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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피는 Apr 08. 2020

양한방의 조화? 길었던 그 여름의 순례길

46세 난임 일기 6 :  나의 한약방 나들이


난임이라는 이 주제로 계속 해서 글 쓰고 있는 것, 참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도 이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계속 하고 있는 부부들은, 지겨움이 문제가 아니라 출구 없는 어둠 속에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런 막막한 기분이겠지.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40세 결혼,

41세 두차례의 인공수정 시도와 실패

42세 1차 한의사협회 주관 한방난임치료: 20kg 체중감량만 성공

43세 2차 한의사협회 주관 한방난임치료 중도포기



이렇게 한꺼번에 정리해 놓고 보니, 좋은 일도 아닌데, 한 해가 바뀔 때 마다 무슨 훈장처럼 경력이 한줄씩 길어졌다. 뭔가가 우스워보인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제 44세가 되었다. 남편은 더이상 병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나는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나이에 기적처럼 아기를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잘 키워낼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항상 인생은 예측불허의 일이 발생하기 마련,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 사시는 11번째 숙부님 전화...


밑도 끝도 없는 숙부님 전화에 남편과 나는 바짝 긴장을 했다.


숙부님께서는, 대구의 용한 한약방을 추천해 주셨다.

한의원이 아니다. 한약방이다!


아이고, 이제는 가족계획이 온 집안 전체의 것으로 확대되는구나.


시아버님 동기분 열두남매는 유달리 우애가 깊은 편이었고, 손주를 보고 싶어하는 시아버지의 염원을 11번째 숙부님께서 앞장서서 해결해보고자 나선 형국.  어떻게 이 사태를 정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숙부님께서 추천하신 대구의 용한 한약방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있었으니, 거절이 쉽지 않았다는 남편의 변명을 믿어주는 수 밖에.  


약사님은 숙부님의 어린시절 절친이었는데, 일반 약대를 졸업하여 약사 자격증을 따서 약국을 운영하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약국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서양의학의 벽을 체감하면서, 중국에서 중의대를 졸업하셨다고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양한방을 통달(?)한 분이라고나 할까. 다만, 중의대 출신은 한국에서 진료행위를 할 수가 없기에, 약국과 한약방을 운영하는 형태로 활동하시는 분이셨다. 은근히 이 쪽 방면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대학 강의도 활발히 다니시고, 대학병원 의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의료계의 기인이자, 인싸 스타일이신 분???


하필이면, 이렇게 독특하고 독자적인 이력을 가지신 분이 숙부님 친구분이시라, 부산에 있는 다른 병원을 가겠다는 등의 핑계도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숙모님께서 이 곳에서 치료를 받은 후 40세에 아이를 출산한 성공 사례까지 있으니,  어떻게 우리가 도망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그냥 미끼라는 걸 알면서도 눈 앞에 흔들리는 낚시 바늘을 꽉 무는 수 밖에 없었다.




44세 여름.


한 시간 삼십여분 차를 몰고서 40도가 넘는 대구 시내에 도착했다. 숙부님께서도 친히 나오셔서 우리를 친구분께 인수인계 하시느라 여름 더위와 싸우셨다.


화려한 이력에 비해 약국은 굉장히 초라한 편이었다. 빛바랜 간판이 걸려 있는, 대구 외곽의 자그마한 약국.  한켠에는 일반 약국에서 볼 수 있는 약들이, 다른 한 편에는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약재들과 직접 손으로 쓴 환자 차트로 만든 진료기록이 책으로 엮여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초라한 외관과는 달리, 환자들은 쉴새 없이 이 약국을 방문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갔지만, 우리 앞에도 다른 환자가 상담을 받고 있어, 딱딱한 나무 벤치에 앉아 대기해야 했다.



그렇게, 이 약사님과 인연을 시작했다.


약사님은 우선 본인의 한계를 먼저 명확하게 인정하면서 얘기를 시작하셨다.


"일단, 두달만 약을 써봅시다.

두달 써서 안되면, 내 능력으로는 도와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


보통 한방 치료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서서히 작용한다는 세간의 이야기와는 달리, 단 두달이라는 타임리미트를 먼저 걸고 시작하는 것이 파격적으로 느겨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여러가지 의학적 백그라운드를 체크하고, 맥을 짚고 하는 부분은 다른 한의원과 동일했다. 하지만, 이 약사님의 파격적인 운영 시스템은 한약 복용 과정에서 또 한번 나타났다.


한번에 20일에서 한달치를 지어주는 타 한의원과 달리, 여기는 딱 5일분 씩만 처방을 해준다. 가격도 일괄적으로 5일분에 6만원.  일주일 단위로 약을 복용하면서, 몸의 미세한 변화를 확인해서 거기에 맞춰 계속해서 약을 조정해나가야 치료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여러가지 치유해야할 부분들이 있다하더라도, 이것저것 다 잡으려고 하면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으므로, 자궁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손발이 차가운 증상을 집중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하셨다. 체중 문제 등은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뼈때리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렇게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고, 조제된 약은 택배로 받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일주일마다 오가기 힘드니, 약을 다 복용하고 난 후 전화 상담을 통해 다음번 약의 처방을 내리겠다는 약사님이 말씀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매주 주말마다 나를 끌고 대구로 올라갔다. 부산에 비해 대구의 여름은 정말이지 미칠 것 같이 더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주말 나들이는 남편에게 있어서, 백일치성 올리는 것과 같아보였다.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기울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기복신앙적인 믿음? 그런 것?




뭐, 나는....대체적으로 열심히 약을 먹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하루이틀 정도씩 밀리기도 했고, 뭐 애매하게 노력(?)하기 위해 노력했다고나 할까.


약속된 두 달의 시간이 흘러갔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주위 모든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던 소식은 없었다.


그렇게 길고 무더운 대구로의 순례행렬과 함께 나의 44세 여름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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