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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Dec 20. 2023

아버지가 그린 아들의 초상

주간 한지영 9화: Norton Simon Museum을 다녀왔다.

이 아버지는 그냥 보통 아버지가 아니고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바로크 시대 초상화의 대가 렘브란트이다. 그 렘브란트가 그린 아들 티투스 Titus 첫 초상화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노튼 사이먼 Norton Simon 미술관에 있다. 여러 번 간 적이 있는 미술관이지만 이 그림이 여기 있는지 몰랐다. 분명히 학교 다닐 때 미술사 클래스를 했는데 렘브란트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가 몰랐고 별 관심을 안 두었던 것이다. 그때는 19세기 인상파 화가와 그들 작품에 빠져 있었던 때라 고전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렘브란트 하면 그림을 무지 잘 그리는 사람. 사실과 똑같이 그리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렘브란트 그림의 진가를 배운 건 그림 인문학 북클럽을 하면서부터다. 2여 년 동안 미술사와 아트에 관한 좋은 책들을 함께 읽고 학교 다닐 때 보다 훨씬 많이 배웠다. 


어느 책에선가 이 그림이 여기 있다는 걸 읽고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설레어했지만 이제야 다녀왔다. 언제든 가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은 느긋하게 하고 몸은 한없이 게으르게 한다. 이 뮤지엄의 설립자 노튼 사이먼 씨는 40세가 되어서야 처음 갤러리에 가보았고 루브르에 갔다가 감명을 받아 그때부터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뮤지엄에서 사이먼 씨 관한 30분짜리 영화를 상영해 준다) 유럽의 거장들의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 경매 시장에서 이미 낙찰이 끝난 경매를 다시 시작시킬 정도로 이 작품을 갖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휠체어에 앉아 하나하나 자신이 모은 작품을 둘러보셨다는데 자신이 창작한 작품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심정 못지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일찌감치 재능이 없음을 간파하고 예술가의 주변인 삶에 만족하는 나로서는 꿈도 못 꾸어보는 이런 컬렉션을 소장할 수 있는 개인이 늘 동경의 대상이고 경이롭다. 또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앞에 서면 영화 <Ocean’s Eleven>에 나오는 도둑들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훔쳐내 내 집에 걸어놓고 매일 좋아서 울거나 웃거나를 반복하며 감상하는 상상을 하기 일쑤다. 하지만 굳이 비행기 타고 유럽이나 뉴욕에 가지 않아도 생각나면 한 번씩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이런 훌륭한 뮤지엄이 있는 것 만해도 큰 축복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본인의 돈을 들여 명작들을 사모아 아름다운 뮤지엄까지 지어 우리들에게 보여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렘브란트는 티투스의 다른 초상화도 여럿 남겼는데 이 그림이 특히 더 끌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고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티투스 얼굴에 가득한 사랑스러움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자꾸 보다가 이 사랑스러움의 정체는 아버지의 사랑이구나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이 아들은 아버지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물론 렘브란트가 그릴 때는 몰랐겠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음으로 사랑스러움과 슬픔과 애틋함이 함께 한다. 400년 전에 그린 그림 앞에서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때에도 비슷비슷한 행복과 슬픔과 기쁨과 힘듦을 견디며 존재했고 같은 사고와 고뇌를 하며 발버둥 쳤다. 지금의 나도 그렇게 살아간다. 내가 죽은 뒤 백 년 뒤에 살아갈 그들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 사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이 좀 덜 허무해진다. 그리고 지지고 볶는 이 삶은 한낱 작은 점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갤러리를 죽 걷다 보면 말을 거는 작품들이 있다. 아무리 대단한 대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라도 그냥 쓱 보면 저게 뭐 대단한가 할 수도 있다. 나도 전에는 그랬으니 대부분의 예술이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다는 말을 실감한다. 어쩌다 그냥 무심코 눈을 들어 보았는데 가슴에 확 와닿는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더 잘 알고 나면 새록새록 감동이 살아나고 진가를 알게 되는 작품이 더 많다. 그것을 책을 읽으며 실감하고 배워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느끼게 된다. 내가 대학시절 반 고흐의 작품에 빠졌던 것도 그의 삶에 가득했던 절망과 좌절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치는 붓자국이 꼭 내 속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일은 일상의 많은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는 예민한 눈을 키워주기도 한다. 늘 보던 것인데 어느 날은 특별하게 보일 수 있다. 그 순간이 갑자기 소중해진다. 그러면 저절로 겸허해지고 감탄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주말에 운전해서 나가는 일이 세상 귀찮지만 좀 더 누려야 하지 않을까. 이번 연휴엔 Getty Museum에 다녀올까.


Portrait of a Boy, 1655-60, Rembrandt van Rijn, Norton Simo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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