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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피는 Apr 08. 2020

다시 시술대 위에 눕기까지

46세 난임 일기 7 : 시험관 시술 1차, 병원 방문 및 몸만들기


41세 때부터 5년간, 시도하다 말다 했던 2세 갖기 프로젝트.


이제, 가장 최근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가 되었다.




이제 내 나이 45세.

주위 선배 언니들은 폐경과 갱년기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최백호 노래처럼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2세 생산을 논하랴마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집에 사는 사람의 생각은 나와 달랐던 것 같다.


작년 7월 이후,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백수가 되어 버린 나를 슬슬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가지 뭔가.  경제력이 없어지면, 발언권도 덩달이 약해지기 마련. 지난 프로젝트가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집에서 쉬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다시 난임클리닉 이야기를 꺼낸다.


4년 전 얘기했던 약속 - 정부지원금이 허락하는 데까지, 즉, 인공수정 3회, 시험관 3회는 해보자던 그 약속을 빌미로 말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부 지원금의 횟수와 금액은 더 늘어 있었다. 일단 좀 쉬어야겠다고 튕겨봤는데,  그럼 두 달만 쉬고 10월에 병원에 가보 잰다.



그렇게 19년 10월, 나는 난임클리닉을 다시 찾았다. 4년 만의 일이었다.


다시 만난 담당 선생님은 냉랭했다.


약간은 윽박지르는 것처럼 까지 오해할 수 있는 어조였다.


"뭐하러 오셨어요?"


나는 좀 당황했고, 기분이 좋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내가 그녀라도 기가 막혔을 것이다. 환자라는 사람이,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황금 같은 시간을 어디서 허송세월로 보내고서, 똘랑 똘랑 나타나 눈 앞에 앉아 있으면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하겠지. 비유하자면, 내일이 성적 입력 마감일인데, 이제야 전화해서 리포트 언제까지 제출하면 되느냐고 물어보는 학생을 쳐다보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4년 전, 검사했을 때, 크게 나쁘지 않았던 내 몸의 상태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검사를 해보니, 난소 나이는 내 생물학적 나이보다 2-3살 더 많게 나왔고, 무시할 수 있을 수준이었던 자궁 근종도 4~5cm 크기로까지 자라 있었다. 그러니 의사 입장에서 까칠하게 나올 수밖에.


인공수정에 대한 정부지원 횟수가 남아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엔 바로 체외수정, 즉, 시험관 시술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 난임 치료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도 의욕도 없었던 나였기에, 사전에 병원에 전화를 해본다거나, 검색도 없이 쫄래쫄래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제법 컸다. 생리 시작하고 2-3일째 되는 날 찾아가야 한다는 불문율(?) 마저 망각해서, 생리가 다 끝난 후 방문을 하고야 말았고, 결국 10월에는 시술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과배란 유도 장기 요법 스케줄>에 따라 진행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시험관 시술이라고 부르는 시술 과정의 정식 명칭은 < 체외 수정 및 배아 이식 시술 >이다. 여기서 잠깐, 전문적인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체외 수정 및 배아 이식 시술 과정>


①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

② 성숙한 난자와 건강한 정자를 채취

③ 채취한 난자와 정자의 수정을 체외에서 유도하고 수정란을 배양

④ 배아를 여성의 자궁내막에 이식

⑤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궁내막을 보강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험관 아기 시술

- 여러 난임 조건들 극복하고 임신할 수 있어요 (차병원 임신정보)


이러한 시험관 시술 한 텀에서, 시술의 꽃은 배아 이식이겠지만, 실제 대부분의 과정은 배란을 유도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란 유도는 환자의 연령이나 난소 기능, 이전 배란 유도 결과 등을 참고로 결정하는데,  생식샘 자극 호르몬 분비 호르몬 작용제 장기 요법생식샘 자극 호르몬 분비 호르몬 길항제 단기 요법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뭐라 뭐라 어려운 말들이 잔뜩 쓰여있는데, 장기 요법이라는 것은 결국 배아 이식을 원하는 달보다 한 달 전부터 과배란 유도를 위한 여러 밑 작업에 들어가 4주 이상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단기요법의 경우는 배란하는 달의 월경 시작 후부터 2주가량을 과배란에 소요하는 것이 다르다.  


