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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피는 Apr 08. 2020

시작부터 이토록 험난할 줄이야

46세 난임 일기 2 : 난임 검사와 나팔관 조영술

첫 병원 방문    




지금으로부터 5년 전, 41세의 어느 날,

나는 난임클리닉의 문턱을 넘어섰다.


가족계획을 하는 데 있어서,

운명에 맡긴다, 포기한다, 의학의 힘을 빌린다라는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를 고르는 과정은 오래 걸렸지만,

막상 병원은 별다른 큰 고민 없이 쉽게 결정했다.


난임 시술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구의 모 병원까지 가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한 것이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전국 난임 병원의 임신 성공률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2017년도에는 내가 선택한 병원의 성공률이 전국 1위였으니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병원 선택보다 더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은, 어떤 선생님께 진료를 받을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맘 카페를 통해 경험자들의 의견도 구해보고, 후기도 뒤져보았다.


내가 선택한 병원의 원장님은 <산부의과 명의> 10인으로 신문 지면까지 장식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산부인과 특성상 남자 선생님은 좀 꺼려져서 부원장님께 진료받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일반적으로 여선생님은 본인이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환자를 대할 때 조금 편하게(혹은 거칠게?) 대하는 경향이 있고, 남선생님은 본인이 여성의 입장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말이 있었다. 친구들의 경험담도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남선생님을 경험해보지 못해 이 부분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내 경험에서는, 여선생님이라고 하더라도 경력이 많으신 분이 적은 분보다는 질 초음파 할 때 덜 아프게 진료를 봐주시긴 했다.





우선 예약 문의를 위해 병원에 전화를 하면, 첫 방문의 경우 생리 시작하고 2~3일째 되는 날 방문해 달라고 지시를 내려준다. 산부인과 병원은 환자의 개인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생리 주기를 바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무자비하게도 생리 주기상 방문해야 하는 날짜라면 월차든 뭐든 내고 무조건 해당 일자에 방문해야만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장기간에 걸쳐 난임클리닉을 다니시는 분들은 결국 휴직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일단, 내 경우는 운 좋게 토요일에 맞아떨어져서, 남편과 나 모두 휴가를 내지 않고 방문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면 대기 시간이 없을 줄 알고, 병원 진료 시작 시간인 8시 전에 도착하도록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직 진료를 시작하려면 30여분이나 남아있는데도, 십 수 명의 대기자가 접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세 번 이상 시술을 받고 나서야, 토요일은 오히려 9시 40분에서 10시쯤이 대기시간이 더 짧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우리는 부지런한 바보였음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우리처럼 빨리 오면 대기를 덜 할까 봐 일찍 오는 전략을 세웠는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접수창구에서 접수를 하고, 초진이라 혈압을 잰 뒤, 상담실장님과 간호사 선생님에게 불려 가 여러 가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그 이후  다시 한번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임신 준비기간 및 생리주기 등을 더 확인하셨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위층으로 불려 올라가 정액검사를 위해 정액 채취실로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도 나는 계속해서 내 진료 차례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한참 후 남편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이번엔 혈액 채취 및 소변 검사를 하느라 바쁘게 사라졌다. 나도 피를 뽑고, 진료실에 들어가서 질 초음파를 검사를 하고 이런저런 상담을 했다.


40세라는 나이 때문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힘들다거나 곤란하다는 내색 없이 따뜻하게 말씀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일단 한번 해봅시다"




나팔관 조영술 (자궁난관 조영술)


내가 간 곳은 "의원"이라서 영상의학과가 없기에 난임 검사 중 하나인 나팔관 조영술(정확히는 자궁난관 조영술)은 타 병원에 가서 해야만 했다. 병원에서는 시내의 다른 내과를 권했다. 토요일이라 이곳 진료가 끝난 뒤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다시 날을 잡아 내과를 방문해야만 했다.


나팔관 조영술이란 자궁난관, 즉 난소와 자궁을 이어주는 관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나팔관에 조영제를 넣어 X-ray를 찍는 것이다. 조영제를 넣을 때 통증이 무척이나 심해 악명이 자자한 검사이기도 하다.


나팔관 조영술에 대해 대부분의 경험자들은 "아프다", "진짜 아프다". "지독하게 아프다" "미친 듯이 아프다"며 몸서리를 치는데, 다행히 나는 나팔관 조영술을 받기 이전에 후기를 보지 않아서 겁을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후기를 봤다면, 나 역시 남들처럼 잔뜩 두려움에 떨며 병원을 찾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씩씩하게 병원을 찾아갔다. 검사 전에 진통제 주사를 놓아주기에, 그제야 '이거 아픈 건가?'라는 의문을 가졌을 정도로 나는 무지했었다.  진통제 주사는 엉덩이 주사라, 성인이 되고 난 후 오랜만에 남 앞에서 엉덩이를 깠다.


