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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pc민코치 Mar 30. 2020

건강을 잃으면서 알게된 것들

조금 다른 자기계발 이야기 - 5번째

 사막에서 길을 잃었던 이후 하루에 한걸음씩은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사막에 있는 기간에는 그 다짐을 넘어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달려야 했다. 온전하게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은 사막에 있는 기간에만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너무 빨리 뛰려다 넘어졌다. 내 체력조건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현장의 근무 강도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무작정 덤벼들었던 대가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딱 그만큼이었다. 아무 준비되지 않았는데 최대한의 속도로 마라톤을 하겠다고 덤빈 셈이었다고나 할까. 툭하면 발생하는 이석증은 정말 큰 형벌이었다.

 대체 나는 무슨 판단으로 하루에 2-3시간만 자는 삶을 선택했던 것일까.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기에 눈앞에 놓인 질문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아픈 대상이었다. 멋있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마저 들만큼 나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철저히 달랐다. 그 시절에는 전혀 몰랐다. 그 때는 아픈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이 나약하다고만 생각했다. 개인 생활뿐 아니라 회사 일 까지도 못하게 하는 이석증이라는 병이 싫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생을 두고 남들의 인정을 받고자 살아온 삶이었다. 사막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고 해도 그간의 삶의 기준이라는 관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다니. 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이석증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반나절은 누워서 심한 멀미를 앓아야 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심하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심한 사람들은 한 번 쓰러지면 며칠씩 누워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반나절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날 먹은 것들 중에서 위에 남아 있는 것들을 다 게워내고 난 후 누워서 멀미를 참아냈다. 오후에도 누워있고 싶었지만 동료들에게 차마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나은 척 하면서 자리에 가서 일을 했다. 모니터를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그냥 참았다. 억지로 무언가를 먹었다. 그래야 기운 차리고 일을 할 테니까. 


 사는 것이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전의 삶과 너무나도 달랐다. 예전에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을 따름이지 노력하지 않았던 삶은 아니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남들보다 최소한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딱 그 정도만 하고 멈추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적용되지 않았다. 남들의 인정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삶의 목표를 고민한다는 것은 이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능력 없고 체력까지 약해서 골골거리는 사내만 보였다.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었던 걸까.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불편한 삶을 감내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만큼 힘겨울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불규칙적으로 건강 상태는 바닥을 치고 있고 내 앞에 놓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조금도 얻어지지 않고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하루만큼씩 지쳐가고 있었다.     

 방법을 바꿔야 했다. 일단 잠을 더 자야만 했다. 하지만 어차피 근무 시간이 오전 6시부터 밤 9~11시까지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 한 권 내지는 이틀에 한 권으로 분량을 줄였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이동 시간을 활용해야 했다. 유투브를 통해 강연 자료들을 다운 받아서 틈틈이 보고 들었다. 잠을 잘 때도 틀고 자고 이동할 때도 들었다.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매달렸다. 그렇지만 결국 뾰족한 답은 얻지 못하고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그 답이라는 것은 시간과 고민 그리고 배움이 쌓여야만 천천히 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해 어렴풋이 나만의 답을 채워놓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초조해지고, 초조한 만큼 힘들어졌다.


 휴가를 나온 2014년 초 어떤 강연장이었다. 한 남자가 자신이 최근에 다녀온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다. ‘메신저가 되라’라는 책을 읽고 그 저자를 만나보고 싶어서 미국을 다녀왔다는 이야기였다. 신기했다. 저자가 궁금해졌다. 브랜든 버처드라고 했다. 포스트잇에 영어 스펠링을 물어봐서 적은 후 가방속에 찔러 넣고 강연장을 나왔다. 휴가가 끝나고 현장으로 복귀해서 그 이름을 유투브에서 검색했다.    

 

 한 가지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2014년 2월 13일에 업로드 된 영상이었다. 제목은 “Caged, Comfortable, or Charged - Which life is yours?” 이었다. 번역하자면 “철창에 갇힌 삶, 안락한 삶, 충전된 삶 중에서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라는 뜻이었다. 영상을 클릭하자 9분 39초짜리 흑백 영상이 시작되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너무 말이 빨랐다. 하지만 기분이 묘했다. 선한 인상과 맑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목소리 안에 담겨진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한 문장이 가슴을 후려쳤다.


 “They don't understand me!”     

 앞뒤의 맥락상으로 보면 삶이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삶이 철창에 갇힌(Caged) 삶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또 다른 문장이 나를 뒤흔들었다.     

 “How are you doing?” (요즘 어떻게 지내?) // “It's……fine.(뭐 그냥 그렇지 뭐)”


 It's fine 이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하면 안락한(Comfortable) 삶에 빠져 있는 신호라고 했다. 그 두 문장에 내 현실이 들어있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분노도 내 안에 있었고 지금 가진 것들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두려움도 내 안에 있었다. 밤이면 이제껏 답을 주지 않은 세상을 미워하고 낮이면 주변 동료들에게 무덤덤하게 대하고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명쾌하게 이야기해주다니.     

 그 뒤로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너머의 삶이 있다고 했다. 충전된(Charged) 삶이란다. 그리고 그 삶을 이야기할 때 브랜든의 에너지가 나를 흔들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당황스러웠다. 왜 눈물이 나는 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몇 주간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할 때마다 이 영상을 다시 듣고 또 들었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마음이 덜어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처한 현실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더 날카롭게 바라보고 개선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것이 고무된다는 것이었다. 브랜든의 목소리와 표정과 이야기는 나를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 영상을 내안에 온전히 소화시키고 난 후 다른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만난 영상이 "What I believe"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서 브랜든은 자신이 죽을 뻔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서 자기가 겪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을 세 개의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Did I Live?"

 "Did I love?"

 "Did I matter?"     


 간단하게 요약하면 Live, Love, Matter의 세 단어이다. 오늘 하루 내가 충만하게 내 삶을 살았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 돌보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언가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해도 의미 있는 것을 했는지를 묻고 있었다. 저 세 문장을 들은 순간 내가 가진 질문이 같은 것임을 느꼈다. 삶의 마지막인 듯 한 상황을 마주하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되기 마련인 것가 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한가.

 그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는가.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인가.


 그리고 나의 질문은 모두 Live, Love, Matter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긴 문장을 두고 고민하는 하루를 살지 않았다. 물론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밤마다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은 아주 간단하게 세 단어로 요약되었다. Live, Love, Matter.   

  

 브랜든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모든 영상을 보았다. 안 들리면 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다. 나중에는 받아 적기도 하고 별도 노트로 정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내 안에 남기려고 애를 썼다. 그 사람의 에너지가 힘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다는 생각이었다. 참 고마웠다.

 언어의 장벽을 조금씩 이겨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이 남자의 말투나 속도에 적응이 된 것이 느껴졌다. 그 때부터는 유료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강연이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강연 비용이었지만 그런 것은 고민하지 않았다. 삶을 건 질문을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정말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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