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호 Dec 19. 2020

평생 공부하는 삶, 공부에 대한 고민과 답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한다. 넓은 의미의 배움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딱히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운다. 누군가와 대화하며 서로에 대하여 배우고, 뉴스를 보며 세상에 대하여 배우며, 때로는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 스스로에 대하여 배운다.     


좁은 의미의 배움을 생각하면, 흔히 말하는 '공부'다. 공부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배움으로,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필요한 것도 많다. 선생님도 있어야 하고, 교재도 있어야 하며, 환경도 중요하다. 그래서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끊임없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나도 다양한 이유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학교에 들어가 이유 없이 공부를 시작했고, 하다 보니 공부가 재밌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서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의사가 되고 나서는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고, 하고 있다. 20년의 세월 동안 공부를 한 셈인데, 짧은 세월이지만 공부를 하면서 했던 고민과 그 답을 적어보려 한다.


1. 암기할 것인가, 이해할 것인가


공부의 기본은 암기다. 어떤 학문을 배우려면 반드시 외워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용어'다. 언어로 치면 글자와 단어, 수학으로 치면 숫자다. 누군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재능을 가졌다 해도 글자와 단어의 의미를 배워 외우지 않고서는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수학 천재가 수학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아마 손가락을 이용해 1부터 10까지 세는 법이었을 거다. 어떤 학문을 배우든 그 학문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암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것을 외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학문의 정수를 배우게 되는데, 암기와 이해 사이에서 방황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주어, 동사, 목적어 등의 문장 구조를 설명한다. 간신히 알아듣는 척하며 외우고 새로운 문장으로 넘어가면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황이 펼쳐진다. 별 수 없이 또 설명해주는 대로 외우게 된다. 암기의 연속이다. 그렇게 수십 개의 문장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문장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반복적인 암기를 통해 이해를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이해는 암기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개념으로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예시의 암기를 통해 어떤 규칙성을 찾아내고, 그 규칙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했다면, 더 이상 암기할 필요가 없어진다. 곱하기를 처음 배울 때는 구구단을 외우지만, 곱하기를 이해하면 어떤 곱셈에도 답을 낼 수 있는 이치다. 공부의 목적은 그 학문의 정수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처음부터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많은 암기를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깨달음이다.


하지만 이해를 위해 공부하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가 많다. 우선 시간의 벽이 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이것저것 찾아가며 이해될 때까지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험 문제에 나올만한 것만 빠르게 외우고 이해는 포기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재능의 벽이다. 아무리 공부하고, 여기저기 물어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다. 이럴 때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이해가 안되면 외우라'는 누군가의 격언을 듣고 우선 넘어가는 게 좋다. 다른 내용을 배우다가 갑자기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지식이 무르익어 저절로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2. 단기 기억을 어떻게 장기 기억으로 만들 것인가


암기를 했든 이해를 했든 필요할 때 써먹으려면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왕 열심히 배운 거 최대한 오래 기억하면 더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배운 것을 끊임없이 잊어버린다. 어제 공부한 걸 오늘 까먹는 스스로를 볼 때마다, 공부의 장기 기억화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공부한 내용은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서랍에 담기는데, 이 서랍의 존속 시간은 하루가 채 안된다. 시간이 지나면 '아, 이거 봤던 건데'라는 메모를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매정한 서랍을 오래 유지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서랍에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집어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랍에 넣은 내용을 사라지기 전에 꺼내어 보는 것이다. 여러 번 집어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계속 같은 공부를 하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고, 공부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최소 한 번은 서랍의 내용물을 꺼내봐야 의미 있는 장기 기억이 만들어진다.


서랍의 내용물을 꺼내는 데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험이고, 두 번째는 발표다.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방법 모두 부담스럽지만, 이것만큼 효과적으로 장기 기억을 만드는 방법이 없다. 두 방법 모두 준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반복 학습을 유도하고, 과정 속에서 기억을 꺼내며 서랍의 존속 시간을 급격히 상승시킨다. 시험과 발표는 단순히 평가만을 위한 방식이 아니고, 장기 기억화에 진짜 목적이 있다.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는 배운 내용을 모두 잊으라는 신호가 아니다.


시험과 발표는 기억을 꺼낸다는 것 외에도 기억을 체계화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나열된 지식 속에서 그 중요도를 파악하고 체계를 구성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출제한 시험을 통한다면, 공부한 내용의 요점을 파악하고 혼동하기 쉬운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 전문가 앞에서 발표를 한다면, 스스로 지식 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 기승전결 형태의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여 공부의 이해도를 검증받을 수 있다.


3. 공부의 깊이를 어떻게 깊게 할 것인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내용을 이해하고 시험과 발표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면, 실제로 아는 건 빙산의 일각임에도 불구하고 뭘 좀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 환상은 나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후배에게 직접 교육을 해보는 순간 처참히 깨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1만큼의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1이 아닌 10만큼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암에 잘 걸린다'는 내용을 공부하여 이해했다고 하면, 나이가 들면서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이 아닌 교육하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몸에 생기는 변화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암이란 무엇인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이외에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고, 젊을수록 잘 걸리는 예외적인 암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하나를 알려주는 일은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지식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이런 사실은 처음부터 알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공부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게 된다. A를 설명하기 위해서 B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고, A와 B 사이의 어떤 연결고리를 알게 된다. 이 과정은 다른 학문인 C, D로 이어져 나가고, 학문 간의 연결 고리를 찾고 만들어내면서 전체 학문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공부가 깊어지는 것의 끝은, 지금까지 공부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이 세상에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어떤 현상들이 있고, 세상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상상 속의 기술이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어떤 것을 통해서도 정답을 배울 수 없다. 그러나 공부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은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고,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구를 한다. 우리는 그들을 학자(學者)라 부른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이 문장의 '배움'은 좁은 의미의 배움인 '공부'를 뜻하는 듯하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공부에 대한 고민에서,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어떤 이유가 찾아와도 공부를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멈출 이유가 없으니 끝없이 계속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첫 직업은 교육을 받는 사람을 뜻하는 '학생(學生)'이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직업을 가지더라도 은퇴할 수 없는 직업이다. 가끔은 유급하고 가끔은 휴학하면서도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이제는 무섭지 않은 코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