선생님께서는 체외수정 안내 팸플릿을 가지고, 뭐라고 막 설명을 해주셨는데, 머릿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냥 긴 텀으로 진행한다, 짧은 텀으로 진행한다만 이해한 정도?



나의 경우, 내 뒤에도 수많은 환자가 대기하고 있던 담당 샘보다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다른 난임 전문의가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 과정 내내, 뭔가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대부분의 정보는 해당 채널에서 얻었다. 어쩌면, 제2의 주치의였다고 나 할까.  




인위적으로 과배란을 유도하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도 뒤따른다. 구역질, 구토, 두통, 복통, 복부 팽만감, 질 분비물의 증가, 피로감과 같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의 부작용부터 시작해서,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나, 자궁내막에 무리가 가는 등의 증상까지 부작용의 범위도 넓다.



여러모로 난소 상태와 자궁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의 입장에서는 장기 요법으로 진행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지 싶었다.





이번 병원 방문은 아무 성과 없이 끝이 났다.

특별히 처방받은 것 없이, 다음번 방문 날짜를 잡고 상담이 끝났다.


하지만 사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 몸 상태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좋지 않다는 것.



특히나, 근종이 상당히 크지만, 위치가 좋지 못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수술을 할 경우, 자궁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기에, 수술 없이 일단은 시술을 시도해본다는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엄마가 자궁절제를 한 뒤, 평생 호르몬제를 맞으며 어떻게 고생했는지를 옆에서 지켜봤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남긴 여파는 상당히 컸다. 아기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겪었던 그 고통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날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자궁과 여성 생식기에 좋다는 온갖 음식들을 검색 후 구매한다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평생을 말로만 하던 운동과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요즘 정말 세상 좋아졌더라.


식단 조절부터 운동 동영상까지, 휴대폰 앱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다. 휴대폰 앱을 이용해 매일 식단과, 수분섭취량, 하루 운동량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나의 운동 루틴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좌훈기에 앉아 엉덩이를 따뜻하게 하면서, 동시에 다리는 건식 족욕기에 넣어 하루를 시작했다.


이 족욕기는 엄마가 이상한 의료기 체험장에 다니면서 천만 원짜리 기구를 사고 싶다는 걸 말린다고, 사 드린 건데, 당연히 별로 탐탁지 않아하셨다. 결국 난임 치료를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 집으로 오고야 말았다.


천만 원짜리 기구를 못 사게 말렸더니, 좌훈기를 90만 원을 주고 지르셨지 뭔가. 제품 구조와 조잡함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인데, 얘도 결국 우리 집으로 왔다. 왜 우리 집에 있느냐? (엄마 말에 따르면) 본인이 인물이 좀 되기에 다른 아줌마 한 분과 제품 광고 모델로 카탈로그 사진 찍어주고 모델료로 좌훈기 하나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저런 사연 많은 물건으로 1시간가량 땀을 뽈뽈 뺀다.


참, 저 짓거리를 할 때는, 자세 교정용 벨트도 같이 착용하고 진행했다.


이 운동 루틴들은 다 까먹고 있었는데, 지인들만 모여 있는 밴드에, 내가 이 모든 과정과 제품들을 소상히 소개해둬서, 그대로 퍼왔다. 진짜 별의 별것을 다 사고, 별의별 짓을 다 했구나, 싶다. 분명 내가 거의 석 달가량을 했던 운동들인데, 기록이 없었다면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싶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찜질기들을 이용해 몸을 데우고 나면, 다른 휴대폰 앱으로 한 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했다. 이렇게 좋은 앱이 광고 삽입도 없고, 무료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진짜 PT 받는 것처럼 코치가 막 설명도 하고, 잔소리도 하고, 구령도 외쳐주고, “조금만 더 힘내세요!!” 하면서 멘탈 관리까지 해준다. 수십 개의 앱을 일일이 다 깔아보고, 유튜브 조회수 높은 동영상을 다 살펴봤지만, 내게는 이 앱이 최고였다.


스트레칭이 끝나면, 이제 드디어 바깥세상으로 나갈 차례이다. 달리기 역시 다른 휴대폰 앱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맞춰서 인터벌 러닝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매주 운동한 횟수마다 스탬프를 찍으면서 성취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도 있다. 이 앱은 참으로 자비로운 앱이라서, 매일 운동하기보다 이틀에 한번, 주 3회가량의 운동을 권했다.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운동과 휴식을 병행할 때만이 가장 건강하게 근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란다.


