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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Dec 06. 2020

이제는 무섭지 않은 코로나

나는 코로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일한다. 암환자들의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는 곳이다. 환자가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면 보통 한 달 이상의 기간 동안 병원에 꾸준히 방문하여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의 환자 건강 관리 역시 방사선종양학과에서 담당한다. 치료받는 환자의 상태를 매주 한 번씩 체크하고, 환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진료를 요청할 때에도 언제든 추가 진료를 하고 있다. 사실 진료를 요청하는 환자가 어떤 증상을 호소하더라도 의사가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는데, 올해 1월 코로나가 터진 뒤로는 발열이나 기침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나면 상당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세 명 만났다. 세 명밖에 안 되는 이유는 보통 병원 입구에서 여러 과정을 통해 환자에서 코로나의 'ㅋ' 느낌만 나도 못 들어오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자들은 병원 외부에 위치한 선별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엄격하게 관리를 해도 항상 구멍은 있기 마련이고, 어떻게 나의 앞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세 명의 코로나스러운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첫 번째 환자가 진료를 요청한 날은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때는 전국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있었다. 중국 우한의 병원에 시체 가방이 쌓여있는 사진이 퍼지고, 치사율도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가 되던 시절이다. 걸리면 죽는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나 역시도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폐암 환자 한 명이 요즘 기침이 심해졌다며 진료를 요청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잔뜩 긴장했지만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진료를 봤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기침이야 폐암 환자에서 아주 흔한 증상이고, 환자분은 평소에 집에만 계셔서 보호자 외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함께 온 보호자 역시 비슷해서, 안심시켜 드리고 기침약을 처방해서 보냈다.


환자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척, 침착하게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척했지만, 진료를 마치고는 손을 박박 문질러 닦고 하루 종일 코로나 뉴스와 논문을 찾아봤다. 무지에 의한 공포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감염병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떤 획기적인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기에 나온 공포였다. 머리로는 집에만 있던 환자가 코로나에 걸려 나에게 옮길 확률이 제로라는 걸 알면서도, 두근거리는 심장은 어느새 전지전능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나의 사망과 인류의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두 번째 환자는 한창 대구에서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던 3월에 진료를 요청했다. 그때는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차츰 퍼지기 시작하던 때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폭발적인 증가를 보이며 전 국민이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으려고 하던 시절이다. 이 때도 코로나에 대한 정보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무증상 환자를 통해 엄청난 전파력을 보이고, 젊은 환자에서는 치사율이 0에 수렴하지만 고령 환자에서는 치명적이라는 정보는 있을 때였다. 대구 외에서도 산발적인 집단감염이 보도되며 언제 어디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국적으로 있었다. 이 환자도 그랬다. 오래전부터 앓던 기관지염이 있는 분이었는데, 기관지염이 있으면 기침이 잦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본인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기침이 나오니 코로나가 아닌지 갑자기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진료를 해보니 역시 코로나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어 안심시킬 목적으로 흉부 엑스선 검사를 처방했다.


엑스선 검사를 처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병원 내의 코로나 환자를 관리하는 감염관리실이란 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왜 코로나 의심 환자를 상의도 없이 임의로 엑스선 검사를 처방했냐는 것이었다. 앞뒤 상황을 한참 설명해서 감염관리실을 겨우 이해시키고 검사를 진행했다. 엑스선 검사 결과는 역시 정상이었지만, 감염관리실의 문의에 틀린 구석은 없었다. 만에 하나 진짜 코로나 환자였으면 병원에 코로나가 퍼졌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나의 안일한 생각이 병원 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며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처럼 이 환자가 왔던 3월과 4월 즈음에는 코로나에 대한 무지보다는 누구든 걸릴 수 있다는 불안에 의한 공포가 크던 시절이다. 병원에서도 코로나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엄격한 체계를 만들었고, 국민들도 자발적으로 방역에 참여하여 대구에서 시작된 코로나를 대구 안에서 끝내는 데 성공했다.


3월 이후 한참 코로나 증상의 환자가 오지 않다가, 며칠 전 완벽한 코로나 증상을 가진 환자가 진료를 요청했다. 몸살 기운이 있고 어지럽다며 왔는데, 혈압계로 측정한 혈압은 정상인데 심박동이 빨라져 있었다. 확인해 보려고 손목에서 직접 맥박을 재는데, 손목이 뜨거웠다. '어라?' 하는 마음에 얼른 귀에서 체온을 측정하니 38도가 넘는 열이 있었다. 병원에 들어올 때 2번이나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측정하는데, 추운 날씨로 인해 피부 온도가 떨어져서 병원 입장에 성공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물어보니 심지어 목도 아프고, 회사에도 다닌다고 하셨다. 일일 확진자 5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코로나가 아닌 것으로 의심하는 게 더 어려운 환자를 만난 것이다. 얼른 선별 진료소로 보냈다. 선별 진료소에서 오전에 시행한 코로나 검사는 퇴근할 때쯤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에 왔는데,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았던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이젠 끝났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의심되는 환자를 만났음에도 코로나가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내가 코로나로 인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코로나는 40대 이하의 환자에서 0퍼센트 대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무증상이거나, 고통스러울지언정 절대 죽지는 않는다. 코로나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밝혀진 지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지 못한다. 두 번째 이유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방역 수칙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KF94 마스크를 잘 썼고, 환자를 만진 손을 잘 닦았으며, 진료 후 진료실을 깨끗하게 소독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걸리면 내 잘못이 아니라 코로나가 잘한 거다. 세 번째 이유는 만약 코로나에 걸려도 일을 하다가 걸린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병원 입구에서 못 걸러낸 코로나 의심 환자를 직접 잡아내서 선별 진료소로 보낸 업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코로나에 걸린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공포를 느끼지 않는 스스로를 보며 이제 끝났다고 느낀 이유는 병원이란 공간의 특성 때문이다. 병원은, 특히 대형병원은, 코로나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다. 코로나로 병원이 무너지면 코로나 환자뿐 아니라 모든 환자에 대한 치료가 불가능해지며 지역 의료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모두가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해도 병원과 의료진만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진이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코로나는 병원으로 침투하게 되는데, 이는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 병원은 아직이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많은 대형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집단 감염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이는 나의 공포 중추가 마비되어버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코로나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의료진이 방역에 소홀해졌고, 병원 내 집단감염으로 이어진 것이다. 방역에 무한책임을 가진 의료진의 마음이 이렇게 풀어졌다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코로나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나마 뭘 좀 안다는 의료진의 마음이 이렇게 풀어질 정도면, 일반 국민들의 마음은 풀어지다 못해 녹아내리고 있을 것이다. 일관성 없는 방역 단계와 위기의식 없는 사회 지도층의 메시지는, 얼마 전 발표된 백신 개발 성공 뉴스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코로나 종식이 요원한 와중에 코로나에 대한 공포감만 먼저 종식시켰다. 무서운 게 없는 국민들은 더 이상 자발적으로 방역에 참여하지 않게 됐으며, 이제는 추적이 불가능한 코로나가 수도권 전체를 뒤덮으며 널리 퍼지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전체를 다 닫지 않고 어딘가 문을 열어두면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 오히려 감염 위험성이 올라간다. 국민의 참여에 기대기보다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한 순간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단계를 올려서 확산세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는데 집중하고, 병원을 최우선으로 지켜내면서 중증 환자들이 병원 밖에서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병상 확보에 힘써야 한다. 의료 붕괴만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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