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
약국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곳은 대부분 투약구일 것이다. 투약구는 보통 환자분들이 모든 진료를 마치고, 약을 받으면 귀가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검사약을 타러 오시는 일부 환자분들 제외) 환자분들의 인내심이 많이 바닥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학병원의 특성상 진료부터 검사 등등 대기의 연속이다. 이미 앞서 대기하면서 가진 인내심을 모두 소진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약국에서도 또 기다려야 한다니. 나라도 매우 짜증이 날 것 같다.
1년 차 약사 시절,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1년 차 시절에 두어 번 정도 환자분들과 트러블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연차가 좀 쌓이니 웬만한 일은 유연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그분은 늘 화가 나 계신 분이었다. 듣기로는 진료과에서도 여러 번 충돌이 있으셨다고 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약국에 오셔서 오자마자 약을 빨리 달라고 하셨다. 내 딴에는 이해하실 수 있게 차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한다. 처방을 확인해 보니 가루약이었고, 게다가 포 수가 특이했다. 보통 30, 60, 90일 단위로 처방을 내시는데 102일이었던가 일 수가 특이했던 걸로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가루약은 약을 조제하고, 갈기 전에 한 번 더 검수하고(갈아버리면 약의 형체가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갈아서 약 포장기에 내린 후에 이물 등을 한 번 더 검수하기 때문에 알약조제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한 반자동 가루약 포장기는 최대 45포까지만 조제를 할 수 있어서 그 이상의 포 수는 구분하여 조제해야 한다. 45포 단위로 떨어지면 괜찮았을 텐데, 포 수가 애매하게 떨어지면 별도로 계산하여 조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부분은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5분 간격으로 몇 번이고 오셔서 내 약은 언제나 오냐고 화를 내셨다. 보통 한 환자의 약을 조제할 때 한 명의 약사가 맡아서 조제를 하는데 그 약은 처방이 조금 까다롭고 약 종류가 많아 바쁜 와중에도 세 명의 약사가 조제 중이었다. 나는 재차 설명드렸다. 가루약은 최소 30분 이상 걸리는데 환자 분 약은 조금 복잡해서 1시간 이상 걸릴 것이며, 다른 환자 분들 약도 밀려있으므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환자가 네 번째였나 다섯 번째쯤 따지러 왔을 때 나는 결국 폭발하였다. 나도 모르게 환자분께 화를 내고 있었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안에서 지금 그 약 조제하느라 약사가 몇 명이 붙어있는지 알고 이러시는 건가요! 보호자분 때문에 다른 약 조제도 못하고 있다고요!"
그러자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퍼부었다. 금세 싸움으로 번지고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밖에서 큰 소리가 나자 파트장님이 뛰어나와서 나를 들여보내시고 본인이 직접 응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보호자는 어디든 화풀이를 하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분은 항상 전시모드였을 것이다. 내 아이가 아파서 대학병원을 다니고 있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으며, 아픈 아이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고단함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에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졸업하고 바로 일했으니 고작 24살. 너무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다. 나도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고 보니 그때 그 보호자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내가 좀 더 너그럽게 생각했으면, 그 환자를 이해해보려고 했으면 그렇게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파본 적이 없었고, 환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대학병원까지 오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내 역할은 조제해서 약을 전달하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웠던 과거의 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나라면 좀 더 다르게 대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지금의 나라면 자꾸 보채는 보호자에게 1차적으로는 약국 사정을 설명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힘들어 보이시는데 조금 앉아서 쉬고 계시지 않겠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고, 마음을 달래주려고 했을 것이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 환자의 이름이 머릿속에 선명하다. 미안하고, 또 후회스러운 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