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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옥 Jun 19. 2023

돼지와 함께 춤을

(아름다운 동행이었어)


어제 늦게 들어와 다른 날 보다 많은 빨래를 해서 널고 자니 거의 밤 12시였는데 6시도 되기 전 이른 아침에 몸이 깨었다. 오늘은 휴애리 공원을 오전에 갔다가 오후 2시 5분 차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해서 잠도 자연이 일찍 깬듯하다.


평소의 생활이 이렇게 빠듯하면 힘들어서 못할 텐데 그것도 여행이라는 마법에 걸리면 가능해진다. 신기하다.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했다. 베토를 위해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이고, 샐러드와 베토가 먹을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오늘도 많이 걸어야 할 테니 아침을 든든히 먹게 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아는 듯 다행히 이른 아침밥을 베토가 잘 먹어 고마웠다.


부지런히 정리하고 8시 30분에 서귀포터미널에 짐을 맡기고 201번 버스를 타고 혜리초등학교까지 20분 만에 도착했다. 얼마 전 이승이 오름을 가려고 이곳으로 올 때는 40분이 넘게 걸렸던 것 같은데 다행히 라라가 검색을 잘해서 돌지 않고 오는 버스를 탄 것 같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조금 더 가니 휴애리 공원이다.


미리 라라가 예매를 해놓아서 인증하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이곳을 지나갔지만 어린아이들이 오는 곳이라 우리는 들어와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 않게 베토 덕분에 와보게 되었다. 공원은 너무 넓어서 오늘도 베토가 열심히 걷거나 뛰었지만 할아버지가 무등을 태우거나 라라가 안아 주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멀리 한라산과 오름들위에 구름이 걸려있고 하늘이 푸르고 맑다--공원을 걷다가 잠시 쉬면서.

봄에는 매화광장이, 초겨울에는 동백꽃이, 3~4월에는 철쭉이, 6~7월에는 수국이 피어 아름다울 것 같은 나무군락들이 많았다. 아쉽게도 10월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될 만한 꽃축제는 없지만 예쁘게 핀 갖가지색의 국화들이 멋진 광장을 이루고, 다른 이름 모를 꽃들도 많이 피어있어 공원을 걸어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제주도를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볼 때 밑에서 돼지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나, 아기돼지 삼 형제와 늑대등 모두 돼지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곳곳에 사진을 찍도록 멋진 공간들을 연출해 놓은 곳이 많았다. 또한 하늘 광장에는 핑크몰리가 환상적이었다.

제주도의 명물 돼지와 함께 춤을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흑돼지쇼는 돼지들이 떼 지어 계단을 올라가도록 유인하고, 올라간 돼지들이 다시 물을 뿌려놓은 미끄럼틀같이 경사진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면 근처에 있다가 아이들과 어른들이 당근을 먹이로 주는 참여형 쇼였다. 큰 코를 벌름거리며 당근을 먹으러 다가오는 돼지에게 베토가 조심스레 당근을 주고 나도 호기심에 큰 입을 벌리는 돼지에게 주춤거리며 주었다. 돼지가 당근을 이렇게 잘 먹는 줄 몰랐다.

흑돼지 쇼를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돼지들

쇼가 끝나고 공원을 걷다 보니 넓은 잔디광장에 가족 간의 추억을 예쁘게 담을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젊은 커플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어 우리도 기다렸다가 라라와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가위 바위 보!

누가 무엇을 내었는지 우리는 모른 채 웃으며 사진이 찍혔다. 라라와 나의 생각이 통한 걸까?

라라와 등을 기대고 가위 바위 보!

공원입구에 있는 기념품가게에서 작은 돌하르방을 베토가 아빠 선물로 사고, 나도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서 하나를 더 사서 나오자 마침 빈택시가 서 있었다. 다시 하례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서귀포터미널 옆의 올림픽 경기장 앞에 내렸다.


아직 시간이 여유도 있고 점심때라 동네 맛집이라고 소개된 '탐궁'에 들어가 고기 좋아하는 베토를 위해 소 양념 갈비를 주문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오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인데 그동안 데리고 오지 못했었다.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던 것도 있고 아침과 저녁은 집에서 먹는 원칙을 하다 보니 그러기도 했다.


다행히 베토도 잘 먹고 라라도 잘 먹으니 내 마음도 좋았다. 라라는 오늘도 식사하며 소주 2잔을 마셨다. 이곳에 와서 반주로 아버님 술친구 해주느라 한두 잔씩을 받아먹어 라라의 건강이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 안 먹는다고 해도 되는데 언제나 웃으며 한두 잔을 받는다. 이러다가 앞으로는 함께 여행 못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서귀포터미널에서 800번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평소 같으면 1시간 이면 도착할 것을 오늘은 제주시에서 조금 막히더니 20여분이 더 걸려 공항에 도착했다. 라라가 짐을 부치고 나오니 베토가 '이제는 엄마랑 둘이서 갈 수 있으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버스 타고 집에 가세요' 한다. 녀석 제법 컸다고 우리를 생각해 준다.


베토를 잘 가라고 안아주고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800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 집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생각해 보니 라라도 잘 가라고 꼭 안아줄걸 그랬다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5박 6일 동안 재미있게 지내면서 서로 배려하고 소소한 것에 기뻐하면서 잘 지냈다.


감귤모자를 모두 같이 쓰고 다니니 우리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보기 좋았는지 '그 모자 어디서 샀어요?' 하는 질문도 많이 했다. 라라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여행일정으로 서로가 흥겨운 6일간의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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