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꽃피는 Apr 08. 2020

우리집 앞마당엔 고양이가 찾아온다 2

길 위에서 만난 묘연


앞마당에 방문한 낯선 방랑객에 자꾸 마음이 가서 캣사료까지 샀는데, 사료를 먹을 주인공이 얼굴을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날들이 벌써 사흘째.


뭔가가 나타났다.


그런데, 딴 놈이다.


아마도 청소년냥이가 영역다툼에서 지고, 원래 이 구역 주인이 나타났나보다. 정면샷을 찍을 수는 없었는데, 이 흰둥이는 참 못생겼다. 어지간하면, 고양이는 귀염귀염함에 있어서 프로라고 하는데, 하는 짓이 미워서 그런지 어디 이쁜 구석하나 찾기 힘든 보기 드문 고양이이다.



하지만 사료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내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냥이가 애잔하지만, 길 위에서 하루하루가 투쟁인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저 녀석도 마찬가지일텐데 말이다. 못생겼다고, 미운짓한다고, 사람의 잣대를 저 아이에게 들이대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엉뚱한 녀석이 수혜를 입는 날들이 또 무심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드디어!

내 맘을 아리게 했던 청소년냥이가 나타났다.


화질구지 아닙니다. 방충망입니다요!


이 사진은 청소년냥이가 아니다. 중성화 표식도 있고, 같은 고등어태비라 처음에는 그 아이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청소년냥이보다는 좀더 자란, 갓 성묘가 된 것으로 짐작되는 아이였다.


청소년냥이에게 사료를 주려는데, 새롭게 등장한 뉴페이스 고등어태비가 청소년냥이에게 하악질을 해댔다. 청소년냥이가 아직 덩치도 작고 어린지라 당연히 도망칠 수 밖에. 다 같이 먹을 양이 충분하건만, 가차없는 야생의 법칙은 길 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형아냥에게 쫒겨난 청소년냥이


그런데, 또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동네 왕초 비스무리한 것 같은, 못생긴 흰둥이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밥먹는 흰 궁둥이가 보일 것이다.


서열 1위가 흰둥이,

방충망 너머로 나를 경계하며 바라보고 있는 고등어가 다음 순번인 듯 했다.

청소년이는 성묘들 등쌀에 못이겨 달아나 내 시선이 보이는 곳에는 없다.


점점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데, 다같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으련만, 이 역시 인간의 잣대. 어디 쟤들이 사람맘 같겠는가.





재미있는 일은 또 있었다. 담배 피러 나갔다 들어오는 남편의 옷에 지푸라기와 풀물이 들어 있어 심문했더니 들려오는 대답이 또 걸작이다. 고양이들의 역학 관계에 대해 뭐라고 종알거린 것이 기억이 났는지, 밖에 나갔다가 보이길래 관목을 헤집고 들어가서 흰둥이를 위협해서 쫒아냈다는 것이다. 아니, 뭔 짓을 한 것이여, 이 고냥이 습성도 모르는 바보 남편!


이런 인간들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세마리의 고양이들은 곧 자기들만의 규칙을 찾았고, 자신들의 질서대로 도시 생태계 속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성묘들이 없어도 감히 상자 안에 못들어가고 있는 청소년냥이의 애잔한 뒷모습


무더운 한낮의 햇빛을 피해 풀숲에서 늘어지게 주무시는 왕초 흰둥이




비온 뒤 종이 박스가 젖어서 새 박스로 바꿔줬는데, 이건 또 마음에 안드는지 아무도 사용을 안한다. 진짜 까다롭기는 지들이 상전이다.


하루하루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Winter is coming~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잘 마주치지를 못해 생존 여부도 불확실하긴 하다. 다만 사료 줄어드는 속도가 비슷한 걸 보면 셋 다 먹고 있다고 짐작은 가는데 말이다. 겨울용 커다란 사과 박스로 집을 만들고, 못쓰는 겨울 점퍼를 잘라서 방한용으로 깔아 베란다와 지면 사이에 넣어두었다. 상자 입구에 털들이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이 박스는 사용은 하는 것으로 짐작되어 안심이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지났다.


나도 바빠져 베란다에서 고양이 관찰할 시간이 없어졌다. 아이들이 얼굴 보이는 날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사료도 더이상 줄어들지 않는다.


15kg짜리 사료 한 포대를 채 다 먹지도 못하고 짧은 묘연만 남긴 채 녀석들은 사라졌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 그 간 에어컨 실외기 위에 많은 뉴페이스들이 왔다 갔지만, 그 이후로는 마음을 뺏기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또 고등어태비 한 마리가 눈 앞에 자꾸 밟힌다. 그런데, 이 놈은 도통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베란다에 인기척이 들리면, 집과 앞마당이 이어지는 계단 앞에 앉아 냥냥~ 거리며 존재를 과시하는데, 막상 사료를 주면 냄새만 맡고 쿨하게 돌아서서 가버린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또 사료는 줄어들고 있다. 나랑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하자는 플레이니.


이 녀석 역시 중성화는 거친 놈이다. 중성화 과정에서 사람의 손을 타면서, 날 더러 자기를 기르라고 냥냥~ 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보기엔 날 더러 하악질을 해대고.... 밥이 목적이라기엔 내 눈 앞에서는 사료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늘 쿨한 태도를 취한다.


이 녀석 때문에, 3년전 샀던 사료를 다 쓰고, 다시 새로운 사료를 한 포대 더 장만했다. 밀당을 하든말든 상관없으니, 이 사료 포대 다 먹을 때까지라도 건강하게 눈앞에 자주 나타나렴.


이 녀석 때문에, 3년전 고양이들 생각이 나서 이렇게 글로나마 스쳐지나갔던 그 아이들을 기록해본다.


아직 이 녀석은 사진은 찍지 않고 있다. 날 보면 하악질 해대는 괘씸한 녀석, 밥달라고 해놓고 쿨 하게 엉덩이 보이며 사라지는 녀석, 그래놓고는 몰래몰래 사료는 챙겨먹는 녀석, 도대체 정가는 구석이 없다.



고양이 아닙니다. 감입니다요~













작가의 이전글 우리집 앞마당엔 고양이가 찾아온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