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살면서 본인이 소속된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의 엠티에 가보신 분이 있을까? 더군다나 소규모의 과 엠티가 아닌 전체 엠티라면..?
대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생에게 방학이란 넘쳐나는 시간 때문에 괴로운 것이었다. 그날도 더위에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연락이 온 친구가 자기네 학교 엠티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응? 내가 왜 너희 학교 엠티에 가?"
"동아리별로 엠티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타학교 친구 데려와도 된대."
"아무리 그래도.. 내가 거기 가긴 좀 그렇지 않아?"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괜찮대. oo이도 같이 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A학교 엠티에, B, C학교 학생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 참 할 일이 없었나 보다.
타학교 참가 가능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는 친구네 엠티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막상 가보니 우리가 생각한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우선 소규모 엠티가 아닌 학교 전체의 행사 같은 큰 엠티였다는 것. 우리는 출발지에 모인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야.. 이거 우리 가면 안 될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집에 갈까?"
어쩌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엠티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타 학교 학생은 우리 둘 뿐이었고, 친구네 동아리 부원들만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고 비밀을 지켜주기로 하였다.
전체엠티이다 보니 각종 행사들이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활동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교가도 부르고, 노래에 맞춰 율동도 배우고 우리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어쩌다 보니 총학생회장과 안면도 트게 되어서 통성명까지 하게 되었다. oo과라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우리 셋은 엠티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가 친구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벗어나기로 했다. 일정이 2박 3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간을 다 채우지는 못할 것 같고 1박은 하고 그다음 날 도망치기로 했다. 결국 도망에 성공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도중 친구가 갑자기 "어? 저기 우리 할머니 댁인데." 하는 바람에 친구네 할머니 댁에서 밤에 옥수수를 뜯어먹고 즐겁게 1박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
별거 없는 에피소드이지만 A학교 다니던 친구에게 종종 이야기를 꺼내면,
"야, 너는 그렇게 도망가고 끝이었지만, 나는 학교에서 가끔 총학생회장 마주치는데 마주칠 때마다 너네 안부를 물어보고 어쩜 그 친구들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등에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했다.
지금이야 별일 아닌 거 같지만 어린 마음에 들킬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지금은 친구랑 소소한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