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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ug 28. 2024

안전민감증

요즘은 운전하는 것도, 길을 걷는 것도 예전보다 쉽지 않다. 차를 타면 급발진이 날까 걱정되고, 길을 걷을 때는 혹시 내 주변 운전자가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리지 않을까 무섭다. 일종의 간접 PTSD랄까. 최근 사건사고들이 참 많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꺼려지고, 언제 어디서든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안전에 대해 상당히 의심이 많고 예민해져 있다.


작년에 직접 겪은 사고도 있었다. 공보의가 되어 자전거 취미를 시작했다.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붙이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시속 60km를 돌파해 보겠다고 브레이크에 손가락 하나 올리지 않고 마구 밟다가 크게 넘어졌다.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나 전신에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어 한참 고생하고 아직도 흉이 많이 남아있다. 


자동차 관련 사건도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꽉 막힌 국도를 이동하고 있었는데, 차 앞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뭔가가 타면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고, 잠시 후 하얀 연기는 없어졌다. 조금 가다 보니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차가 제대로 안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속도가 오르면 자동으로 제동이 걸렸다. 정차하려 했으나 2차선 중 바깥 차선은 공사 중이라, 한 차선으로 느릿느릿 가는 도로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20분 정도 차를 굴리듯이 운전하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차가 폭발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엄청나게 했다. (원인은 엔진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호스의 파열이었다. 냉각수가 터져 나올 때 하얀 연기가 나왔던 것. 더 이상 나올 냉각수가 없으니 연기는 멈췄고, 대신 엔진이 과열되면서 자동으로 제동이 걸리는 현상이 생겼던 것이다. 다행히 엔진 손상은 없어서 호스만 교체하고 차는 문제없이 타고 있다.)


자전거 사고 후 며칠 동안, 넘어질 때 상황이 떠오르며 흠칫 섬찟할 때가 있었다. 자다가도 깨고 그랬다. 자전거를 타는 게 두려워졌다. 자전거를 두려워하는 나를 인정할 수 없어서 상처가 낫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무시하고 꾸역꾸역 코스를 다 돌았다. 그 후로는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됐다. 이제는 브레이크에 손가락도 잘 올리고,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에서 재미를 찾고 있다.


자동차 사건은 후유증이 좀 더 오래갔다. 한동안 운전이 두려웠는데, 차를 안 타고 다닐 수는 없으니 긴장 상태로 계속 탔다. 지금은 많이 안정되긴 했으나 자전거처럼 완전히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간단한 기계인 자전거에 비해, 내가 제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자동차에 대한 걱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다. 직간접적인 여러 경험을 통해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다.


나만 그런 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겁이 많아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국 인생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겪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전에 대한 규정과 법이 촘촘해져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자가 내가 된다면 법과 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가 겪은 사고로 인하여 새로운 안전망이 생길지라도, 내가 입은 상처와 흉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크고 작은 경험이 쌓이다 보면 결국은 그 누구도 믿지 못한 채 본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안전과민증 환자가 된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에 전혀 관심이 없어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으면 안전불감증, 충분히 안전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안전을 걱정하며 스스로를 불안에 몰아넣으면 안전과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불감증은 언젠가 큰 사고를 당하는 불행을 겪겠지만, 안전과민증이라고 행복할까? 절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고, 여러 사건 사고를 겪어도, 아무리 겁이 나더라도 안전과민증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불감과 과민 그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굳이 용어를 붙이자면 '안전민감증' 정도? 민감하게 안전을 관리하되, 본인이 이미 확보한 안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위험 상황 시 행동 수칙도 숙지하고 체득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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