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호 May 03. 2021

실전 심폐소생술 (CPR)

누군가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도 알아야 하는 의학 지식을 단 하나만 고르라 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심폐소생술'이라고 할 것이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다른 누군가를 살릴 가능성을 올려주는 유일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관에서 심폐소생술 방법을 열정적으로 홍보하고 교육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반인들이 배우게 되는 심폐소생술은 '기본 심폐소생술'로, 다른 장비 없이 건강한 신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이다. 크게 어려운 내용이 없기에, 매뉴얼대로 배우고 실습까지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상당히 붙곤 한다. 배운 것을 써먹고 싶은 마음에 눈 앞에 심정지 환자가 나타나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사람도 가끔 있다. 하지만 진짜 심정지 환자가 눈 앞에 나타나면 보통은 머리가 하얘진다. 이론과 실전의 괴리는 어떤 분야에든 있는 것이지만, 눈 앞에 숨이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괴리가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기에, 정해진 매뉴얼에 더하여 몇 가지 설명을 추가해 실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른바 '실전 심폐소생술'이다. (심폐소생술 매뉴얼은 간단한 검색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1. 왜 하는가

놀랍게도, 일반인이 배우는 기본 심폐소생술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가슴을 열심히 누르고 입에 숨을 불어넣는 동작으로는 사람이 살아날 수 없다. 병원에서 의료인들이 시행하는 '전문 심폐소생술'에 포함된 '약물 주사 또는 전기 충격'만이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 


일반인이 시행하는 기본 심폐소생술의 진짜 목적은, 심정지 환자 발견 즉시 인위적인 피의 흐름을 만들어  '골든 타임'을 연장하는 것이다. 심장은 우리 몸 전체에 피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심장이 멈추면 더 이상 피가 가지 못하게 되고, 피를 받지 못한 장기들은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하지만 빠른 시간 내로 다시 피가 공급되면 죽어가던 장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데, 너무 늦어버리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피가 끊긴 장기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때까지의 시간이 골든 타임이다.   


우리 몸에서 골든 타임이 가장 짧은 장기는 '뇌'다. 뇌는 피가 끊기는 순간 초 단위로 빠르게 죽어간다. 아무것도 안 하고 5분 정도 지나면 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통해 뇌에 피를 지속적으로 전달한다면, 뇌가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주변 사람이 기본 심폐소생술로 골든 타임을 연장해준다면, 병원까지 이동하여 전문 심폐소생술을 받아 생존할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



2. 어떻게 하는가

심폐소생술을 왜 하는지 이해했다면, 심폐소생술 방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쉽다. 


우선, 심정지 환자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매뉴얼에 없는 대단한 확인 방법은 없다. 다만, 항상 언제 어디서든 심정지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하지 않으면 눈 앞에 심정지 환자가 있어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심정지 환자가 아닌데 맞다고 착각하는 것보다, 맞는데 아니라고 착각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


다음은, 당연히 119에 신고해야 한다. 심정지 환자는 병원에서 전문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발생 장소와 병원을 이어 줄 구급대원이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 신고 직후 기본 심폐소생술을 시작해야 하고,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신고 후 심폐소생술을 시작해야 하는데, 심폐소생술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땀이 뻘뻘 나고 숨이 차면서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의 심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장은 엄청난 힘으로 우리 몸에서 수십 년을 쉬지 않고 피를 짜는 장기로, 몸 밖에서 그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드라마나 영화에 심폐소생술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안타깝게도 제대로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정확한 위치, 정확한 깊이, 정확한 속도가 모두 갖춰져야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이다.


