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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피는 Apr 08. 2020

내 나이 40세, 새로운 길을 가보기로 했다

46세 난임일기 프롤로그

                   프롤로그                    




< 46세, 난임 일기 >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달아놨지만,

사실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끝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조금 더 안정되면 글을 써야지, 아직은 위험할 수 있으니 나중에 써야지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 과정을 겪을 땐 그렇게 생생했던 매 순간 절차들이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기억의 한 구석에서 먼지 잔뜩 쌓이고 있는 그 날들을 억지로 소환하는 까닭은, 난임클리닉을 다니면서 내게 용기를 주었던 수많은 그녀들에게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함이다. 앞으로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미래의 그녀들에게 내가 받은 마음의 빚을 대신 갚기 위함이기도 하다.





매 순간 우리는 인생에 있어,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된다.




이야기는 꽤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46세이니, 40세이던 그때.


비혼 주의자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살다 보니 독신인 상태로 40줄에 접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주위 친구들 또한 싱글들이라, 다 같이 철없이 어울려 다니면서 놀아서, 외롭진 않았다는 것. 늘 같은 풍경을 보며 걸어왔지만, 인생길의 절반쯤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드니, 뭔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 같은 것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이 나이에 내가 결혼을 하겠어?


아무래도 결혼은 글러먹었으니, 혼자서 남은 인생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나만의 요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내 집 마련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만들었다. 없다고 말해도 좋은 수준의 빈약한 저축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끌어낸 대출금을 모아 제법 아등바등거린 뒤 다행히  내 명의의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하늘 아래, 오롯이 내 몸 하나 누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뒤, 나는 퍽이나 만족스러웠다. 비록, 한 동 밖에 없는 소형 단지에다가 소형 평수라, 앞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집값 오를 일 따위는 없는 집이었지만, 내 명의의 집을 사고 나니, 마치 인생에 있어 작은 승리를 쟁취한 것만 같았다. 내 통장의 가벼움을 알고 있었던 절친들은, 나의 추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40세 3월에 내 집 마련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4월에 등기부등록까지 마쳤으니 내가 생각해도 나 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그  승리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 남은 인생길을 혼자 당당히 걸어갈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내 앞에 새로운 도전과제가 나타났다.

그것은 아흔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로부터의 지령이었다.


선을 보란다.

그것도 무려 3건이나.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대신, 어린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명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선 보는 시늉이나 해서 할머니를 만족시켜드린 후,

대신에 앞으로 두 번은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할 작전을 세우고

그나마 셋 중 가장 나아 보이는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그때가 40세 5월이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봄날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제, 난임 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그 이후 전개 과정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 것도,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선 본 지 3개월 만에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었고,

40세 10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매 순간 우리는 인생에 있어,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된다.


40세 이후, 앞으로 내 인생길의 동반자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했던 내 명의의 집에서 나는 5개월을 채 살지 못했다. 한 달 동안 집을 사기 위해 몸살이 날 정도로 자금 마련하랴, 집 보러 다니랴, 강행군에 또 강행군을 하던 그때의 나는 내 앞날이 이렇게 달라져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결혼하여,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간다는 것.

시아버님, 시부모님, 시아주버님들과 또 인자하시고 정 많은 시고모님들...

그렇게 새롭게 수많은 인간관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2세를 갖기 위해

인공수정, 한방 난임클리닉, 시험관 시술로 이어지는 험난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게 될 것이라는 것,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우는 소리 안 하고 이만하면 제법 잘 걸어온 듯하다.


STAY FOOLISH, STAY HUNGRY.

STEVE JOBS


항상 갈망하며, 항상 어리석게

누구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인생의 매 순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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