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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Nov 11. 2023

버스터와 당구 2

주간 한지영 8화: 버스터와 당구는 안을 수 있습니다.

버스터 Buster: Male. 2017년 막내 남동생 가족이 Animal Shelter에서 입양해 왔다. 푸들과로 추정되면 현재 나이는 여덟 살쯤. 귀엽고 순진하게 생겼지만 씩씩하고 목소리도 우렁차다. 함께 산책을 나가면 든든하다. 이보다 더 순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잠자는 것이 취미

당구: Female. 2019년에 친구 남편이 당구장 뒤 컴컴한 파킹장에서 홀로 갈데 없이 버려져 있는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이름을 당구라 지음. 처음 데려 왔을 땐 초췌하고 몰티즈 사촌처럼 보였으나 손재주가 탁월한 친구의 마법의 손을 거쳐 비숑으로 탈바꿈했다. 이보다 더 예쁠 수 없지만 예민하고 고고하여 친해지기가 어렵다. 세침떼기 공주님.


*지난 주에 업로드된 버스터와 당구 1 편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먼저 읽고 오시길 추천 합니다.




어느 날 막내 남동생이 강아지를 입양해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린 아들 둘이 간곡히 원해서 모든 케어를 동생 와이프와 아이들이 맡아하기로 하고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이해가 도저히 안 되는 게 강아지옆에도 못 가는 애가 어떻게? 실제로 데리고 올 때까지도 동생은 무서워 가까이 가질 못했다고 한다. 얼마가 지나자 같이 있어도 무섭지 않고 편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직장엘 가면 버스터가 제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다음엔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존재가 버스터 이외에 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벅차다고 했다. 버스터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은 어느 날부터 버스터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다른 개들도 덜 무서워하게 되어 지금은 좀 큰 개들도 괜찮다고 한다. 기적이 일어난 건가?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면 그렇게 극심한 공포증도 치유되는가? 그럼 이제껏 한 번도 우리가 안 키워봐서 그런가?


큰 남동생은 와이프네 집을 ‘동물 농장’이라 부른다. 온 식구가 동물을 사랑하여 온갖 종류의 (심지어 닭도) 동물들과 함께 산다고 한다. 백 야드는 물론 집안에도 그득하단다. 막내처럼 동물에 대한 사랑이 싹트진 않았지만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들 정도는 호들갑 떨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언니도 마찬가지로 몇 해 전 매주 모임을 가던 집에서 몰티즈 두 마리를 키웠단다. 맘 단단히 먹고 조금씩 가까이하다 보니 귀여운 몰티즈 사이즈 정도는 옆에 와도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퇴직하고 한 마리 키워 볼까 하는 마음까지도 든다고 한다.


나만 아직도 공포가 심하다. 이대로 공포 속에 살다 죽을 것인가. 막내에게 일어난 기적에 힘입어 나도 이 악물고 노력해 보리라 맘먹었다. 버스터 집에 갈 때마다 피하지 않기로 했다. 버스터는 사람이 오면 하이퍼 해져서 짖고 펄쩍펄쩍 뛰고 난리다. 좋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얼마나 놀래고 쪼는지… 주문을 건다. 버스터는 나를 물지 않는다. 좋다고 신나서 그러는거다. 괜찮다 괜찮다… 그러면 풀어놓아도 안정이 좀 된다. 한 번씩 갑자기 어디서 불쑥 나타날때면 깜짝깜짝 놀라지만 다시 또 주문 걸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동생집에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니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다.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있는데 버스터가 조용히 다가와 내 옆으로 뛰어올라오더니 ‘나는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하는 애절한 몸짓과 눈빛으로 내 허벅지에 머리를 척 기대고 온몸을 맡기며 눕는 게 아닌가. 심호흡과 주문을 반복하며 조용히 앉아 있다 용기를 내어 손을 뻗어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바로 그 순간이 나의 기적의 순간이었다. 기적이라 한 건 동물뼈가 만져지는 그 뭉클한 느낌을 싫어해서 잘 만지지 않거니와 오히려 더 멀리 하게 만드는데 그 순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도 버스터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를 유혹한 버스터는 더 이상 내게 관심을 안보였다. 내가 좀 가까이 가려 하면 ‘아이 귀찮아 이거 놔’ 하듯 몸을 빼어 저 멀리 사라졌다.


