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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Sep 12. 2022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는 김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책 감상 l Crying in H Mart_Michelle Zuner

H마트에서 울다_미셸 자우너

언어, 문화, 음식 중 내가 태어나 자란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살 때 끝까지 바꾸기 힘든 것이 어려서부터 먹어왔던 모국의 음식이라고 한다. 처음엔 말 안 통하는 것이 젤 걱정이다. 소통 만되면 아무 문제없이 잘 살 것 같다. 조금 지나 기본적인 일상생활 대화가 어느 정도 되면 소통이 말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닫는다. 너무나 다른 배경과 낯선 문화로 아무리 대화가 가능하다 해도 가까워지기 힘들다. 함께 웃고 떠들어도 소속감이 전혀 들지 않고 겉도는 느낌은 쉽게 벗어나 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 힘들게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다 극복하고 본토 사람처럼 산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이 모국 음식이란다.


내 경험도 그렇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여느 이민 가정처럼 우리는 매일 저녁 엄마가 해주는 한국 음식을 먹고살아서 별 아쉬움을 몰랐다. 나중에 한국 식당이나 마켓이 가까이에 없는 곳에 혼자 살면서 내 몸이 한국 음식에 중독? 되어 주기적으로 먹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매운맛이 당겨서 어느 식당을 가든 핫 소스가 없이는 음식이 안 넘어갈 정도였다. 지금은 입맛이 많이 변해서 느끼한 것도 먹고 굳이 매일 한국 음식을 먹는 건 아니지만 영원히 안 먹고는 못 살 것 같다. 전에 동부 보스턴에 사는 어떤 분이 맛있는 짬뽕이 먹고 싶어 서 너 시간 운전해서 뉴욕 한인 타운까지 가서 먹고 다시 운전해서 돌아갔다는 얘길 들은 적 있는데 충분히 수긍이 가는 얘기였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H mart를 비롯하여 대형 한국 마켓이 여러 개 있다. 한국에 없는 것도 여긴 다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이니 어느 집이 더 싸고 맛있을지 고르기만 하면 된다.


저자 Michelle Zauner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 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한국 마켓인 H Mart를 갈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울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은 엄마를 통해서이고 어려서부터 엄마가 만들어 준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란 저자에게는 한국 음식이 곧 엄마였을 것이다. 갑작스레 암으로 엄마를 잃고 오랫동안 테라피를 다녀보아도 슬픔을 극복하기 힘들어하던 저자가 오히려 엄마가 해주었던 한국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보면서 서서히 치유되는 과정을 겪는다. Maangchi라는 편안한 이모 같은 느낌을 주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예전에 엄마와 이모들과 할머니와 먹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본다. 심지어 나는 한 번 꿈도 꾸어 보지 않은 김치 담그기까지 도전한다. 

엄마가 남기고 가신 김치냉장고 안 김치통에 가득 담긴 가족들의 옛 사진- 미셸이 태어나기 전 엄마와 아빠의 젊었을 때 사진부터 미셸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발견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 사진들을 보며 미셸은 엄마가 바로 자신의 존재의 기록 저장소 있음을 깨닫는다. 사진들이 엄마를 대신해 미셸의 과거를 얘기해주고 사진 속에 남겨 있지 않은 것들은 이제 알아낼 도리가 없기에 더 슬프다. 


미셸은 어쩌면 훨씬 더 오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찾아냈을지 모를 자신의 다른 반쪽 정체성을 엄마를 일찍 잃음으로 빨리 찾게 되었을지 모른다. 자신과 엄마의 삶을 되짚어 보며 이 힘겨운 과정을 글로 써내는 여정이 음악가로서의 창작 활동도 더 빛을 발하게 해 주어 마침내 바라던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미셸도 엄마가 먼저 간 미안함에 신께 도와주라고 협박? 하여 자신이 잘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엄마는 돌아가신 뒤에도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믿는다.


If there was a god, it seemed my mother must have had her foot on his neck, demanding good things come my way. That if we had to be ripped apart right at our turning point, just when things were really starting to get good, the least god could do was make a few of her daughter’s pipe dreams come true. p233


미셸이 직접 읽은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전문 성우가 아니지만 메모어라는 장르의 특성상 자신의 이야기를 저자가 직접 읽는 경우가  많다. 진심을 다해 읽은 목소리와 톤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으로 읽었을 때 보다 아픈 마음이 더 절절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다가가 안아주고 늘 하던 미셸의 엄마 대신 괜찮아 괜찮아하며 토닥여 주고 싶은 맘이 내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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