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무이자가 아니라 리볼빙입니다
“아기가 거꾸로 있네요. 수술 날짜 잡읍시다.”
임신 37주차 정기 검진에서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게다가 아기는 지난 검진 때와 똑같은 몸무게(2.7kg)로 2주 동안 전혀 자라지 않았다고 했다. 자연분만 외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제왕절개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당황스러워 하는 나의 표정을 읽은 의사는 이미 아기는 뱃속에서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었고 (엄마 닮아서 좀 산만한 편?),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분만 예정일에 응급 제왕절개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나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의사는 나에게 다음주 중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고, 나는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좋은 날짜’를 받기 위해 철학관에 연락했다. (알고보니 이렇게 날짜를 받아서 아기를 낳는 산모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렇게 1월 9일 오전 7시 30분 부터 9시 30분 사이에 낳으라는 일면식도 없는 용하신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우리 아기의 생일을 정하게 됐다.
가라앉은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갑작스러운 수술 결정도 그렇지만, 아기가 2주 동안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이 날 괴롭게 했다. 임신 기간 동안 여러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무탈하게 잘 자라준 아기였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로부터 늘 “엄마, 아기 정말 잘 키운다. 너무 잘하고 있어요!”라는 칭찬만 들어왔었는데, 게다가 33주차 때 아기가 거꾸로 위치했다는 소리를 듣고 미친듯이 요가를 해서 35주차에 아기를 제자리로 돌려놔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했는데.
모든게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뭐랄까, 고등학교 3년 내내 내신성적 관리 잘 하다가 수능을 홀랑 말아먹은 그런 기분.
아기가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데 엄마라고 별 수 있나. 자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이런걸까.
자연분만 외엔 출산 방법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일주일 안에 제왕절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입수해야 했다. 출산 가방도 제왕절개 산모 버전으로 다시 꾸려야 했다. 자연분만 산모에게 굳이 필요 없는 산후복대와 압박 스타킹 등이 내 출산 가방에 추가됐다.
제왕절개는 말 그대로 배와 자궁을 절개하는 수술이라, 출산 후 통증이 엄청나다. 덕분에 각종 진통 방법이 발달했는데, 요즘엔 무통주사(척추의 경막외강 내에 마취제를 주입하는 방법)와 페인버스터(수술 부위에 초소형관인 카테터를 이용해 국소 마취제를 주입하는 시술) 둘 다 추가해 수술 후 회복 기간을 견디는 것이 대세라 했다. 내 담당 의사는 페인버스터는 나온 지 얼마 안 된 방법이라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아픈 것 보다 낫겠다 싶어 무조건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모두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배에 어차피 흉터가 남게 되었는데, 제왕절개의 장점은 최대한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제왕절개 소식을 알리기 무섭게 사방에서 오지랖이 쏟아졌다. 애를 왜 못 키워서 돌아가게 만들었느냐는 둥, 예정일 전에 다시 돌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둥, 제왕절개면 애 편하게 낳겠다는 둥.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들이야 싶었다. 담당 의사가 제왕절개 말고 방법이 없다는데 니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세요.
특히 “편하겠다”는 말은 내 저혈압 치료제였다. “생살을 가르고 장기를 가르는데 뭐가 편해요 미친X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 참았다.
나의 출산 방법에 대한 주변의 헛소리는 모두 무시하고, 수술 예정일 전까지 오로지 아기 살찌우기에만 집중했다. (엄청 먹었다는 뜻)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2.7kg 이라고 했던 아기는 약 열흘만에 3.5kg 까지 자라있었다. 엄마도 아기도 같이 포동포동 살이 오른 것.
제왕절개를 하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물 포함 12시간 금식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술 환자들이 오전 수술을 선호하는 건 바로 금식 때문일듯 하다. 수면 시간까지 포함하면 어떻게 좀 더 수월하게 버텨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수술 전날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긴장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해 쓰린 속을 부여잡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영하 17도. 체감온도 영하 23도. 새벽 5시 30분.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 우리 부부는 병원으로 향했다.
늘 임산부들로 북적이던 병원 로비가 한산했다. 익숙한 장소의 낯선 모습에 긴장이 배가 됐다.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수술 전 최종 준비에 들어갔다. 항생제 테스트는 거북하다는 소문에 비해 견딜만 했다. 또 출산 과정의 대표 굴욕 중 하나라는 제모는 그렇게까지 창피하진 않았지만 좀 당혹스럽긴 했다. 브라질리언 왁싱이나 쉐이빙폼을 사용한 제모에 익숙했던 터라, 그렇게 쌩으로(?) 칼만 가지고 털을 박박 밀어버릴 줄 몰랐다. 고요한 새벽 병실에 울려퍼지는 박박 소리. 나도 모르게 간호사에게 “정녕 다 밀어버리실 참인가요?”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휴. ‘미리 제모를 받고 가라’는 출산 선배들의 말엔 다 이유가 있었다.
제모 다음엔 각종 동의서 작성이 이어졌다. 그 중 하나가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사용 여부다. 간호사는 “무통 주사만으로 충분해서 페인버스터는 그렇게 추천하지 않아요”라고 의사와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페인버스터 하고나면 8시간 동안 누워만 있어야 해서 힘드실 거예요”라는 말이 페인버스터를 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8시간동안 머리를 들지 못한 채 정자세로 누워 꼼짝할 수 없음’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몇해 전 뇌수막염 의심으로 척수액을 뽑는 검사를 했을 때 이미 겪어본 고통이었다. 나는 간호사의 그 한 마디에 페인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제왕절개 예정 산모가 있다면, 무조건 페인버스터를 추가하시길 바랍니다. 어차피 제왕절개 수술 이후엔 하루종일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장기를 갈랐는데 어떻게 움직여요?) 페인버스터 추가하고 조금이라도 통증을 덜어내세요.
