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여, 그 풍차로 돌진하지 마오

by ReadJoy

돈키호테, 풍차 앞에 서다


핑크빛 사각형 아이콘을 누른다.

손끝을 타고 수많은 엄마표 영어 이야기들이 오간다.

진심과 상술 사이,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젓는다.

정보의 파도 한복판, 흔들리는 마음들.


거실에 '흘려듣기'라는 환상의 풍차를 하나씩 세우고,

기대와 불안 사이에서 달려가는 엄마들이 보인다.


내가 알던 두 친구를 떠올린다.


화장실 문틈으로 흘러나오던 외국어 테이프 소리,

사전을 뒤적이며 이어나가던 두꺼운 벽돌책.

때론 어리석음이 벽을 뚫어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나의 사랑스러운 두 바보 친구들





독일어 수업을 하는 학교를 다니면서,

대입시험 과목으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던 친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반항심이 빚어낸 대참사였다.

회화책 한 권과 카세트테이프 한 줄에

찬란하고도 암울했던 고3의 시간 전부를 던져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

뜻 모를 프랑스어 한 문장이 벼락처럼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고 했다.

돈오점수—아랫배에 힘주다 찾아온 작은 각성.

대학 문턱은 넘었지만, 청력손실이라는 만용의 훈장을 받은 친구였다.


이런 돈키호테와의 만남은 인생에서 한 번이면 족할 텐데,

대학에 가서 한 술 더 뜨는 인물을 만나고야 말았다.

모두가 취업 준비로 분주하던 시절,

‘아베세데’도 모르면서 후배들에게 빌린 불어 사전과 문법책을 옆에 두고

라캉의 철학책을 프랑스어로 읽던 선배.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 준비를 한다며 명패를 걸어두고

그는 라캉을 읽었다.

그 우직함 덕분에 지금은 모 대학 교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여전히 그를 보면 라만차 마을의 풍경을 떠올린다.


그렇다.

때로는 바보처럼 우직한 방법이 길을 열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경악하면서도, 그 바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을 닮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내 아이의 영어교육에 풍차를 세우고 돌진한다고?


NO! NOP! Absolutely No!


제발, 돈키호테여, 그 풍차로 돌진하지 마오.


환상의 풍차에 돌진하다


세상엔 여전히 돈키호테처럼 ‘흘려듣기’라는 환상의 풍차에 달려드는 엄마가 많다.


“계속 영어를 들려주면, 언젠가는 귀가 뚫린다.”


흘려듣기—

하루에 몇 시간, 영어 오디오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둔다.


풍차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지만, 결국 바람만 가를 뿐이다.

흘려듣기라는 환상이 거실을 가득 채워도 ,
그 바람은 아이의 귀와 마음까지 닿지 않는다.

흘려듣기와 단순노출효과에 대한 오해가 만들어낸 풍차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는

반복된 소리에 익숙해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익숙함’이 곧 ‘능숙함’을 부르는 건 아니다.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해서

악기 연주를 터득하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 역시 그러하다.

단순히 소리를 반복해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언어가 몸에 밴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싸우는 거인은, 기대와 조급함이 빚어낸 환상이다.



흐르는 소리는 그저 흐를 뿐


흐르는 소리는 그저 흐른다.

귀에도, 마음에도 닿지 않고 그저 흐른다.


거인이 아니라고 풍차라고, 아무리 외쳐도

듣지 못하는 돈키호테를 붙들기 위해

크라센의 ‘입력가설’을 빌어와 본다.

‘이해 가능한 입력’—

쉽게 말하면, 내가 이미 아는 것(i)에 가까우면서도

아주 약간의 난이도가만 더해진(i+1)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때, 학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흘려듣기에서 주로 사용되는 영어 음원이나 영상에 빗대어 보면,

영상의 큰 맥락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을 때만,

남은 미지의 조각을 맥락 속에서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어감각은 바로 그러한 순간들을 통해 길러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반복 듣기는

그저 소음이고, 고문일 뿐이다.


라디오를 평생 듣는다고 원어민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귀에 들려주기만 해선 마음에 스며들지 않는다.


거실 가득 흘려두는 소리, 환상의 풍차가 돌고 도는 동안
아이의 진짜 이야기를 자꾸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에게 필요한 건 흘려듣기라는 환상의 풍차가 아니다.


흘려듣기로 채워 넣은 하루,

이제는 비워야 할 때다.


심심할 자유, 지루할 용기


아이들에게는 심심할 자유,

지루할 용기가 필요하다.


프랑스 육아가 말하는 것처럼 지루함 속에서

진짜 창의성과 자율성이 탄생한다.

아이는 빈 공간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멈추는 틈에서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

지루한 오후 뒤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움튼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극만으론 상상도, 갈증도 자랄 수 없다.


풍차에서 돌아서기


언어의 진짜 몰입은 반복이 아닌,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상호작용에서 피어난다.

일상 속 의미 있는 순간에 언어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정말 반복 청취로 귀가 트였다면

라디오 세대의 영어는 이미 완벽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직한 반복'의 한계와 힘을 동시에 안다.

그래서 아이의 영어 노출은 양보다 질에 중점을 둔다.

4개월부터 짧은 영어 노래와 그림책을 의미 있게 들려줬지만, 그뿐.


'흘려듣기'는 하지 않는다.


엄마가 직접 흥얼거리고 읽어주다가 힘들 때,

미디어를 구원투수로 등판시키기는 한다.

아이와 함께 따라 부르거나, 율동을 하거나,

음원의 바탕이 되는 책을 읽는 방식으로.


우리 집 거실에서 영어 소리가 BGM인 적은 없다.


짧은 시간이라도 완전히 집중해서, 몰입해서 듣기.

우리 집에서 영어 음원은 언제나 주인공이다.


완전히 몰입해서 진심으로 즐길 수 없다면,

차라리 지루하고 심심하더라도 비워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나는 믿는다.





영어 때문에 기회의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기를,

영어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 때문이라면, 우리에겐 돈키호테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흘려듣기로 꽉 찬 거실의 소리를 조금 덜어내자.


서로 같은 자리에 서서,

눈빛과 마음을 주고받는 순간들이 쌓인다.

그 빈자리에 언어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조용히 믿어주자.


소음을 지운 거실,

그 고요 속에서 듣는 아이의 이야기는 얼마나 달콤한지.

그 작은 소리가, 오늘 하루를 조용히 완성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하루다.






엄마표 영어를 실천할만큼 열정이 넘치는 엄마들이
사소한 오해들로 시행착오를 겪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작한 연재,
이제야 하고픈 말을 할 차례가 왔네요.

흘려듣기에 대한 오해,
그리고 올바른 활용법,
꼭 짚어보고 싶었어요.

다음 편에는 구체적인 실전 방법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담아 돌아올게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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