정확한 위치를 위해서는, 상의를 모두 벗겨야만 한다. 눈으로 매뉴얼에 적힌 정확히 위치를 확인해야만 심장 바로 위 올바른 위치에 힘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 위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은 살리고 싶은 의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확한 깊이를 위해서는, 힘을 올바로 전달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매뉴얼에 나오는 5cm 깊이는 작아 보이지만, 사실 강한 압력(힘이 약한 사람은 온 힘을 다한 압력)이 가해져야만 도달할 수 있는 깊이다. 인간의 몸은 심장을 보호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웬만한 힘으로는 심장을 누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시간 일정하게 압력을 가해야 하기에, 처음부터 자세를 제대로 잡고 끝까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정확한 깊이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폐소생술의 정확한 자세는 역시 매뉴얼대로 하면 되는데, 팁을 주자면 다리를 무릎 꿇은 상태로 충분히 넓게 벌려서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이후 환자의 가슴 한가운데에 자신의 손바닥 아래쪽 단단한 부분만 접촉하여 힘이 좁은 면적에 실릴 수 있게 하고, 환자의 몸과 나의 팔이 직각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 '직각'이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어렵다. 확인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시선이다. 시선의 끝이 환자의 가슴 한가운데를 보고 있으면 팔은 직각이 아닌 것이다. 머리가 환자의 몸을 넘어가서 시선이 가슴 한가운데보다 조금 먼 곳을 보고 있어야 팔이 직각이 되고, 제대로 힘을 실어 흉부압박을 할 수 있다. 제대로 힘이 실렸으면, 팔은 오로지 쭉 펴는 것에만 집중하고 상체 전체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면 된다. 팔이 접히는 순간 전달되는 힘이 급격히 약해지므로, 팔을 접지 않고 쭉 편채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심폐소생술의 정확한 속도는 1분당 100회이다. 과학적으로 정해진 속도다. 최대한 빠르게 해서 피를 빨리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알다시피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장기다. 수축하여 피를 보내고, 이완하여 피를 채운 뒤, 다시 수축하여 피를 보낸다. 심폐소생술은 잠시 환자의 심장이 되는 것이기에, 우리도 힘 있게 심장을 누른 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심장에 피가 찰 시간을 줘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느려서는 안 되니, 1분당 100회의 적절한 속도로 압박과 이완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스마트폰 메트로놈 어플의 도움을 받게 된다.


실제로 해보면, 1분당 100회라는 속도가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시작할 때는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허둥지둥 시작하면 분당 100회를 훌쩍 뛰어넘는 속도가 되기 쉽다. 너무 빠르게 해 버리면 하는 사람도 금방 지치고,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되기 쉽다. 침착하게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시작하고 1분이 넘어가게 되면, 순식간에 상황은 역전되어 분당 100회라는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숨이 가빠오며 땀이 나기 시작하고, 집중력을 잃는 순간 속도가 느려지고 자세가 망가지게 된다. 보통 이 정도 했으면 다른 사람과 교대하는 것이 맞지만,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므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환자를 포함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나의 심폐소생술이 정확하게 되고 있는지만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 버티기에 가장 좋다.


참고로 혼자 할 때는 1분당 100회의 속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분당 100회의 비트 속도를 가진 유명곡을 머릿속으로 부르면서 하는 방법이 있다. (싸이의 <챔피언>을 추천한다)


3. 인공호흡?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심폐소생술은 좋지 못한 자세로 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분별하게 인공호흡을 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입과 입을 직접 대고 하는 인공호흡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호흡은 기본적으로 매우 어렵다. '기도를 확보하고 숨을 불어넣는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대로 하려면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도는 무엇이고,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이며, 숨은 얼마나 불어넣어야 하는가? 속성으로 배운 일반인이 실전에 사용하기에 지식은 너무 복잡하고, 상황은 더 급박하다. 


인공호흡을 하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인공호흡을 할 때 흉부압박을 멈추게 되는데, 제대로 된 인공호흡을 하지 못한다면 흉부압박을 멈추면서 잃는 골든 타임이 크다. 또한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환자과 입을 직접 접촉하면서 심폐소생술 시행자에게 모종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론은, 기본 심폐소생술에서 인공호흡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심폐소생술 = 흉부압박'이라고 알고 있으면 된다. 실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인공호흡은 전혀 고려하지 말고,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흉부압박을 끊기지 않고 올바르게 시행하는 데에 온 힘을 다하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