간호사는 수술 전 마지막 초음파로 아기가 거꾸로 잘 있는지 확인했고, 아기 머리통은 반전 없이 내 가슴 바로 밑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게 10분 가량 대기하다 수술실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그냥 걸어서 수술실에 입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병원마다 달라요.)
큰 수술 경험이 없던터라 삭막한 수술실 풍경에 좀 움츠러 들었다. 십자가 모양의 침대 위로 어기적 거리며 올라가, 하반신 척추 마취를 위해 옆으로 누워 몸을 웅크렸다. 척추 마취는 견딜만 했다. 그리고 바로 수면 마취가 이어졌고, 담당의사가 수술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
“엄마, 이제 일어나세요!”
응…? 엄마...? 아, 아기가 태어났구나. 차가운 회복실 침대에서 겨우 눈을 뜨니 다리는 얼얼했고, 굉장히 추웠다. 아기 울음소리 한 번 못들었는데, 바깥에 남편과 아기가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어색했다. 이렇게 아기가 뚝딱 태어나다니.
눈 뜨자마자 나는 남편을 찾았고, 간호사는 남편 대신 내 핸드폰을 쥐어줬다. 평소에도 그 둘이 등가교환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신거지. 남편이 보낸 메시지엔 아기의 영상과 사진이 가득했다. 아, 쟤가 내 애구나. 빨갛고 쭈글쭈글한 내 아기.
그리고 두 눈으로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남편의 메시지.
‘아기가 수술 직전에 또 움직여서 자리 바로 잡았대. 근데 그걸 배 가르고 나서 알아서 그냥 꺼냈대.’
…나 수술 왜 한거니?
마취가 풀리면서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고, 슬슬 수술 부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낯선 느낌이었지만 무통주사가 내 등짝에 꽂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문은 불과 5분만에 열렸다. 누군가 내 상하체를 두동강 내려고 톱으로 써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무통주사 효과가 떨어지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내가 그 불운한 경우에 해당됐다. 결국 나는 제왕절개 회복기간 내내 4시간 마다 한 번 씩 진통제를 추가로 맞아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연분만을 일시불, 제왕절개를 할부에 비유하는 농담이 있다. 나는 양심도 없이 무이자 할부라고 믿었는데. 이건 리볼빙이었다. 고통을 미룬자가 치르는 혹독한 대가.
제왕절개 수술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수술 부위 근처를 힘껏 눌러 오로를 배출시키는 것 아닐까? 간호사가 누워있는 나의 배를 (그것도 수술 부위 바로 위!) 예고도 없이 눌렀을 때, 나도 모르게 “아아악!”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 과정은 마치 액션 영화에서 악당이 주인공을 고문하기 위해 부상당한 자리를 일부러 쑤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자궁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오로라고 하는데, 자연분만은 오로가 자연스럽게 배출되지만 제왕절개는 물리적으로 외부에서 눌러줘야 오로가 잘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데, 내 배를 누르러 간호사가 올때마다 나도 모르게 “제발 살살해주세요”라고 빌고 또 빌었다. 혹시 내가 엄살이 심한건 아닐까 싶었던 순간, 옆 입원실에서도 나와 같은 “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픈거 맞구나 이거.
수술 후 이튿날이 밝아왔다. 소변줄을 빼고, 다리의 감각도 꽤 많이 돌아왔다. 간호사는 오늘부터 일어나서 내 힘으로 걷고, 소변을 봐야한다고 했다. 늘 해오던 일인데 갑자기 ‘두 발로 걸어서 오줌싸러 가세요!’가 너무 어렵게만 들렸다.
제왕절개 후엔 배에 힘을 줄 수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손목으로 지탱해 몸을 일으키다 손목이 많이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병원침대(모션베드)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선 침대의 도움을 받아 상체를 일으키고 힘 빠진 다리를 내린 후에 남편이 잡아 올려주면 갓 태어난 기린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며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을 수 있다. 이렇게 걷는 이유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가 아니라 수술 부위는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화끈거리고, 뱃속 장기가 죄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걸으셔야 해요! 그래야 회복이 빠릅니다!”
이 한 마디에 나는 수술 3일 차부터 열심히 병원 복도를 어기적 거리며 걸어다녔고, 그 덕분에 통증도 조금씩 나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진통제는 여전히 필요했다.
그리고 3일 차엔 무통주사를 제거한다. 간호사는 "무통주사 제거 후 아플 수 있어요. 아프면 말씀하세요"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무통빨’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지라, 무통주사를 빼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확신했다. 무통없이 오롯이 수술 후 통증을 견뎠다는 사실을. 억울한 마음도 잠시, 나는 그저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덜 아프기만을 바라며 걷고 또 걸었다.
내가 분만한 병원은 제왕절개 입원 기간이 3박 4일로 다른 병원보다 짧은 편이었다. (보통 4박 5일~5박 6일정도다.) 앞으로 진통제 주사 없이 먹는 약으로만 버텨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실은 산후조리원에서 계속 바들바들 떨며 걸어다녀서 조리원 직원들의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이쯤에서 나의 고통이 끝나면 좋았겠지만, 천국이라 불리는 산후조리원에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제왕절개 산모들 중 무통주사 제거 후 너무 아프다면, 꼭 진통제를 맞길 바랍니다. 아픈거 참는다고 상주는거 아니니까.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날때 손목 쓰지말고 꼭 옆으로 돌아서 일어나기로 약속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