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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May 15. 2021

잡식성 영화광의 영화 속 반전 등급 매기기

10년 전쯤, '반전 영화'라는 장르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반전이 있다고 알려진 영화란 영화는 다 찾아보던 시절이다. 그렇게 수많은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새 반전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 세상에 반전이 없는 영화는 없다는 것이다. 반전을 핵심으로 하는 영화든, 재미와 감동을 위한 영화든, 공포 스릴러 영화든 간에 영화 속에는 항상 크고 작은 반전이 존재했다. 반전은 영화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훌륭한 장치이기 때문에, 굳이 반전 영화를 찾을 필요 없이 재밌는 영화를 찾아다니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형태의 반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반전 영화'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영화 속 반전'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영화든 거부감 없이 보는 잡식성 관객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 속 반전이라고 항상 재밌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훌륭한 반전과 나쁜 반전이 존재한다. 영화 속 반전을 상, 중, 하 3개의 등급으로 나눠보려고 한다.


1. 상급 반전: 식스센스급 반전


반전 영화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식스 센스>가 아닐까 싶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보다 영화의 반전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얼마나 유명한지, 일상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전을 묘사할 때 관용구처럼 '식스센스급 반전'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실제로 식스센스의 반전은 영화 속 반전 중 최고에 속하고, 상급 반전을 '식스센스급 반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식스 센스급 반전을 가진 영화의 특징은,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마지막에 공개되는 반전이 굳이 없어도 이미 완성도 높은 재밌는 영화라는 점이다. 반전이 지배하고 있는 영화 속 세상에서는, 그 반전이 당연하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영화가 흘러간다. 관객들이 느끼기에 이질적인 몇몇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영화적 설정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된다. 이미 영화가 충분히 재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반전이 공개되는 순간, 이전의 이질감을 느꼈던 장면들이 뇌를 스쳐 지나가게 되고, 입에서는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외치며 반전이 주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식스센스급 반전을 가진 영화들은 반전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들이고, 이 영화들만이 '반전 영화'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반전을 곱씹게 되어 여운이 길게 남고, N회차 관람에서도 지속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2. 중급 반전: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반전


선과 악이 분명한 영화나, 굳이 선악 구분이 어려워도 주인공과 악당이 존재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러닝 타임 내내 끊임없이 위기를 맞는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처할수록, 우리는 주인공의 상황에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주인공의 각성이든, 강력한 조력자의 등장이든, 아니면 주인공의 치밀한 트릭이든, 뭐든 좋으니 반전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 기다리던 반전이 극적으로 나타날 때, 관객은 감동을 받고 환호를 보내며 반전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매트릭스> 네오의 앞에서 총알이 멈추는 순간이 그렇고,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세오덴 왕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 간달프가 언덕에서 등장하는 장면이 그렇다.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반전'도 훌륭한 반전이지만, 중급 반전에 배정된 이유는 자칫하면 뻔한 반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라는 반전이기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타이밍에 반전을 보여줬다가는 한순간에 김이 새어버린 관객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연출의 밀고 당기기가 중요한 반전이다.


훌륭한 반전을 보여주는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반전을 가진 영화'가 탄생했다면, 관객들에게 주기적으로 '반전이 포함된 명장면'이 회자되면서 잊히지 않게 된다.


3. 하급 반전: 알고 보니 반전, 되감기 반전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해 반전을 넣고 싶은데, 상상력이 부족하다거나, 굳이 정교한 반전이 필요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알고 보니 반전'이나 '되감기 반전'을 가볍게 집어넣는 영화들이 상당히 많다. 주로 개연성보다는 오락성에 집중하는 영화들이 그렇다.


알고 보니 반전과 되감기 반전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나 승리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승리를 '알고 보니' 주인공에게는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든지, '알고 보니' 평소 친하게 지내던 노숙자가 엄청난 부자라든지 하는 식으로 풀거나, 주인공의 뜬금없는 승리를 보여준 뒤 '되감기'를 통해 주인공이 이길 수밖에 없는 트릭을 설명하는 식으로 풀어버린다. 두 반전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눈치챘겠지만, 하급 반전과 중급 반전의 목표는 다르지 않다. 다만, 반전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질 뿐이다. 재밌는 것은, 하급 반전을 가진 영화가 반전으로 비난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관객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전이 아닌 오락 요소를 보려고 온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재미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번외. 최하급 반전: 홍보 반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절대 보지 않는 영화가 있다. 영화를 홍보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반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영화다. 반전 영화 애호가를 공략하려는 의도겠지만, 제작사가 스스로 나서서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꼴이다.


반전의 재미는 '예측 불가능'에 있다. 이 예측 불가능성에는 반전의 내용뿐 아니라 반전의 존재 자체도 포함되어 있다. 반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영화를 봐야만 그 반전에 제대로 당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 전체가 아닌 반전에 집중하게 되면서 관객은 영화에 담긴 모든 재미를 잃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사가 나서서 영화에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영화는  볼 이유가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영화 홍보물은 일절 보지 않고 제목, 감독, 배우만으로 볼 영화를 결정하고 있다. (반전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반전 영화의 예시를 거의 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하나 추천하자면 본 사람이 거의 없는 손예진 주연의 <비밀은 없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넷플릭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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