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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란 Oct 10. 2021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Europe (18.01.19 ~ 18.02.03)

  "아직도 비행기 탑승이 가능할까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간절한 표정으로 묻는 나였다.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적어도 3시간 전에는 공항에 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후 1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고 12시가 다되어 공항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밤새 뒤척이다가 오늘 아침 6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우고 말았다. 이미 여행에 필요한 일정 전부를 예약해 놓았기에 이제 와서 비행기를 놓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왜 항상 내 여행에는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 것일까?




  LA로 학회를 다녀온 뒤, 내 삶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나에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석사 디펜스와 졸업논문 제출을 모두 무사히 끝냈고 그 끝에서 결국 취업에도 성공했다. 취준을 하면서 LA 덕도 좀 봤는데,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토익 650점이 안돼서 시험을 여섯 번이나 봤던 내가 취업 요건인 오픽 점수는 단번에 획득한 것이다. 고액권 현금만 가져온 탓에 미국 은행에서 소액권으로 환전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마침 시험에 미국 은행에 대해 물어보는 문제가 연달아 나왔던 것이다. 감사하게도 여행 외적으로는 늘 운이 따랐다.


  신입사원 연수까지는 한 달 반 정도가 남았으니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이미 외국물도 좀 맛봤기에 이 기회를 빌미로 유럽여행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여행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그동안 모아 온 전재산을 모두 털어도 왕복 비행기 티켓 구매가 고작이었다. 다행히도 아빠의 지원금과 친구들에게 조금씩 빌린 것까지 해서 약 400만 원 정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친구 사이에 금전거래는 없다는 주의라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멋쩍은 내 부탁에 선뜻 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 자금에 맞춰 일정을 수립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까지도 머물고 싶었지만 모인 돈은 한정적이었다. 때문에 가보고 싶었던 많은 장소들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이동구간이 안전하면서도 각 도시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알찬 플랜을 세웠다. 그렇게 프라하 인, 파리 아웃의 총 5개국, 7개 도시를 잇는 14박 16일 코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남은 일은 모든 날짜의 숙박과 도시 간 이동수단 그리고 체험하고 싶은 투어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멍해진 정신을 단번에 차리게 만든 건 주위를 휘감는 매서운 눈보라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는 구간에는 대륙의 추위를 막아줄 통로 같은 것은 없었다. 프라하까지 날아가는 직행이 없었기에 모스크바로 경유하는 노선을 선택한 나였다. 문제는 내가 탄 러시아 항공사가 비행기 연착으로 악명이 높았기에 비행기 환승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40분이나 출발이 늦어진 비행기를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무난하게 여행이 시작된다면 투어러블메이커의 이야기는 끝을 맺었을 것이다.


  환승을 방해하는 두 가지의 위험요소가 있었다. 첫째는 이 공항의 구조 탓에 환승 경로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들은 사전에 미리 캐치하여 숙달해 두고 필요한 스마트폰 화면들도 다 캡처해 놨지만 실전은 늘 예상 못한 변수를 만드는 법이다. 둘째는 어딜 가나 사고를 치는 내 부주의 때문이었다. 내가 준비한 대비책은 폰이 꺼지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그걸 막아줄 보조배터리를 캐리어에 넣어서 부치는 멍청함 덕분에 수화물 검사 과정에서 발견되었고, 출국 직전에 위험 물품이라 폐기하겠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당장의 환승도 문제였지만 이후가 더 걱정이었다. 외국에서 의지할 거라고는 구글 지도뿐인데 그 배터리 소비를 어찌 감당할지.


  지난 LA 여행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자각했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 유럽은 모자람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가장 문제였던 해외 결제가 되는 카드는 1순위로 챙겼고 국가 간 콘센트 규격이 다르기에 이번 기회에 멀티 어댑터도 하나 장만했다. 그 외에도 각 나라별 주의사항들까지 꼼꼼하게 공부했다. 프라하에서는 여행자 보험증이 필수여서 단기로 가입했고 베네치아의 소매치기를 막기 위해 소지품은 안주머니에 꽁꽁 숨긴 채 외투를 단단히 잠갔으며 파리의 위험구역이 어디인지를 미리 파악해 놓는 등 빈틈없이 말이다. 이렇게까지 준비하면 뭐 하나. 가져온 물건도 제대로 간수를 못하는데. 별다른 수가 없었다. 프라하에 도착하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보조배터리를 겟해야 했다.




  걱정과는 달리 환승을 무사히 마치고 프라하행 비행기에 올라탄 나는 몇 시간 뒤 체코의 수도를 밟을 수 있었다. 곧 자정이 다가올 늦은 밤이었다. 동유럽 치안이 좋다고는 하지만 낯선 초행길에서는 되도록이면 모든 위험요소를 피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밤길이나 인적이 드문 외진 장소 등이 있다. 첫 시작부터 잔뜩 겁이든 내게 만만치 않은 여정이 예상되었다. 이번 여행의 끝도 과연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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