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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옥 Jul 01. 2023

그대는 누구인가?

(셀 수 없는 자연의 나이)


어제 늦게 들어와 몹시 피곤해서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달그락달그락 부엌에서 밥 짓고 국 끓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른척하고 누워있었다. 9시가 넘어서 일어나 보니 남편이 미역국 끓이고 밥도 해놓았다. 평소 같으면 아침을 먹고 어딘가로 출발했을 시간이니 시장기가 돌 것이다. 빠르게 샐러드를 준비하고 밑반찬을 꺼내 늦은 아침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며 오늘은 피곤도 풀 겸 쉬자고 하니 남편은 인심을 쓰듯 점심때쯤 나가자고 하면서 빨래를 걷어 개킨다. 창밖을 보니 가을 날씨가 쾌청하고 하늘이 푸른 게 집안에 머물기는 아까웠다. 천천히 준비하고 12시쯤 202번 버스를 집 앞에서 타고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가기 위해 출발했다.


버스로 40분 정도면 도착하니 가까운 곳이다. 버스 안에서 용머리 해안 관리소에 전화를 걸어 오늘 입장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1시에 다시 연락하라고 한다. 물때에 맞추어 입장을 시키기 때문에 꼭 확인을 하고 가야 한다.


1시 되기 전에 용머리해안 정류장에 도착해서 '하멜의 배'(하멜이 표류하다 제주도에 상륙했을 때 타고 온 배)를 보면서 밑으로 내려가니 마침 1시부터 4시 30분까지 입장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다행이다 하는 환한 얼굴로 매표소에 가니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우리는 산방 굴사 입장료까지 함께 1인당 2,500원씩 티켓을 사서 들어갔다.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묘하게 퇴적되어 쌓인 거대한 돌그림에, 조각 같은 모습에 놀라 절로 입이 벌어지며 모두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내가 헤아려 생각해 볼 수 도 없는, 약 180만 년 전 바닷속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시간이 흐르며 풍화작용에 깎이고 다듬어지고, 모래와 흙들이 퇴적되어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섬세하면서도 거친 작품이 되었다. 바다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 모양이라 해서 이름도 용머리 해안이다.  

우리의 생각으로 헤아려볼 수 없는 시간 동안 퇴적되고 풍혈 되면서 벌집처럼 구멍도 뚫리고

바다와 함께하는 용머리해안은 돌아보는 길이도 꽤 길고 커서 1시간 이상이 걸린다. 분명히 예전에도 왔던 곳이라고 기억했는데 전혀 처음 보는 듯 새롭고 거대하고 신비롭다. 바다의 용암이 솟구쳐 굳어진 기괴한 모습의 퇴적물. 마치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년과 같다는 탄성을 하며 남편은 나를 모델로 몇십 장의 사진을 계속 찍었다. 인물이 들어가야 사진이 산다며.

위로는 산봉산이 보이는 용머리해안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용머리해안의 거대하고 멋진 모습을 뒤로하며 아치처럼 깎여진 절벽사이로, 좁은 퇴적 바위들로 이루어진 계단을 걸어 연결된 산책길로 올라왔다. 위에서 보니 용머리를 한 바퀴 돌아 나온 셈이다.


산방산에 오르기 전 '순천 미향'이란 식당에서 대기번호 받고 기다렸다가 전복, 문어, 흑돼지가 함께 어우러진 삼합을 시켰다. 문어를 자르고 전복도 자르고 밑에 소스와 함께 있는 돼지고기에 밥은 도토리만큼 넣어 먹으면 최고의 맛이라고 해서 그렇게 먹었다. 음식의 간은 맞는데 조금 달콤했다. 과일소스가 들어가서 그렇다고 하면서 달콤한 게 싫으면 매운맛으로 주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맛있는 식사 후에 슬슬 산방산에 올랐다. 산방산에는 절이 여럿이다. 보문사는 대웅전까지 있는 큰 사찰이고, 옆으로 산방사, 밑으로 광명사, 산방산 위로 올라가면 커다란 천연 석굴이 있고 거기에 부처님을 모신 산방 굴사가 있다. 입산이 허가된 길로 산방 굴사에 도착하니 초에 불을 켜서 올리고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분들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우리도 소망했다.

산방 굴사

산방산 역시 용암이 분출했는데 끈적끈적한 용암이 터지지 않은 채 흘러 굳으면서 주상절리대를 만들었다. 바다와 함께 있는 주상절리대의 모습도 장관이었는데 종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산이 둘레가 주상절리대의 모습으로 둘러져있어 그 모습 또한 탄성을 자아낸다. 자연이 만들어낸 오묘한 작품 앞에 다만 놀랄 뿐이다.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모습이어서 그런지 여기도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어 정해진 코스 외에는 함부로 올라가면 벌금이 이천만 원이라는 푯말이 있다. 산방 굴사 까지만 정해진 길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바위들은 풍화혈이라고 벌집 모양으로 크고 작은 구멍이 있다. '낙석위험' 팻말이 군데군데 있어서 그런지 걷는 곳곳의 위로 그물이 둘러쳐 저 있다.


산을 내려와 보문사 대웅전으로 가는 계단 위 까만 대리석에 미소 띤 탈 그림과 함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마음을 찌르는 글귀다. 남편도 글을 읽으며 마음이 찔리는지 입 꼬리가 올라가게 소리 없이 웃는다. 미소 띤 얼굴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더하여 그 밑에 '그대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표지석이 있다. 나는 누구일까? 한결같은 부처의 마음을 늘 갖지는 못해도 자주 그 마음을 갖고는 사는가?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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