당구는 내가 버스터와 조금 친해지려 할 때쯤 친구네로 왔다. 친구 남편이 당구장뒤 가로등 불이 조금만 더 밝았어도 안 데려왔을 거라 할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밤 열두 시가 넘었는데 갈 곳 없이 서성이며 떨고 있었고 혼자 꽤 많이 헤맨 듯 보였단다. 키우면서 보니 아주 영리한데 학대받은 트라우마가 있는 듯 했다. 친구의 마술 손을 거쳐 얼마 안 가 산책을 나가면 모든 사람이 다 쳐다보고 예쁘다고 한마디씩 정도로 변신했다. 


버스터와의 경험으로 당구와도 친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친구 말대로 당구는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나를 보고 짖긴 하지만 내가 저를 무서워하는 것보다 나를 더 무서워해서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내가 다가가도 도망갔다. 어느 주말 친구와 당구 그리고 내가 하이킹을 갔다가 조금 걷다 힘들어 안 걸으려고 하는 당구를 친구가 계속 안고 갔다. 절대 내려서 걷지 않으려는 공주님을 내가 안아 보기로 했다. 평상시는 나를 거들떠도 안 보면서 ‘그래, 정 그러면 한번 안겨 줄게’ 하며 선심 쓰듯 편안히 내게 몸을 맡기고 한참을 걸었다. 그때 처음으로 강아지를 안아보았다. 사진을 찍어 식구들에게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증거를 남겼어야 한다고 아쉬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거뜬히 한다.


버스터가 지난여름 동생 가족이 휴가를 간 사이 사 박 오일 우리 집에 와있었다. 공포는 둘째 치더라도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가족에겐 모험적이 일이지만 버스터를 다른 곳에 보내긴 마음이 안되어 데리고 있기로 했다. 버스터는 정말 손이 안 가는 개다. 밥도 그릇에 담아 놓으면 알아서 잘 먹고 볼일도 시간 맞춰 잘 본다. 산책 나가려고 리쉬를 채우려 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나는 처음에 나가려니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져서 그렇게 펄쩍펄쩍 뛰는 줄 알고 얼마나 후다닥 나갔는지) 버스터와 보낸 사박 오일 동안 막내 동생의 심정을 고대로 이해했다.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내 옆에서 착 붙어있던 버스터가 예쁘면서도 왜 그리 애잔한지. 가족들이 보고 싶진 않은지 잠자리가 편안한지 심심하진 않는지… 아이나 다름없는 말도 못 하는 동물을 책임진다는 일 나의 돌봄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 설사 공포증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큰 딸 친구가 우리 집에 고양이 한 마리를 잠시 맡아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집엔 있을 수 없고 주변에 가까운 쉘터 전부다 꽉 차서 더 이상 못 받는단다. 강아지보다 냥이를 더 좋아하는 큰 애가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했지만 고양이는 자신이 없었다. 훨씬 더 무서워하고 가까이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집으로 데려오는 건 무리였다. 거절하는 마음도 편치 않았다. 딸은 오히려 이 기회가 냥이의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하는데 천천히 시간을 두고 다가가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 일이었다. 불쌍하고 안 됐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참 무거웠다. 


고양이도 언젠가는 무서움을 극복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이제는 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안 돼하는 생각과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포기부터 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바뀔 수 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무섭다고 거절하는 일은 없이 살면 좋겠다. 이런 용기를 준 버스터와 당구가 우리 곁에 오래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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