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거리'가 있는 남군농협에서 내려 별 다섯 개의 '안거리 밖거리' 백반 맛집을 찾아 내려갔다. 가는 길에 보니 '이중섭 식당'의 메뉴 그림이 문어덮밥, 고등어 덮밥을 입맛 돋우게 그려놓아 나는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은 안된다고 계속 카카오앱을 보면서 길을 건너 내려가 '안거리 밖거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일' 팻말이 붙어있다.
한창 더워지기 시작한 2시 무렵이고 배가 고프면 짜증을 내는 나의 성격 탓에 얼른 남편에게 되돌아가 이중섭 식당에서 먹자고 했다. 남편은 할 수 없는지 내키지 않는 뚱한 모습으로 뒤따라왔다.
식당에 들어가 막상 음식이 나오니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야~ 맛있겠다. 맛있다 하면서 잘 먹었다. 문어덮밥은 문어가 반마리는 들어있는 것처럼 문어가 많아 매콤하면서도 향긋하게 맛있고, 고등어덮밥은 고등어구이가 크고 맛있게 따로 구워 나오고 역시 야채와 밥이 들어있는 나무로 만든 식기에 밑반찬 소스등이 함께 나왔다. 남편은 1만 원에 이 정도 맛이면 다음에 또 오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가까워 이 거리를 자주 오게 되니 식당 역시 몇 번은 더 오게 될 것이다.
식사 후 근처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에관람을 하러 갔다. 70년 만에 귀환한 이중섭화백의 그림(고 이건희 회장이 모은 그림들 중 12점을 유족들이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 기증)이 전시 중이었다. 미술관은 모두 온라인 예약이고 무료관람인데, 다행히 예약 없이 온 우리가 1시간 정도 밖에서 기다리니 들어오라고 했다. 이중섭 화백이 6.25 전쟁 중 피난을 나와 서귀포에서 살았을 때 그렸던 그림들이 많이 있었다.
서귀포의 환상
서귀포의 환상이라는 이 작품은 제목처럼 보는 이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한다. 나무 합판에 유화로 그린 이 그림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귤나무에서 귤을 수확하면서 새를 타고 귤을 따는 아이 등 자유롭고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하는 그림이다. 멀리 서귀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섶섬이나 문섬등이 보인다.
50년 초 전쟁이 한창일 때 낯선 이곳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줍고 게를 잡고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어린이와 같은 순수성이 살아있어, 꿈꾸는 듯 아이들과 서귀포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환상적인 색감과 구도로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화순항에 내려 한겨울 밤 작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이곳까지 걸어온 이중섭의 가족에게 작은 단칸방 하나를 내어주어 살게 한 집주인 의 사랑이 감사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천재 작가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그리고 그 시절이 이 가족에게는 함께할 수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으니.
이중섭의 '섶 섬을 바라보며'
그가 일 년간 피난 와서 이곳에 살면서 가족과 아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섶 섬을 바라보며' 이 작품도 그 당시 그의 집에서 보이는 섶 섬을 그린 풍경화이다. 지금 이중섭 미술관이 있는 그의 집 근처에서 섶 섬을 바라보는 풍경은 초가집 대신 현대식 건물들로 채워진 모습이라 우리에게 잊힌 그 시절 50년대의 서귀포를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그림이다.
1시간 정도를 관람하며 천재적이면서도 소박한 그의 그림들. 아이들과 물고기와 게, 끈과 아이들, 소, 황소, 부부, 길 떠나는 가족, 수없는 엽서그림,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등. 전쟁으로 인해 피난온 가난한 화가의 애처로움에 절로 가슴이 저린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피난시절 중에 가족과 헤어져 힘들게 고생하면서도 담뱃갑의 은지를 주워 모아 독특한 기법으로 은지화를 그리면서 작품을 준비하던 그의 열정이 병으로, 무연고자로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많은 작품으로 그도, 우리도 행복할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은지화-담뱃갑에 들어있던 은지의 자연스러운 접힘과 날카로운 송곳등으로 음각을 해서 그린 작품
아이들과 아내를 걱정하면서 어떤 재료든 이용해서 작품을 그리며 자신을 지탱했을 그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지면서,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에 처음 그렸다는 '길 떠나는 가족'을 보자 가슴이 먹먹했다. 이 그림은 유화로 그리기 전 밑그림으로 흥겨움이 느껴진다. 가족을 소 달구지에 태우고 작가는 황소를 끌면서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는 풍경이라고 한다.
이 그림을 보면 행복한 가족의 나들이를 연상하게 된다. 두 아이와 여인은 꽃을 뿌리고 비둘기를 날리면서, 황소를 끄는 작가는 흥겨움에 흥얼거리며. 아마도 일본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성장하고 있을 보고 싶은 아들에게 곧 만나서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는 위로를 건네는 작가 이중섭의 애틋한 사랑과 바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