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gue (18.01.19 ~ 18.01.22)
수도인 프라하를 비롯한 체코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명칭인 보헤미아. 이곳에는 과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들이 다수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보헤미아 사람을 뜻하는 '보헤미안(Bohemian)'은 방랑자를 비롯해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여 있지 않은 자유분방한 사람들, 더 나아가 그러한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나 역시도 국적은 잠시 잊은 채 그저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방랑자가 되어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한 아득했던 정신이 뻥 뚫린 공간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의 활기 덕에 되돌아온다. 이름 모를 아름다운 건축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 광장 한복판에서.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의 ATM에서 약간의 코루나(Koruna)를 인출하고 키오스크에서 교통권을 구매한 뒤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늦은 시간이라 혹시 막차가 끊겼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도 예약한 숙소 근처에 무사히 닿을 수 있었다.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숙소를 찾다 보니 프라하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외지였다. 그럼에도 무섭지 않게 밤길을 활보했던 건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를 두려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시 들었던 잠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불청객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차의 훼방이었다. 체코의 한밤중은 한국에서는 잠에서 막 깨어나는 아침이었으니까.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만 응시하던 나는 결국 잠드는 걸 포기하고 다음 여정의 코스를 머릿속에 이리저리 그려 보았다. 그 사이 새벽 어스름이 옅어지던 커다란 창 밖으로는 언덕 위에 높이 세워진 거대한 기마상이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알찬 조식으로 배를 채우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어제의 늦은 밤을 버스로 달렸던 길을 거꾸로 거슬러 프라하 도심까지 걸어 보기로 했다. 수많은 철도들이 이어진 외지를 벗어나자 사진으로만 봐온 유럽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빨간색 지붕과 파스텔 톤의 벽을 한 건물들이 벽처럼 빼곡하게 늘어선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 깊은 건물들로 가득한 구시가지 광장의 한 곳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천문시계와 전망대가 통째로 보수공사 중이었다. 그 동작 원리를 살피면서 공학도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는 친구의 말에 기대가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움도 어쨌든 여행의 한 부분이기에 받아들여야 했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도시답게 많은 이들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떠올리는 시간들이 더해져 이 방랑길이 더욱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졌다. 그 시작은 프란츠 카프카와 알폰스 무하였다.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Vltava) 강을 건너 오리와 백조들이 가득한 강변을 따라 오르면 빨간 지붕과 거대한 'K'가 있는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을 마주하게 된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외관과 마당에 세워진 체코 지형 모양의 웅덩이에 오줌 싸는 동상은 정겨운 미소를 불러일으켰다. 소설 「변신」으로 유명한 카프카의 원고들이 가득하다는 박물관은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도 충분했기에 내부까지는 들여다보지 않고 돌아섰다.
또 한 명의 체코 출신 예술가인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이 전시된 무하 박물관은 강 반대편 도심에 위치해 있다. 날도 추웠고 프라하에서는 유료인 화장실이 박물관 입장만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곳이라 이번엔 티켓을 끊어보았다. 사실 무하라는 미술가는 오늘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기에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는데 들어서 보니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아마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무하 스타일'의 그림을 보면 뭔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미술사에 무지한 나도 그랬으니까. 실제로 이 그림들은 다양한 장식예술에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어쩌면 오다가다 무심코 본 그의 이미지들이 생각 외로 내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일지도 모른다.
두 예술가를 기리는 공간을 이어준 카를교는 저 멀리 보이는 프라하 성과 함께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프라하에 있는 3박 4일 동안 수없이 보고 밟았던 다리였다. 그 널따란 다리 양쪽 난간에 늘어선 수많은 동상들과 그 너머로 흐르는 잔잔한 블타바 강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을 선사했다. 한때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으로 만든 카를 4세의 염원이 이어지듯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며 자신들의 꿈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일명 굴뚝빵이라고 불리는 뜨르들로(Trdlo)를 뜯으며 본 그들의 얼굴엔 이미 원하는 바를 이룬 듯 행복이 가득했다. 그 긍정 바이러스가 나에게도 전염된 듯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도 이 단단한 다리처럼 올곧게 뻗은 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기름진 수제버거와 커다란 잔에 담긴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었다. 동유럽 사람은 무뚝뚝하다던 여느 얘기와는 달리 혼밥을 하러 쭈뼛쭈뼛 들어온 나를 환한 미소로 반기던 식당 종업원은 맥주를 큰 사이즈로 주문한 나에게 엄지까지 세워 보였다. 세계 1위 맥주 소비국답게 콜라보다도 맥주가 싼 나라였다. 이때 먹은 필스너 우르켈에 맛을 들인 바람에 이후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내 식탁에는 맥주가 빠지질 않았다. 걱정했던 여행의 첫날이 보란 듯이 아름답게 저물어갔다.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