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공부합시다.
나는 평범한 지역에서 자란 학생이었다. '평범한'의 의미는 흔히 말하는 대치동과 같이 교육열이 뜨거운 지역이 아닌 그저 그런 지역에서 자라고 공부했다. 엄마도 딱히 학원을 보내지 않아서 초등학교 때 다닌 보습학원이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잠깐 다닌 종합학원, 대학교 방학 때 다닌 토익학원, 회화학원 정도 말고는 학원을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이어서 어찌저찌 약대를 들어갔다. 어쩌면 특출 난 재능이 없어서 공부를 한 것 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됐건, 학창 시절에 꽤나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성실한 모범생이었던지라 공부가 참 지겨웠다. 내가 대학교 졸업만 해봐라 다신 펜을 잡나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보통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자유롭게 놀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게 대학교 졸업 후였다. 돈도 벌기 시작했고, 그동안 스트레스받던 시험이며 뭐며 없어지니 정말 신나게 놀았다. 병원일이 정신적, 특히 육체적으로도 힘이 든지라(보통 대학병원에서는 앉아서 쉴 틈 혹은 내 자리가 없다.) 퇴근하면 동기들과 저녁 먹고 항상 수다를 떨었다.(그리고 수다의 9.9할은 병원 뒷담화였다.) 그러다가 동기에게 음주를 배우기 시작했고(놀랍게도 대학교 때 술을 먹어본 일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쿵짝이 맞는 후배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병원 근처의 맛집, 술집은 모두 꿰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내가 술에 재능이 있어서 정말 재미있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술을 마시고 잠깐 집에 들러 씻고 두세 시간 눈을 붙인 후에 5시 반에 일어나 7시 출근을 하기도 했고, 나이트 근무 후 함께 고생한 전우들과 아침 8시부터 술자리를 시작하여 오후 두 시에 취해 집에 들어가곤 했다.(당시 함께 놀러 다니던 후배와 아직까지도 연락하며 그때가 참 재밌었다고 회상하곤 한다.) 이렇다 보니 공부는 자연히 뒷전이었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라던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시험도 없고, 공부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재밌고 즐거운 일이 많은데 굳이 공부를 해야 하나.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지금도 무언가를 공부 중이다.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고 공부는 평생 하는 게 맞다. 더욱이 직업 특성상 공부를 해야 했다. 약사의 기본 업무 중 하나는 처방감사이다. 이 처방이 맞게 난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약의 상용량, 적응증, 레지멘 등을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처방감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신입 약사 시절 이 부분이 부족해서 실수를 한 적도 있다. 하루 1번 먹는 약이 하루 두 번 처방이 나서 처방 확인을 위해 전화를 드렸는데, 알고 보니 해당 질환에서는 두 번 쓰기도 하는 약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의 용법용량 위주로 공부를 했었더랬다.
어느 정도 용법용량 등이 익숙해지고 처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질환과 연결하여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때는 연차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여서 후배들을 모집하여 스터디를 조직했다. 각자 파트를 구분하여 발표일을 정하고 본인 파트를 공부하여 나머지 약사를 교육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도 업무를 하다 보면 신약 발표 등 공부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약국에서 알바를 할 때에는 일반의약품을 공부해야 했고, 약학적 지식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곳에 이직을 하거나 하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무언가를 꼭 공부해야 했다. 지금은 영어가 많이 필요한데 언어가 부족하여 전화영어와 함께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하고 있다. 정말 지겹다고 생각한 공부인데 또 내 나름의 필요에 의해하는 공부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영어공부는 꽤나 즐겁게 하고 있다. 이전에 하던 영어 공부는 단어와 문법을 익혀 수능을 보기 위한 공부여서 매우 지루했는데 요즘은 대화, 말하기 위주로 하다 보니 더 재밌는 듯하다. 앞으로는 영어공부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