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교만 해도 괜찮아, 바오밥

by 이설

아침에 세수하고 나면, 별도 정성껏 단장을 시켜 줘야 하지요.
바오밥 나무는 어릴 때 장미나무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장미나무와 구별할 수 있게만 되면 당장 뽑아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매일 규칙적으로 해 나갈 수 있어야 해요.
아주 지겨우면서도 또 하기는 무척 쉬운 일이죠.

[어린왕자-생택쥐페리/이원하 옮김]학원사


어린 왕자가 '아주 지겨우면서도 또 하기는 무척 쉽다'라고 한 바오밥 나무 뽑기.
그 일을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린왕자가 살던 °소혹성 B612호는
의자를 몇 발짝만 앞으로 또는 뒤로 그저 당겨 앉으면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별입니다.
게다가
바오밥 나무는 뿌리가 아주아주 큽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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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됩니다.

하루를 꼬박 살아도 깜박하면 지는 해를 볼 수 없는 우리 별 바오밥 나무들은 아프리카에 삽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바오밥 나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신이
그 교만(驕慢)함을 보다 못해
뽑아
땅에
거꾸로 박아 버렸어.


바오밥 나무를 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바오밥 나무가 거꾸로 처박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552315819253.jpg 서울식물원 바오밥 나무

교만(驕慢)에서 교(驕)는 보통 '교만하다'라는 뜻으로 만(慢)은 '거만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다지 좋은 뜻으로 쓰는 글자는 아니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 앞에 교만이 붙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통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한자를 깊게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驕)=말 마(馬)+높다 교(喬)]로 말은 뜻을, 교는 소리를 담당하여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형성문자(形聲文字)라고 하지요. 그래서 교(驕)는 '(말)을 길들이다, (말)이 굳세다, 씩씩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 만(慢)= 마음 심(心)+길게 끌다 만(曼)]으로 만(慢)은 '느리다, 더디다'라는 뜻도 품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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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 나무가 살아온 터전은 반사막 지대입니다. 한 번 비가 왕창 내리고 나면 오랜 나날 햇볕이 내리쬐는 곳입니다. 한 번 왕창 내린 비는 땅속으로 속으로 흘러갈 테고, 바오밥 나무는 뿌리를 깊게 깊게 내리며 물을 찾겠지요. 뿌리를 아주 느리게 혹은 더디게 내리면서 바짝 마른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굳세고 씩씩하게 말입니다. 다른 뜻으로 교만해야 살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6000 년을 산 애도 있다고 하는군요.
아름다움을 뽐 좀 냈다고 자기를 처박아버린 신에게
'흥! 그런다고 내 아름다움이 사라지겠어?! 나는 땅속에서도 아름다울 테야!'
라고 하면서 하늘을 향한다고 생각하면 바오밥 나무 교만은 봐줄 만합니다. 하지만 °소혹성 B612호에서는 교만을 봐줄 수 없어요. 때를 놓쳐 커져버리면 뿌리를 뽑다가 별이 부서질 수 있거든요.
°소혹성 B612호는 어린왕자의 세계입니다. 그곳에는 불을 뿜는 화산 두 개와 불을 뿜지 않는 화산 하나가 있습니다. 어린왕자는 이 화산들을 늘 살펴보고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어린왕자가 돌보기 때문에 화산들은 조용하게 규칙적으로 불을 뿜어요. 폭발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바오밥 나무 어린 줄기들을 뽑습니다. 씨앗일 때는 다른 씨앗들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함부로 뽑지 않고 지켜보지요. 교만인지 자존(自尊)인지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다 교만이면 뽑습니다. 교만은 언젠가 자존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기 세계를 가꾸는 일은 어린왕자처럼 해야 합니다. 아주 지겹더라도 꾸준히 해야 하죠. 또 무척 쉬울 수 있게 말입니다. 하지만 더 넓은 세계에서는 다르게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품은 뜻은 아주 다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저씨……, 누구나 아주 슬플 때는 해지는 풍경을 좋아하게 되죠……, 그렇죠."

해 지는 풍경을 마흔네 번이나 본 날도 있다는 어린왕자가 살던 소혹성 °B612호에는
자기를 보호하기에는 어림없는 가시 네 개를 가지고 큰소리치는
속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순진한 장미가
어린왕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교만을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이라고 말합니다.
°소혹성 B612호 장미에게 교만은 자기 보호입니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지게 구는 속내에는 '날 좀 봐 줘, 사랑해 줘'가 있지요.
우리 별에도 °소혹성 B612호 장미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잘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봐 줄만 하면 봐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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