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연담(遺話淵潭)

현자는 바보로 온다

by 사강

유화연담(遺話淵潭)

중국 고전에 나오는 바보 세 사람이 있다.


#1.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연인을 무작정 기다리다가, 홍수로 불어난 물에 빠져 죽은 사람
#2. 정면승부 원칙을 고집하며 강대국과 싸우다가, 전쟁에서 패한 사람
#3.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질까 땅이 꺼질까, 의문과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 사람


앞의 두 사람은 '위생'과 초나라 장수 '향연'으로, 사기(史記)에 나오는 인물이다. 세 번째는 열자(列子)에 나오는 기나라 사람인데,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으로 쓰는 '기우(기나라 사람의 걱정)'라는 말의 주인공이다.


1990년 독일의 흡수 통일과 이듬해 말 소련의 해체. 세상은 거의 전도(顚倒) 수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두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 대중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기준이 되는 가치 서열이 뒤집어진 것만은 체감상 분명하다.


1990년대 초. 유토피아를 꿈꾸던 한 무리 운동권 친구들이 신종 다단계 유통 조직에 가담했다. '여전히 은밀한 표정으로 과거의 꿈을 비장하게' 이야기하던 그들의 모습은, 나치의 폭력에 영합한 저명한 실존주의 철학자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납득하기 힘들었다.


세상은 모든 것을 경제적 잣대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독보적인 '부'를 배타적으로 추구했다. 모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치는 '부'를 차지하는 게임의 공정성이 되었다. 남의 가난에 대해서는 우월감, 심지어 인격적인 우월감을, 나의 가난에 대해서는 부끄러움과 열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자되세요'라는 카피의 2001년 카드광고.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외침과도 같았던 이 광고는 이념 다툼이 사라지고 빅테크 기업들의 등장과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미 공고해진 가치 서열을 공표하는 행위예술과도 같았다.


부자는커녕 삶을 건사할 수조차 없는 약자의 삶을 통해서, 이 가치 서열의 불편한 진실은 시시각각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는 점입가경 발전하는 AI라는 초월적 지성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기대를 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나마 인간의 겸손함과 성찰 바탕이 되는 존재론적 결함(무지와 두려움 따위의)을 위무하던 신의 역할까지 AI가 잠식하게 된다면, 기후변화나 전쟁으로 지구가 멸망 지경에 이르러 돈이 휴지조각이 되지 않는 한, 이 서열은 영속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약속과 원칙, 질문'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고수한 '세 바보'를 떠올린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금은 액세서리가 되어버린 가치들을 추모한다.


눈앞의 목적을 위해서든, 어색하거나 궁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든, 요긴한 수사(修辭) 전략처럼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약속을 한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수히 많이 약속을 깬다. 법적 하자만 없다면, 나의 이익과 배치되는 순간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하듯 약속을 잡아떼는 모든 행태를 이 시대는 흔쾌히 허락한다.


약속을 어길 때야 일말의 꺼림칙함이라도 있겠으나, 내 마음속 원칙을 무시한들 누가 알겠는가. 하물며 생존을 위한 경쟁 현실을 감당하느라 내 코가 석자인데, 삶의 원칙쯤이야 TV다큐('어른 김장하'같은)에서나 보고 감상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이 시대는 기꺼이 수용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는 까닭을, 기원전 5세기의 인류는 알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므로 '기우'는 정당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온갖 의도가 복잡하게 도사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근본 문제는 해와 달과 별 처렁 선명할리 만무하니, 그냥 묻지 말고 오늘에 탐닉하라고 이 시대는 은밀히 조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상식을 벗어난 바보란 늘 있기 마련이고, 시대를 구원할 현자는 그들 속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