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과 사랑이라는 거짓
암코끼리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향상된다. 따라서 무리는 정보 때문에라도 그녀에게 의존한다. 암코끼리는 무리를 위해 결정을 내리는 걸어 다니는 기록 보관소다. 이곳은 위험한가? 먹이는 어디서 구할 것인가? 물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우두머리 암코끼리는 그녀 자신을 비롯해 무리 전체가 평생 이용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물려받아 기억으로 암호화해 둔 이동 경로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조디피코,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 현대문학, 2015. p.139.)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여 작은 조직이지만 리더가 되어보니 알겠다. 리더에게 무작정 의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사람은 코끼리가 아니지 않은가. 나이 들수록 떨어지는 기억력과 열정, 체력 따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사로운 욕심은 도리어 줄어들지 않으니, 암코끼리의 믿음직한 판단력과 헌신성을 보통의 사람 리더에게 기대하기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내 곁에는 어머니가 있어서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거니 노력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칸방 올망졸망한 다섯 남매를 수십 년 홀로 건사한 어머니는, 암코끼리의 현실태였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길을 알려주고 튼튼한 벽돌집에 기름진 음식으로 우리를 보살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길'이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으니까.
어머니는 그저 매일 다소 먼 길을 걸어 성당에 다녔고, 다 못한 기도인 듯 늘 책을 읽고 수지침과 뜸, 뜨개질과 라디오를 즐겼다. 아무리 힘들고 세상이 요동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작정한 것처럼, 고집스럽게 평범한 일상을 유지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지켜낸 일상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과 쓰다듬는 듯한 눈길과 손길을 어김없이 주었을 뿐이다. 아주 가끔씩 괜찮은지 물어보거나 내 가방 안에 걱정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넣어 놓았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학창 시절 내내, 유행하는 신발은커녕 주머니에 차비가 없기 일쑤였고, 한 겨울 새벽에 자전거도 없이 이백 부가 넘는 신문을 배달하기도 했지만, 나는 늘 떳떳했다. 나는 나와 관련된 대부분의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 오직 내 의지대로 세상을 유영했고, 어머니는 유영을 가능하게 하는 깊디깊은 물이었다. 그 물이 없었다면 고사하고 말았으리라. 어머니는 나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리더, 암코끼리였다.
그런 어머니가, 숙고 끝에 던지는 단호한 말투로 선언했다. 마치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무리를 떠나기로 결정한 암코끼리처럼.
입원해야겠다.
평생 병원은커녕 남들 앞에서 한 줌 고통도 보이기 꺼려했던 어머니의 한마디는 불가항력적인 절망으로 다가왔다. 긴 검사가 끝나고 의사가 말했다.
대장암이 간까지 전이된 것으로 보입니다.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겁니다.
치료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종양으로 장이 막히면 장로를 내는 수술이 필요하지만
환자가 수술을 견딜 만한 체력이 안될 것 같습니다만...
2년 전에만 왔어도 간단했을 수술이었을 텐데 지금은 이판사판 상황이라고, 의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타박하듯 얘기했다.
의사의 타박은 잔인할 정도로 온당했다.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일상 곳곳에 나타난 변화를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늦은 밤까지 뒤척이는 소리가 날 때, 잠꼬대인 줄만 알았던 얕은 신음소리를 들었을 때 알았어야 했다. 어머니 방의 바닥에 수지침과 뜸의 흔적이 늘어날 때 알았어야 했다. 자꾸 끼니를 거르고 밥을 끓여 드실 때 알았어야 했다. '너는 비척거리며 앞서 가는 노인을 매몰차게 지나쳐 가지 말아라'라고 타이를 때 알았어야 했다. 전에 없이 부쩍 짜증을 낼 때 알았어야 했다. 거실에 할머니가 흘린 변을 아들이 서둘러 치우고 할머니 실수를 감춰주려 했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해 들었을 때, 아들만 기특하게 생각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 입원 며칠 전에도 여전히 책과 실과 뜸 주문을 부탁한다고, 나의 암코끼리는 건재하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입원 23일째. 어머니는 마치 영원으로 가는 계단을 한단한단 내려가듯, 몸짓을 거두고, 말을 거두고, 표정을 거두고, 숨을 거두셨다. 그 며칠 전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 어머니는 흐린 소리로 '쓰다듬듯' 말했다. 오직 무리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암코끼리의 숙명인 것처럼.
고생이 많다.
어머니의 헌신에 대한 나의 존경과 사랑은 오직 나를 위한 것이었다. 마치 어머니를 위한 찬양인 듯, 헌신이 숙명이 되도록 종용한 것이다. 존경과 사랑은 마땅히 그 대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의 존경과 사랑은 평생 거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