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1년에 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가던 섬인데 스타벅스가 없다고? 구글 지도로 와이프(당시는 여자친구)와 함께 푸꾸옥에 스타벅스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없었다 하나도. 맥도날드, 배스킨라빈스, GS25, 세븐일레븐 등 한국에 살 때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안에 있던 것들 역시 없었다.
'북경에서는 일하던 호텔 주변에 스타벅스가 4개 있었는데(중국이 심하게 많긴 하다)... 푸꾸옥에는 하나도 없다니'
조금 불안했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의시설도 없는 진짜 시골은 아닐까. 도시에서 살던 내가 잘 적응해서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위에 언급한 가게들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랜차이즈 업체 중 버거킹이 유일하게 푸꾸옥 공항에 있지만, 이마저도 출국 심사를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가서야 먹을 수 있으니 큰 의미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푸꾸옥은 제주도 절반 크기의 섬이고, 201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개발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도시가 된 푸꾸옥
'그 유명한 프랜차이즈 가게 하나 없다면서 웬 도시?' 싶겠지만, 푸꾸옥은 2021년 3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섬 도시로 승격했다. 이는 향후 5-10년 내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푸꾸옥 북부와 남부는 베트남 대기업인 빈 그룹(Vin Group)과 선 그룹(Sun Group)의 주도 하에 복합 리조트 단지와 대규모 아파트/빌라 단지가 조성되는 등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 푸꾸옥에는 백화점, 영화관, 쇼핑몰 등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편의시설은 전무하다. 향후 3-5년 안에 조금씩 지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푸꾸옥에서 일하는 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프랜차이즈 커피를 한잔 사 먹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보겠다.
그럼 푸꾸옥에서의 삶은 불편한가?
그렇지만도 않다.푸꾸옥에도 기본적인 상점과 음식점, 커피숍 등이 곳곳에 있는 시내 중심가가 있다. 서울처럼 100m 간격으로 다양한 프랜차이즈 카페와 상점이 즐비한 광경은 아니지만, 주말에 나가 가족과 함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츄온츄온, 손트라힐 등 푸꾸옥 야경 맛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시내에 갈 때마다 들리는 단골 커피숍이다. 오스카커피, 라이크커피 등 푸꾸옥 특유의 '자연주의' 감성을 지닌 커피숍도 이따금씩 들리곤 한다.
푸꾸옥이 한국 사람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한때 푸꾸옥에는 한식당들이 줄줄이 생겼다. 그러나 길게 이어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운영을 중단하는 곳이 많아졌고, 내가 푸꾸옥에 왔을 때는 손에 꼽을 정도로 몇 개 되지 않았다. 그중 다행히(?) 삼겹살 집은 남았다. 삼겹살을 먹을 곳이 있다는 건 작은 위안이 되었다(삼겹살을 그다지 즐겼던 건 아니지만 없으면 서운하다). 그 옆에는 대만 스타일의 빙수집이 있는데, 삼겹살 + 빙수의 조합은 역시 최고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은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고 있다.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는 없지만 중소형 마트는 있어서 필요한 물건이 많을 때는 주로 거기서 구매한다. 온라인 쇼핑몰 같은 경우에는 베트남에도 티키(Tiki)라고, 쿠팡 같은 배달 시간 보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쇼핑몰이 있다. 푸꾸옥에서는 한국처럼 다음 날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빠르고 안전하다.
여유와 위로를 주는 푸꾸옥
푸꾸옥에서 산다는 것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나에게 '변화'라는 큰 도전이었다. 변화를 선택한 나에게 푸꾸옥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와 위로를 주고 있다. 매일 아침 켐 비치(Khem Beach)의 잔잔한 바다를 보며 느끼는 여유가 있고, 매일 저녁 붉게 물든 푸꾸옥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갈 때 받는 위로가 있다. 그날 하루가 어땠든, 감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