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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an 07. 2021

의사가 되는 마지막 관문: 국가고시 필기시험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의대생(의전원생)인 조 모 학생이 의사 국가고시 필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 의사단체에서 조 모 학생이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소송을 걸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한 오지랖이었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주관하는 국시원 측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른 의사가 정당한 절차대로 치러지는 그 학생의 시험을 제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학생이 의사가 되었을 때, 다른 신규 의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좋은 의사로 성장시키는 것이 선배 의사의 의무다. 그러다가 언젠가 절차상 불법이 인정되어 의사 면허가 박탈되면, 그때부터 그녀가 더 이상의 의료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으면 된다. 지금은 법과 절차대로 진행하면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환자의 피해를 예방할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다.


한창 공부할 기간에 많은 사건에 휘말려 정신적으로 흔들렸을지 몰라도, 조 모 학생은 무난히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의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필기시험이 쉬운 시험은 아니지만, 통과하기는 쉬 시험이기 때문이다. 이도에 비해 격 기준이 상당히 여유롭기 때문인데, 여러 과목 중 40점 미만의 과목이 하나도 없으면서 전체 평균이 60점을 넘으면 된다. 가을에 실기 시험을 마치고 두어 달 꾸준하게 공부했다면, 충분히 합격에 필요한 점수를 얻어낼 실력이 됐을 것이다.


필기시험 얘기가 나온 김에, 나름 스펙터클 했던 나의 필기시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다른 이의 시험에는 '두어 달' 운운했지만, 사실 나는 2주 만에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봤다. 핑계가 있는데, 의대의 시험 시스템 때문이다. 항상 배우고 1~2주 만에 시험을 보다 보니, 매 시험마다 벼락치기를 해야 한다. 학교에 다니는 몇 년 동안 항상 시간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압박감이 없으면 집중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이 되어버렸다는, 근거 있는 핑계다.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를 하라고 넓은 응시생 전용 공부방에 개인별로 책상을 하나씩 줬다. 시험 두 달 전 책상에 앉았는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없었고, 한 달 전에 앉아봐도 상황은 비슷했다. 실컷 놀다가 시험 2주 전이 되어 책상에 앉아, 봐야 할 책을 쭉 훑어봤더니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하루에 한 권씩 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탈락이라는 압박감이 확 들면서 그때부터 2주간 초집중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때의 2주는 인생에서 잠을 가장 적게 잔 2주였다. 원래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었는데, 그때는 저녁 식사 후에 항상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공부를 하러 갔다. 딱히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공부를 하다가 졸리면 집에 가서 눈을 좀 붙이고 다시 커피를 사 와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 책 두 권 정도를 못 보고 시험에 들어갔다.


바쁘게 공부를 하는데, 시험을 5일 정도 남기고 큰 위기가 찾아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른쪽 손목의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참았는데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펜을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더니, 나중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아파왔다. 결국 시험을 2일 남긴 새벽 2시에 응급실로 갔다. 예전에 같이 게임을 하던 형이 어느새 응급실 전공의가 되어 진료를 보고 있었다. 우선 진통제 주사를 맞고, 엑스선 검사와 혈액 검사를 했다. 1시간 정도 후 검사 결과가 나왔고 별 이상은 없었다. 원인 불명 통증에 형은 "너 게임하다가 이렇게 됐지!" 하면서 막 웃더니 오른손에 깁스를 해주고 먹는 약을 챙겨 주었다. 다시 공부를 하러 돌아오니 새벽 4시였다.

    

깁스를 하고 왼손으로 시험을 보는 연습까지 했는데, 다행히 당일에는 통증이 많이 회복되어 깁스를 풀고 제대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 직전까지도 책을 보느라 밤을 새우고 2시간도 못 자고 시험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시험은 운이 좀 따라줘서 나름 준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필기시험이 지금 나에게 남긴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커피를 즐기는 습관이다. 2주간 밤새며 많은 커피를 마신 덕에, 커피는 꼭 졸리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만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손목 통증이다. 이상하게도 그때 생긴 통증 이후로 오른 손목을 많이 쓸 때마다 뻣뻣해지며 통증이 찾아온다. 아직도 원인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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