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 난임 일기 5 : 한의사협회 한방 난임치료 2년 체험기
두 차례의 인공수정 실패 후, 난임클리닉에서는 조금 쉬었다 진행하자고 했다. 그 짬을 틈타, 나는 부산한의사협회에서 진행하는 한방 난임치료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신청 과정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 자세히 이야기를 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2년간의 한방 난임치료를 경험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41세에는 난임 전문병원에서 두 차례의 보조생식술을 받았다. 그리고 42세에는 한방 난임치료를 통해 "난임"이라는 문제를 타개해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축적된 통계학에 가까운 것이 한의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하는 현대의학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난임부부들의 문제를 한의학이 마치 기적처럼 짠~, 하고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고 이 사업에 참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들 - 나는 난임문제가 아니더라도, 피부 트러블부터 시작해서 비만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이 아닌 몸 상태였다. 한방치료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일반 병원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법은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장장 10개월에 걸친 나의 한방 난임치료가 시작된다.
나의 1 지망 지역은 지하철역 근처였다. 한의원은 우체국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하철역에서는 도보로 5분 거리였다. D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부부 한의학 박사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병원 자체는 자그마하고,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이 조금은 낡고 소박한 내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 내원한 날,
여 한의사 선생님과 30여분 이상의 긴 상담을 진행했다. 의학적 백그라운드에 관한 내용이 주였지만, 정서적으로도 멘토로서 힘을 주고 다독여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 기억이다. 본인도 늦은 결혼 후, 40세가 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아 난임클리닉을 방문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고. 그런데, 어느 날, '아, 나 한의사였지'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한방적인 측면에서 난임치료를 시작했고, 바로 한 달 만에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를 홍보하고자 지어낸 과장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선생님께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한방 난임치료는
아이를 갖게 해 주는 치료는 아닐지도 몰라요.
다만 내 몸의 밸런스를 되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으면 좋겠어요."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표현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저런 취지의 말씀을 내게 해주셨고, 나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치료 목적에 대한 명확한 설정 - 몸의 밸런스 회복과 삶의 질 고양은 무척이나 내 맘에 들었다.
한의사협회에서는 주 1회 이상은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을 것을 요구했었는데, 나는 주 2~3회까지 방문했다. 내 짐작으로는, 일반 환자들처럼 개별 병원에서 치료비를 청구하되, 그 비용 지불을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사협회로 하는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맘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 4개월 간은, 침술 치료 외에도 한약을 조제해 주셔서, 매일 약 복용을 병행했다. 보통 난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경우, 자궁을 보강하는 처방 위주로 가기 마련인데, 여러 자잘한 문젯거리를 안고 있는 나 덕분에 약 처방할 때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일단, 비만 문제 때문에, 식욕을 억제하는 약재를 넣었고, 자궁 보강하는 약재는 당연히 첨가하셨고, 수족냉증 해결을 위해 혈액순환 개선도 신경 쓰셔야 했고, 피부과에서 도통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한 피부 트러블 문제 때문에 그쪽 약재도 넣으셨던 것 같다. 물론, 여러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는 것은, 각각의 치료 효능이 떨어진다는 얘기와도 동일하며, 특히나 한방에서 이런 식으로 약 처방을 하는 것은 정말 좋지 못하다는 점을 주지시켜주셨다.
파우치에 담긴 한약을 20일 단위로 챙겨 주셨다. 직접 찾아가도 되었고, 택배로 편안하게 집에서 받을 수도 있었다.
한약을 복용하는 4개월이 지나면, 다시 일반 난임클리닉으로 가서 보조생식술 시술을 병행해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42세, 나의 날들은 직장-한의원-집을 오가며 하루하루 채워졌다.
한의원을 방문하면, 우선 침대로 안내받고, 누워서 쑥뜸 치료를 받았다. 뜸 치료가 끝날 무렵, 선생님께서 오셔서 순식간에 복부를 중심으로 침을 여기저기 놔주셨고, 일정 시간 더 누워있다가 침을 뽑고 귀가하는 식이었다.
내가 방문하던 한의원은 현대식 시설도, 호화로운 인테리어도 아니었지만, 굉장히 손님이 많은 병원이었다. 대다수는 연세가 지긋하신 환자들이었고, 그 수많은 환자들을 남 한의사 선생님 혼자서 다 치료하시느라, 잠시도 쉬지 못하고 분주하셨다. 병원 원장실은 늘 텅 비어있었다.
내가 첫날 만났던 여 한의사 선생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대학에서 교수직을 수행하시느라, 10개월 프로젝트가 끝나는 동안 딱 두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뜸 치료를 받으며,
침 치료를 받으며,
반쯤은 졸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외과의만 3D 직종이 아니라, 이 병원 한의사 샘도 블루칼라라는....
