의 상대를 바로 뒤에 두고 한참을 쑥덕이다 카페를 나왔다. 괜히 내가 더 아쉬운 마음이었다.


"지금 말만 걸었어도 애가 셋은 태어났을 텐데..."


캐나다 카페에서 아담 드라이버 같은 남자를 만날 확률, 여기에 그 남자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을 확률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올까? 그런 상황에서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뻗으며 익스 큐즈 미를 하고, 우리 옷이 똑같아요 하며 웃고, 아담 드라이버 닮으신 것 같아요 엄청 멋있으세요 라고 하고, 그러자 그 남자가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결혼 이야기> 예요 라고 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SNS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주황, 빨강의 낙엽들이 떨어져 있는 한적한 거리를 둘이 나란히 걸었다. 나는 카페에 두고 온 제부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스칼렛 요한슨은 아담 드라이버를 알아봤는데, 아담 드라이버는 스칼렛 요한슨을 못 알아봤다. 아담 드라이버의 신발 끈이 풀려있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언니, 결혼 이야기 원제는 뭐야?"

"몰라. 웨딩 스토리겠지, 뭐."

"너무 그런 거 아니야?"

"그거겠지, 뭐."




* <결혼 이야기>의 원제는 <Marriag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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