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으며 라라가 바다를 좋아하는 베토가 해변에서 제대로 놀아보도록 휴애리 공원 예약을 내일로 변경하고 곽지 괴물해변과 협재해변을 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협재에서 일몰까지 보고 오자고 해서 202번 버스를 숙소 앞에서 타고 1시간 40분쯤을 갔다. 오늘은 제주시에서 하루를 놀다 오는 거였다.
제주시에 들어서자 중간에 한림중학교 근처의 맛집에서 미리 이른 점심을 먹자고 하는 남편의 말에 버스에서 내려 식당이름치고는 너무 격하다 싶은 '밥깡패'를 찾아갔다. 파스타 집으로 유명했었나 본 데 가보니 지금은 장사를 안 하는지 닫혀있다. 휴일인가 했지만 분위기상 폐점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라라가 음식점을 검색해 본다고 하다가 마침 보이는 '콩마루' 집으로 들어갔다.
두부정식 3인분을 시켰더니 푸짐하게 두부와 보쌈, 그리고 된장국과 몇 가지 반찬들이 깔끔하게 나와서 놀랐다. 식사 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비어있던 자리들이 어느새 손님들로 가득 찼다. 된장도 주인이 직접 담그셔서 그런지 짜지 않으면서도 구수하고 맛있었다. 우연히 만난 가성비 좋은 맛집이었다.
택시를 타고 곽지 괴물해변으로 갔다. 와~ 깨끗한 모래와 쪽빛 바다. 여기에도 파도가 세지가 않아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앞에 거칠 것이 없는 탁 트인 바다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바다 풀이 있었다. 일부러 만든 것처럼 크지 않은 검은 화산암으로 한쪽의 바다가 막혀있어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좋았다.
베토는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아서 반팔과 바지를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할아버지와 물놀이를 하다가 수영을 할 수 있게 베토를 물 밑에서 안아 주니 물장구를 치고 즐거워한다. 베토도 처음에는 무서운지 '할아버지 꼭 잡아주세요 ~', '살려주세요~' 하더니 싱글벙글 물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할아버지는 오늘 베토에게 '딩동댕'이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주는 수영에 신난 베토
평소에 할아버지가 장난기가 많아 베토가 원하지 않는 장난을 많이 해서 '딩동댕'을 못 받았는데 오늘만큼은 할아버지와 짝꿍이 되어 즐거워하니 베토에게 최고의 점수를 받는 날일 것이다. 물속의 미역이 신기한지 집어서 머리에도 올리면서 물에서 나오지 않는 베토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었다.
잠시 물에서 나온 베토를 타월로 닦아주다가 할아버지가 모래찜질을 하자고 유혹하는 바람에 베토는 신기해하며 누워 모래를 입었다. 여름처럼 뜨거운 모래가 아니라서 베토에게는 더 좋은 것 같았다. 옆에 할아버지도 함께 누워 모래찜질을 하니 베토는 더 즐겁고 재미있어했다.
해변에서 놀다가 위로 올라오니 데크가 잘되어있다. 햇빛에 몸을 녹이며 음악을 듣고, 따뜻하고 맛있는 차를 마시며 편히 쉬면서 바다를 바라보니 이것이 바로 힐링이구나 싶다. 시원한 바람과 파아란 가을하늘, 쪽빛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살며시 일렁이는 파도에 서핑초보들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넷이서 멋지게 라라가 제안하는 포즈를 하며 사진을 찍고 누워있다가 4시가 넘어 협재해변으로 가는 202번 버스를 타고 협재로 내려왔다.
손으로 LOVE를 하자는 제안에 바다를 보라보며 포즈를 취했다-작은 손을 힘껏 들어 양손에 v를 표시한 베토.
조금 전 곽지 괴물해변의 넓은 모래사장이며 한적한 분위기가 가시기 전에 넘어와 그런지, 아니면 예쁘다고 하는 소문에 머릿속에 그려본 그림과는 달라서 그런지 협재해변의 주위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해변 가까이 가게들이 많아 그런 것 같았다. 수영할 수 있는 작은 해안가는 그리 크지 않아 조금 실망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작고 바닷물도 앞에는 깊지 않아 보여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변에서 보이는 작은 섬(서 비양도)이 있어 또 다른 경치이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인 듯 작고 검은 화산암 돌들로 개성 있게 쌓인 많은 탑들이 정겹기도 했다. 왼쪽 언덕을 오르니 검은 돌들로 구성된 해변이 협재의 진면목인 듯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해변인 듯 신혼부부나 젊은 커플들이 많이 와서 사진을 찍고 우리처럼 일몰을 보러 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몰이 시작되자 해를 등지고 실루엣만 나오게 찍어보았다.
일몰을 보기 위해 일찍 와서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지는 해를 향해 준비시키고 있었다. 조용한 해변에서 가족끼리 일몰을 본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도 노을이 예쁜 해변으로 이미 소문이 난 것을 나와 남편만 모르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기 위해 분위기 있고 조용한 맛집을 찾아보겠다는 남편의 욕심으로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결국 해변가 앞에 있는 흑돼지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고기와 곁들인 반찬에 만족해하며 식사를 마치고 9시가 다되어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큰아들과 통화하는 베토는 '아빠, 우리 고기 먹었어' 한다. 집에서도 고기류를 빠지지 않고 해 주는데 그것보다 나와서 고기를 먹으니 베토가 더 좋았나 보다. 고놈 참. 오늘도 즐겁고 그러나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