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일기장에는 죄다 '모르는 것' 뿐이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드문드문 쓰여진 글들. 할머니는 당신이 섭섭하고, 서운하고, 슬프고, 외로운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유를 알지 못하니 물을 떠다두고 천지신명께 빌거나, 먼저 가신 할아버지를 찾는 일이 많았다. 원래 나이들면 다들 섭섭해하셔, 따위의 흔한 말로 넘길 수도 있지만 내 할머니의 외로움과 슬픔이 너무 쉽게 보편화되는 것은 어딘가 또 싫다. 할머니는 슬프고 외로울때마다 일기를 썼나, 싶다. 그래도 같이 웃고 떠들고 좋았던 날들도 많은데 어째 할머니 일기장에는 아픈 말들만 수두룩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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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주방에 서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바로 보였다.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귀가 어두워져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요리를 했다. 어느날은 할머니 나왔어, 라는 짧은 인사를 건네기도 했지만 인사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씻고 거실로 나오면 할머니는 언제 소리도 없이 왔냐, 며 웃었다. 식탁에는 항상 음식들이 놓여있었는데 배추전, 김치전, 오뎅볶음이 주 메뉴였다. 식구들이 집을 비운 사이 할머니의 오후는 이런저런 간단한 음식들을 하며 흘렀다. 할머니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진 않았다.
EBS 요리프로그램을 즐겨보긴 했으나 시청만 할 뿐 무언가를 시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메뉴는 고만고만했지만 나는 질리지 않고 뭐든 잘 먹었다. 어수선한 식탁 위, 키친타올로 덮여져 미적지근한 배추전과 김치전이 어찌나 맛있던지. 저녁때도 아닌데 그것들을 집어먹느라 배를 불린게 한두번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할머니표 밥을 먹어온 나는 '집에서 밥먹기 싫다'는 생각을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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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 있다가 다시 서울로 가려고 집을 나서면 할머니는 꼭 문 바깥까지 배웅을 나왔다. 나오지 말라고 말라고 그래도 기어코 나왔다. 큰길로 나가는 골목 계단에 구부정하게 서서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나는 두어번 뒤를 돌아 할머니는 향해 손을 흔들고 후다닥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런저런 핑계로 집에 찾아가지 못하면 할머니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곤 했는데 잘 지내니, 일이 많이 바쁘지, 사랑한다 등의 두줄이 넘지 않는 짧막한 문자였다. 그 짧은 문장을 치려면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잘 알고있었다. 잘 알면서도 나는 할머니가 보낸 마지막 문자에 답장을 하지 못했다.
'손녀달퇴근햇어용돈고마워잘스개건강조심사랑한다' 답장을 못했단 사실조차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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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장롱에는 두 버전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하나는 조금 어색할 할머니,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어색한 할머니. 아마 노인회관 같은 곳에서 미리 찍어둔 사진인 듯 했다. 영정사진 전문 사진사가 챙겨온 저고리만 대충 걸쳐입고 찍은 그런 사진들. 엄마와 이모들은 이런 사진을 걸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사진 중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골랐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코스모스가 듬뿍 피어있길래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찍은 사진. 분홍색 할머니 옷과 립스틱과 코스모스가 참 잘 어울리는 사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보이는 것 같은 사진.
사진을 찍고 멋쩍게 웃어보이는 할머니가 그려지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