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묘연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기와집에서 살았다. 예전에는 물레방앗간 터였다는 우리집은 우물이 있을 정도로 마당이 넓었다. 아마 평수로는 130평 정도 됐나 보다. 아, 여기서 "우리집"은 우리 식구가 소유하고 있는 집이 아니라, 우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말한다.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 근처. 주위에는 전부 아파트들이 다 들어서서 개발이 됐지만, 우리가 살던 집은 옛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다들 대를 이어 그 동네에 살아온 토박이들인지라, 아파트 개발 당시, 죽어도 못 팔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전에 우리 동네에 터를 잡고 살던 고양이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널찍하고 사람이 없는 우리 집 마당은 이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공간이었나 보다. 허구한 날 찾아와서 노는 건 기본이고, 새끼를 몇 대에 걸쳐 낳았다. 부모님은 먹다 남은 잔반을 집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에게 챙겨주는 것을 나무라지는 않으셨다.
요즘처럼 동물보호나 반려동물과 같은 개념이 없던 시절,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사는 것이 흔하던 시절인지라 캣맘이나 캣 대디, 동물보호협회의 활동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길 위에서의 삶이란 오죽 팍팍했겠는가. 앞마당 고양이들은 매년 두 차례 이상 새끼를 낳았고, 세대교체도 잦았다. 고양이의 수명이 20년인데, 길고양이의 수명은 3년 정도이니, 이미 세상을 떠서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일도 있었을 거고, 성묘가 되어 어미가 독립시켜서 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지금 나는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다. 아파트지만, 1층을 기피하는 세대들에게 주는 일종의 어드밴티지로 여전히 앞마당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길 위의 삶을 이어가는 방랑자들은 우리 앞마당에 그때 그 시절처럼 방문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3년 전 방문했던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웃들로부터 사생활 보호를 위해 관목으로 둘러싸인 우리 집 앞마당에는 햇빛이 비치는 시간에 맞춰 고양이들이 방문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실외기 보호용으로 박스를 놔뒀더니, 어느 날 못 보던 얼굴이 나타났다. 원래도 사진을 못 찍지만, 고양이가 경계할 까 봐, 안방에서 베란다 밖을 찍은 사진들이라 끔찍한 것은 양해 부탁드린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 아이는 잠깐 쉬었다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여기 터를 잡은 듯해 보였다. 귀 한쪽이 잘린 것을 보니 중성화 수술을 마친 녀석이었다. 아마 중성화 후, 원래 구역에 다시 풀어준 것이 아니라, 아무 데나 풀어주는 바람에 낯선 남의 구역에서 눈치 보고 치이는 청소년 냥이로 짐작되었다. 아직 덜 자라 한눈에도 앳된 티가 나는 녀석이었다. 나고 자란 곳에서 정말 떨어진 낯선 곳에 혈혈단신 버려졌다고 상상해보니, 뭔가 맘이 짠해서 택배 박스에 못쓰는 옷을 깔아주니 들어가서 잘 잔다.
근데, 먹이로 줄 것이 없었다. 예전처럼 사람 먹는 음식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인터넷에서 이 녀석을 주문했다. 고양이 사료 중 가장 저렴한 라인으로, 특히나 캣맘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는 바로 그 제품....
더 귀한 걸 사줄 만큼은 아직 우리 서로가 서로를 모르잖니.
퇴근한 남편은 고양이 사료 포대를 보더니 한숨만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원래 내가 뭔가 사기만 하면 늘 잔소리를 해대던 남편이었는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추측키로는, 남편 생각엔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허한 마음에 길고양이한테라도 정주고 있다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쁘긴 했는데, 더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사료는 왔는데, 사료 주인이 안 보인다.
사료를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흉내를 내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