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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Dec 18. 2023

[별글] 201_ 잠옷 집착형 인간

    왜 그렇게 잠옷을 많이 구입하냐고, 누가 본다고 그러냐고 핀잔을 들어본 일이 있다면 아마 나와 같은 부류일 것이다. 누가 보냐면 내가 보며(사실 남들도 많이 보여준다), 왜 많이 사냐면 당연히 귀여워서다. 나에게 잠옷의 디자인은 너무나 중요하다. 위 아래가 세트로 된 잠옷이어야 하고, 소재도 탄탄해야 해서 잠옷은 의류 중에서 내가 돈을 아끼지 않는 몇 안되는 종류의 옷이다. 


  밖에서 거울을 잘 보지 않는 사람이어서 내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가장 많이 보는 곳은 집이다. 집에는 전 세입자가 쓰던 전신거울이 있는데, 아마 그것마저 없으면 나는 하루종일 거울을 양치할 때만 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주로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하는 책상에서 의자를 조금만 뒤로 빼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거울이 있고, 그 안엔 귀여운 잠옷을 입은 내가 있다. 대충 아무거나 입고 있는 것보다, 아기자기한 잠옷을 맞춰 입은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난 사실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주제에 적당한 조합으로 옷을 입는 센스가 별로 없어서 애초에 위아래가 어울리게 나온 셋업을 좋아한다. 그런데 바깥옷은 셋업이라고 해도 위아래가 조금 다르거나, 적당히 어울리게만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대놓고 같은 패턴에 같은 스타일을 한 옷은 잠옷뿐이다. 왜 집에서 입으면 귀여운데 밖에 나가면 우스운 차림이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상의와 하의의 완벽한 통일성은 집에서만 누리고 있다. 


  사실 잠옷 입은 모습을 나만 본다는 것도 나에게는 틀린 말이다. 나는 여행을 갈 때, 특히 여름 여행을 갈 때는 꼭꼭 잠옷을 세트로 챙긴다. 겨울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잠옷의 부피만 해도 가방 하나가 꽉 찰 정도라서 자제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식적인 일이 끝나고, 더이상 외출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의 끝에 여행을 함께 간 사람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나 잠옷 입어도 돼?" 아직 거절하는 답을 들은 적은 없다. 내가 너무 답이 정해진 것처럼 물어봐서일 수도 있지만. 친구들은 그냥 편한 옷을 입고 오겠다는 말로 알아듣지만 나는 위아래 잠옷을 입고 짠 나타난다. 놀란 표정으로 잠옷 너무 귀엽다고 외치는 친구의 한 마디에 내 잠옷의 효용은 하늘로 솟는다. 


  지금 제일 좋아하는 여름 잠옷은 주토피아의 주디가 여러 마리 그려진 낙낙한 잠옷 세트이다. 평소에는 스몰을 사지만 당근으로 구매해서 미디움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건 이거대로 더 편해서 좋다. 요즘 입고 있는 겨울 잠옷은 농담곰이 그려져 있고, 상품명이 "집이 제일 좋담곰"이었다. 좋아하는 간절기 잠옷도 있다. 계한희 디자이너가 만들어 스파오와 컬래보를 한 건데, 나는 어느 온도건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고 느끼는 경향성이 있어서 자주 입지는 못하고 일년에 일주일 정도 입는 귀한 잠옷이다.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잠옷이 전부 스파오에서 만든 거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잠옷을 제일 잘 만드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잠옷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잠옷에 돈을 왜 쓰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 좋은 잠옷의 맛을 덜 본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 짝꿍도 잠옷에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잠옷이 망가지면 새 잠옷을 찾는다. 수년간 커플 잠옷으로 길들인 덕이라고 생각한다. 수면잠옷은 잘만 사면 입는 순간 옷이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 든다. 겨울에는 잠옷에 폭 안겨야 드디어 집에 도착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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