트레이너의 말이라고?


그렇다. 이 앱은 진짜 퍼스널 트레이너를 고용한 것처럼, 30분 달리는 내내 오디오를 통해서 달리기 좋은 자세, 올바른 걷기 자세, 좋은 운동화, 운동복 고르는 법,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 등의 온갖 정보를 제공해준다. 중간중간 기운을 북돋아 주고, 헬스장에서 늘 듣던 그 말까지 외쳐주는 놀라운 앱이다.


한걸음만 더!





인터벌 러닝이라고 하면 거창한데, 나는 초보 프로그램부터 진행했다.

1분 뛰고 2분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종 목표는 30분 러닝 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초보 프로그램의 목표이다.


처음엔 1분 달리는 것도 허파가 찢어질 듯 아팠는데, 운동을 계속해서 진행하면서 2분 정도는 가뿐히 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며칠이 더 지나니, 2분 30초는 조금 힘들지만 고통스러울 정도까진 아닌 단계가 되었다.


매일매일 노력한 만큼, 다음날 내가 체감하는 몸 상태가 달라지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주 3회 운동을 권유했지만, 나는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했다.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30분 코스가  끝난 후에는, 인터벌 워킹으로 바꾸어서 계속 진행했다. 이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한 곡은 천천히 걷고, 한 곡은 빠르게 걸으며 8~11킬로 정도 추가로 더 걸어주었다.


2019년 가을, 내가 걸었던 산책로의 풍경은 이러했다.



솔숲, 대숲, 메타세쿼이아 길, 자작나무길 등으로 구성된 양주 누리길+양산천 둔치길로 이어진 코스+ 다양한 변주 - 강 위 둔치로 걷기, 아래 산책로로 걷기, 다리 건너 걷기, 수변공원 국화축제장 등을 조합해서 매일 다른 길을 걸으니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온다고 하루 운동 루틴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앉기 전에 이번엔 다시 스트레칭 앱을 켜서 15분 정도 스트레칭을 더하고 몸을 풀어준 다음 운동을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간단한 샤워 후, 다시 족욕기로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것까지....


이 루틴을 제대로 다 진행하려면 하루가 부족하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웃기는 게 애당초 체중감량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 회복이 목적이긴 했는데, 살은 정말 더럽게 안 빠지더라. 그런데 매일 체력이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매일의 루틴 진행이 힘들거나 어렵진 않았다. 게다가, 가을 풍경,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내 인생에 최고로 힘들게 운동하는 나날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45세 가을에 다시 난임 클리닉을 방문했을 때, 이런 변화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웃기는 건, 주치의 샘은 나에게 체중관리나, 식단 조절 같은 이야기를 조금도 꺼내지 않았다는 거다. 사실 얘기를 꺼냈다고 해서,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지 않았다면, 실천해 옮기기나 했겠는가.




시험관 시술 얘기를 시작해 놓고 운동 이야기를 실컷 나열한 데에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시술 내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던, 난임 전문의 유투버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체중의 5% 변화만으로도 드라마틱한 임신율의 향상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이 영상을,

이 미친듯한 루틴을 몇 달 진행해서, 7kg 이상 감량했을 때 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작부터 운동 내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제대로 된 효과를 못 거둬들였을지도 모른다.





다음 편 글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엄청난 BMI 지수와, 생물학적 나이를 훨씬 웃도는 난소 나이, 수술이 필요한 수준인 커다란 자궁근종 등 내가 넘어야 할 수많은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시술 과정 한 단계 단계마다 내 성적표(?)는 상당히 좋은 상태로 나타났다.  오늘내일하는 난소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당한 량의 난자를 채취할 수 있었고, 난자 채취로 인한 부작용도 거의 겪지 않았고, 채취된 난자의 상태도 다 우수했고 등등... 성적이 괜찮은 학생이었다.  나는 그것이 모두, 이 미친듯한 루틴으로 내가 어느 정도 체질개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혹시나 답답한 마음에서 이 글까지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보았다.


난임 치료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운동을 하면, 삶이 바뀌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분들도, 이 봄날, 슬슬 몸을 풀어보심은 어떠실지 슬쩍 운을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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