하지만,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모든 환자에게 친절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늘 상냥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몸의 변화와 증상에 대해 질문하시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체크해 주셨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진료를 받았지만, 정해진 치료과정이 끝날 무렵까지 여전히 아기 소식은 없었다. 그나마,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20킬로 가까이 체중감량에는 성공했다. 일단, 몸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니, 슬슬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덕담으로 한의원과 작별을 했다.
그리고 2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한의사협회에서는 기 진행 프로젝트 마무리와 추후 진행될 프로젝트 참가자들을 다시 선정했다. 직장-한의원-집이라는 루틴이 힘겹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운 치료과정이었기에 나는 다시 다음 해 프로젝트에도 신청서를 제출했다. 꼬박꼬박 진료를 잘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신청자들이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해에도 나는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희망 지역과 병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직장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얕은 생각.
이전 한의원 선생님들께는 정말 깊이 감사함을 느꼈지만, 한의원 경험이 적었던 나는, 다른 모든 병원도 그 병원처럼 다 좋은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겪어보니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라.
43세, 10개월간 내가 방문할 병원은, 작년의 그곳과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두 병원은 공통점이 없었다.
이 한의원은 최신식 장비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널찍한 실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늘 서서 환자를 치료하느라 바빴던 서면 한의원과 달리, 이 한의원의 주요한 고객들은 키높이 한약을 복용하는 청소년들과 한방 다이어트와 미용을 추구하는 여성들이었다. 문진도 직접 환자와 대면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검사실에서 직원분의 지시에 따라 입을 벌리고, 눈을 갖다 대고 하면, 원장실의 대형 모니터를 통해 전송되는 영상을 보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늘 붐벼서 대기 시간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만 했던 서면 한의원과 달리, 이 곳은 보통의 경우 늘 한산했고, 원두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곳이었다. 처음 일주일 가량은, 이러한 변화가 반가웠다.
젊은 부원장 선생님께서는 첫 상담 때, 경구 체온계를 선물해주시면서, 한의사협회에 제출할 일지에 매일 기초체온을 측정해서 기록해달라고 요청하셨다. 서면 한의원에는 없던 장비 - 전기 자극 치료기로 온몸에 미약한 전류를 흐르게 하면서 치료하는 과정도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럭셔리함과 편암함은 방문 두 번째 주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갑자기 치료 전, 할 말이 있다고 부원장실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선생님 말로는, 본인이 앞으로 10개월간 나를 진료하기로 치료를 시작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그래도 직접 이런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린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직원들을 통해 얻게 된 정보로는, 따로 독립해서 개인 병원을 개업하면서 병원을 그만두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루 이틀 계획한 것이 아닐 것이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폭탄 터트리듯이 그만두는 건 아닐 텐데... 뭔가 의아한 점들이 있었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원장 샘과 부원장 샘이 상호 간에 인간적으로 좋지 못한 마무리를 했음은 분명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 판단은 그릇된 것이었다.
한의원은 다른 한의사를 추가 고용하지 않았고, 나는 원장 샘에게로 이관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원장 샘과 내가 뭔가 맞지 않는다고 표현해야 할까, 이전 치료와는 달리 뭔가가 많이 불편했다. 아니, 불편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치료받는 것이 무서웠다. 솔직하게 내 느낌대로 표현하자면, 이 원장 선생님의 실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 10개월 간, 주 2~3회씩 침을 맞으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불쾌감과 고통이 느껴졌다. 이전에 침 치료를 받을 때는, 침을 꽂았다는 느낌조차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아무런 통증 없이 침을 맞았었는데, 이 한의사 샘은 맞을 때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이 지릿지릿하며 고통스러웠다. 아프다는 느낌이 아니라, 신경을 뭔가 긁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견디다 못한 나는 직접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원장 선생님의 대답은, 제대로 된 혈자리에 놓으면, 약효가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간 내가 침을 맞았던 세 한의사들이 돌팔이란 말인가?!!
엄마, 할머니, 친구, 친구 엄마, 선배...
주위 사람들에게 침을 맞았을 때의 느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 한의사 샘에 대한 얘기도 다 해봤다. 모두의 공통된 대답은, 본인들 역시 침 맞을 때 그런 통증은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난임치료는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뭔가 신경을 잘못 건드리거나 잘못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4개월 간 제공되는 한약이라도 다 먹고, 도망갈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겁이 나서 도저히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나의 43세 한방 난임치료는 그렇게 허무하게 2개월 만에 끝이 났다.
작년 1년간, 이전 한의원 선생님의 노력으로 20킬로 감량했던 체중은 다시 늘어나고 있었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나는 심리적으로도 많이 지쳐 버렸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였다면, 이때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난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야 했지만, 그냥 좀 쉬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하고 아무런 치료(?)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실, 나는 이때 아기를 갖기 위한 더 이상의 노력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남편은 그냥 옆에서 아무 말하지 않고 때를 노리며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나는 44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