지금 생각해보면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산부인과에서 3일 치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을 정도니, 마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검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진통제 덕분인지, 아프다는 악명과 달리 나팔관 조영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 불편한 느낌 정도?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나팔관이 잘 뚫려 있는 사람은 고통이 덜한 편인데, 살짝이라도 막혀 있는 경우는 막힌 정도에 따라 통증이 엄청 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었다.


내 경우는 조영제를 몸속에 집어넣을 때 보다

(남들은 아프다고 야단인 거 보면, 나는 진통제가 잘 받는 편인 것 같다.)

밝고 환한 공간에서 딱딱하고 차가운 철판 위에 누워서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이지, 그 철판 검사대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웠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냉기는 내가 느끼는 수치심처럼 나를 콕콕 찔러왔다.


유리 칸막이 너머 다른 방에 있긴 했지만,

촬영 기사가 남자라서 느끼는 심리적인 불편함도 있었으리라.


총 3번 정도 조영제를 투입해, 정자세로 누워서 찍고, 좌측으로 돌아 누워 찍고, 우측으로 누워서 찍는 과정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불편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팔관 조영술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검사를 마치고 나와서 잠깐 대기 후, 선생님으로부터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전혀 이상은 없다고 하셨고,  따로 20,000원가량을 더 지불하고 검사 소견서와 촬영 사본이 담긴 CD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성교 검사



처음 병원을 방문한 날로부터 2주 뒤, 우리 부부의 난임 검사 결과 전체에 대한 소견을 듣고 향후 일정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다행스럽게, 남편의 정자 검사 결과도 지극히 정상 범주, 사실은 평균보다는 상위 범주라고 하셨다. 남편은 아주 의기양양해했다. 남자들이란....


나의 검사 결과도 긍정적이었다. 나이는 40세이지만, 난소 나이는 36세로 생물학적 나이보다 난소 상태가 건강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난임 검사 결과가 긍정적이라 안도의 한 숨을 내쉬려는 찰나,

선생님께서는 조금 난감하다는 식으로 덧붙여 말씀하셨다.


난임 시술을 할 때, 불임의 원인이 명확하다면, 해당 원인을 극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면 되는데,

우리처럼 난임의 원인이 불명할 때가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고 하신다.


물론, 아직까지는 현대 의학의 한계가 명확하기에,

난임의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으니 크게 걱정은 하지 말고 한 가지 검사를 더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이름하여, 성교 검사.   


질 내부가 산성이라던가, 배란 점액 등의 분비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 남편의 정자가 건강하더라도, 질 내에서 살아남지 못해서 임신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를 검사하기 위해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새벽에 부부관계를 가진 뒤, 샤워하지 말고 그대로 1시간 이내에 병원으로 방문해서 질 내부 체액을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검사였다.


2세가 뭐라고,

질 초음파에, 나팔관 조영술에, 성교 검사까지.


개인의 은밀하고 프라이빗한 부분을 온통 들쑤셔 검사하는 과정을 거치니 난임 시술을 시작하기 전부터 조금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성교 검사 결과는 당일날 바로 들을 수 있었는데,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미경 속으로 들여다본 남편의 정자들의 활동성이 제로였다.

선생님께서는 "죽었다"라는 표현을 쓰시지는 않으셨고,

"정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돌려 말씀하셨다.


평균보다 상위의 정자량과 활동력을 가지고 있는 남편의 정자가 내 질 속에서 죽는다면 난임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얘기로 치환 가능할 텐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씀해주실 뿐이었다. 아무래도, 난임의 원인이 부부 어느 한쪽에 있다고 확정 짓는 걸 피하기 위해 애매하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다. 선생님의 그런 태도는 나의 심리 및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라고 자책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난임 검사 결과


검사 결과를 총정리하면,

부부 두 명 모두에게 뚜렷한 난임의 원인은 없으나

나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자연임신보다는

일단, 인공 수정부터 진행해보기로 했다.


정부 지원금 신청을 위한 난임 확인서(?)에는 "원인 불명의 난임"이라고  쓰여 있었다. 바로 병원에서 보건소에 제출할 이런저런 서류를 친절하게 챙겨주었다. 마침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지역 보건소가 병원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만약 보건소 방문을 위해 또 하루 일부러 시간을 내야 했다면, 정말 짜증이 났을 것 같다.


그날 바로 보건소로 가서 정부 지원금 신청을 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수많은 과정을 거쳤는데,

아직도 난임 시술은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험난한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체감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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