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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pc민코치 Mar 23. 2020

사막에서 길을 잃은, 그날 밤

나를 뒤흔든 메시지

 길을 잃었던 날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몸은 방에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바다와 사막의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 잠을 청하다 결국 포기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수없이 많은 말들과 생각들을 노트에 적었다. 새벽에 동이 터 올 즈음 겨우 4개의 문장으로 정리가 되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한가 

     

 하루 종일 힘들게 사막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잘못된 길을 가는 걸까. 이 길에 끝에서 나는 어디에 도달하게 될까.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삶이었다. 하지만 결국 도착한 곳은 혼란의 한가운데였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사막과 바다의 경계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 이 질문을 내려놓으면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두려웠다. 답을 얻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려도 절대 내려놓지 않기로 했다. 평생이 걸려도 찾지 못하는 불편함이 생겨도 감내하기로 했다. 생각 없는 삶보다는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짙은 안개 때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세 번만에 겨우 바다를 만났다. 정말 심하게 헤맸다. 그런데 삶을 돌아보니 다를 것이 없었다. 방황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욱한 안개는 내 눈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도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첫사랑을 잃었을 때 배웠다. 만나고 있는 중이건 헤어진 다음이건 꾸준히 방황을 하기 마련이었다.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있는 이상 방황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그 위에 한 가지 욕심이 더해졌다. 방황하는 것은 좋지만 제대로 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그 길 위에서 흔들리고, 다시 조정하고 그렇게 나아가고 싶었다. 갑자기 조급해졌다. 일단 박차고 일어나서 걷기 시작해야 그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었다. 덤벼들어서 실행해보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길 위에서 방황하기 위해서는 일단 어느 길이든 걷기 시작해야 했다. 단,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의식적으로 이 길이 맞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쉽지는 않을 것임을 느꼈다. 하지만 마음먹은 이상 명확하게 내가 원하는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할 것을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는가

     

  사막의 끝에서 처음 터져 나온 한마디는 ‘엄마’였다. 더 이상 어머니가 바라는 보통의 삶을 이어가지 못할 것임을 느꼈던 것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같이 흘렀다. 돌이 갓 지난 딸아이도, 아이를 안고 손을 흔들던 아내도, 묵묵히 가방을 들어주시던 아버지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봐주던 동생도 모두 보고 싶었다. 나는 과연 얼마나 이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했던 걸까. 혼자서 자욱한 안갯속을 걸어갈 때,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던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들이었음을 알았다.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는가 

    

 명확하게 내가 바라는 길을 가자.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방황하자. 이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변화하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소중한 사람들도 챙겨야 했다. 일단 그 사람들의 삶은 내 어깨에 짊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좋건 싫건 지고 가야 했다. 그렇다면 변화도 천천히 해야 했다. 서서히 바꾸어 가야 다 같이 이끌고 갈 수 있을 테니까.

 그 와중에 또다시 삶의 평범함 속에 묻히지도 않아야 했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함께 하면서 무디어지면 안 될 일이었다. 이미 겪어봤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꼭꼭 눌러썼다. 하루에 한 걸음씩은 나아가자. 멈추지는 말자. 어차피 원하는 속도로 달려갈 수 없다면 멈추지만 말고 계속 가는 것을 선택하자. 긴 호흡으로 가자.     

 여기까지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짧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인가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대충 마무리한 시각이 오후 4시 즈음이었다. 문득 어제 길을 잃었던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은 자동차 바퀴 자국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하지만 어제 내가 길을 잃었던 곳에는 분명히 별다른 자국이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길을 따라가면서 도로를 살폈다. 동쪽으로 꽤 올라간 지점에서 자동차 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그 길을 거꾸로 따라 가보니 내가 어제 길을 잃었던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어제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갔다. 어제 그 길을 걸어가던 기분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첫 번째로 걸어갔던 방향은 바다가 아니라 곧바로 도로로 나올 수 있는 방향이었다. 만약에 200미터만 더 걸어 나왔다면 한 번에 도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개가 심했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었다. 하지만 분명히 바다에서 멀어지면서 발이 덜 빠지는 것을 경험했는데. 조금만 침착했으면 바로 알아챘을 텐데. 아마도 당황해서 그랬으려니 싶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분명히 똑바로 길을 걸었다. 그런데 길을 잃은 장소에서 발자국이 끝난 곳까지가 비뚤배뚤 제멋대로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어젯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르게 살아왔다고 혼자서 자신했던 내 삶이 과연 정말 바르게 살아왔던 것일까? 두 발로 걷는 것조차 이렇게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다면, 보이지도 않는 마음에 의지해서 걸어야 하는 삶이 얼마나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겼을까?'     

 이번에는 두 번째로 걸어갔던 길을 살폈다. 완전히 틀린 길이었다. 아마도 계속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면 사막 깊이 들어갔을 터였다. 얼마 가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천만다행이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제는 두 길 모두 실패하고 제자리에 돌아오게 만든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하나는 아쉽고, 다른 하나는 다행스러웠다. 성공을 코앞에 두고 돌아섰던 길은 아쉽고, 실패했을 것으로 보이던 길에서 돌아온 것에는 만족해하고 있었다. 어제는 똑같이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현실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삶 속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금 가는 길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를 알고 가는 것도 아닌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이 혹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그저 대기업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으면서 임원을 꿈꾸면 그만인 줄 알았던 삶에 경종이 울렸다. 성공이란 '내'가 하는 것이기에 '내'가 바라는 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헛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서 물끄러미 사막과 나의 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마지막 문장을 썼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보자.     

 지금 돌아보면 이 모든 일이 진즉에 배웠어야 할 것들을 지나쳐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충수업을 받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왜 첫 번째 걸음에서 코앞에 둔 도로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으며, 두 번째 길을 쉽게 포기하도록 하고, 마지막 세 번째 시도에서야 바다에 닿게 된 것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 바다에서 세상의 끝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모두 다 삶이 나를 일깨우기 위해 전해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정말 제대로 자신을 대해 달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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