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오늘날에도 타국에서의 자국민 안전은 중요한 일이에요. 요즘도 다른 나라에서 자기 나라 사람이 피살당하거나, 다치거나, 돈을 털리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잖아요. 그럴 때면 십중팔구 피해를 본 외국인이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피해자인데도 그 나라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되레 가해자로 둔갑한다거나, 현지 문화나 관습을 잘 몰라서 무심코 한 언행이 현행범으로 체포당하거나, 현지 외교관으로부터 급히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하는 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해외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어느 정도로 신속히 그런 문제를 처리해주느냐가 중요한 외교 역량으로 평가받는 거예요. 따라서 모든 나라의 외교부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자국민에게 현지의 문화와 관습, 주요한 질병이나 자연재해 등에 관하여 안내를 해주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기도 하지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외에서 현지인에게 목숨을 잃거나 신체적·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그렇다면 해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현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거나, 체포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 열셋)
어느덧 사건 사고로 보는 조선통신사 마지막 편이네요. 사료에 기록된 통신사 살인 사건이라니, 대미를 장식하는 소재로 어울린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까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지만, 한편 그러하기에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이 살인이기도 합니다. 구약 창세기에 기록된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인간 최초의 살인 사건’으로 수많은 이야기의 뿌리가 되기도 하니까요. 형제 사이에 일어난 살인이니 더 끔찍하지요. 살인이라는 극단의 사건은 누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였느냐 하는 의문이 뒤따르는 동시에 법과 윤리의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지요.
「형은 동생을 앞서가게 한 다음 동생이 다리를 반쯤 건넜을 때 뒤에서 동생을 아주 세게 내리쳤고 그 바람에 동생은 쓰러져 죽고 말았다. 형은 동생을 다리 밑에 묻은 뒤 멧돼지를 짊어지고 왕에게로 가져가 자신이 그 멧돼지를 잡은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딸을 그의 아내로 내주었다.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형은 “아무래도 제 동생이 멧돼지한테 몹쓸 일을 당한 모양입니다.”라고 둘러댔고 모두가 형의 말을 믿었다.」
『뼈들이 노래한다』, 「21 노래하는 뼈」 중, 숀 탠, 푸른책들, 2018
그림형제의 동화 가운데 『노래하는 뼈』의 일부입니다.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두 형제는 독일을 중심으로 당시 유럽 지역에 떠도는 민담이나 동화를 수집하여 책으로 엮어냈어요. 아마 위 이야기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오랫동안 떠돌던 이야기를 그림형제가 다듬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뼈들이 노래한다』는 ‘숀 탠’이라는 현대 작가가 그림동화에 수록한 이야기들 가운데 75편을 골라 되려 어둡고 불편한 부분을 발췌, 간추렸어요. 그리고 발췌한 이야기에 맞춤한 조각품을 만들어 사진으로 찍어 함께 실은 책이지요. 책 제목과 표지도 기괴한 데다 따라붙은 부제도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동화>’니까, 대략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나요?
「이들은 <그림동화>에 있는 잔인한 인간의 투쟁들을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19세기를 지나며 <그림동화>의 원래 대상 독자층이 어른에서 어린이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출판사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같은 책 11p, <그림 형제는 어떻게 세상에서 성공하게 되었나> 가운데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있을 법한 것과 있을 법하지 않은 것, 그럴듯한 것과 터무니없는 것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이름 없는 왕자와 농부, 의붓자매, 마녀의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계속 흥미를 자아내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대부분 다소 충격적이고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같은 책 167~168p, 「조각들이 우리의 상상 속에서 환히 빛나길 바라며」 가운데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실린 두 편의 글 가운데 일부를 가져왔어요. 맨 처음 그림 형제가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펴낸 그림동화 초판에는 ‘너무 학술적인 데다, 내용도 다소 불쾌하고 음산하고 재미없으며, 각주만 잔뜩 실린 채 삽화도 하나 없다’라는 혹평이 따랐거든요. 이후 불편한 내용은 잘라내고 아이들에게 적합한(?) 삽화들을 넣으며 널리 퍼지게 된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예쁜 것, 아름다운 것, 착한 것을 보고 싶어 하고 또 추구하잖아요. 더군다나 아이들한테 보여준다면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숀 탠이라는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밝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애써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요. 되려 ‘낯설고 잔혹한’ 세계를 응시하려고 하지요. 세상은 어느 한쪽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못나고 추하고 나쁜 것이 같이 있고 때론 그게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지요.
누군가는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어요.
“대체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가르는 기준이 뭐지? 선과 악은 누가 정하는 거야?”
세상에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서 영감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보통 예술가들 가운데 그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요. 숀 탠 같은 작가도 그런 사람인 거죠. 짐작하건대, 작가는 그림동화가 갖고 있던 본래 이야기에서 ‘낯설고 잔혹한’ 것의 쓸모를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작업은 많은 대중이 좋아하고 소비하는 이른바 주류 문화로 받아들여지긴 힘들지만, 문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 분야에서 예민한 작가들에 의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밝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어둠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말로 설명하고 싶어요. 백 마디의 친절한 말보다 핵심을 겨눈 단 한 줄의 말이 때로는 더 강력할 때가 있거든요. ‘잔인한 인간의 투쟁’ 가운데 가장 극단의 행동이 살인일 테고, 어쩌면 이러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겠죠.
자, 그럼 살인이 일어난 1764년 4월 7일, 오사카로 다시 가봅니다. 외교 문제로 일이 커지는 걸 바라지 않았던 일본은 신속하게 사건을 조사하여 범인을 잡아냅니다.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범인 스즈키 덴조의 입을 통해 기록되어 있군요. 아마 이러저러하게 쌓인 갈등이 있던 와중에 사람들 앞에서 최천종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한 모양입니다. 수치심과 억울함,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셈이지요. 결국, 조선 사신들의 참관 아래 처형을 당했네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지만 두 나라 모두 외교 문제까지 번지지 않고 무사히 사행을 끝냈으니 사신들은 사필귀정의 결말로 기록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면 이러한 역사 사건을 문학으로 가져온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역사를 기록한 사료는 사건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잖아요. 그리하려면 사건 속 인물을 깊게 드려다 봐야 하는데 그건 역사가보다는 작가들이 더 잘하겠지요.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받는 대접이나 인기는 오늘날 한류 스타처럼 대단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조선 사신을 둘러싼 살인 사건이니 당연히 일본 전역에서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겠어요. 자국 내 사건과 견주어 매우 특별하게 다루어졌나 봅니다. 그러니 ‘도진고로시’라는 이름으로 문학이나 가부키라는 공연의 소재가 되어 널리 퍼진 거지요. ‘도진고로시’는 우리말로 ‘조선인 피살사건’ 정도로 옮길 수 있겠네요. 저는 조선의 사신을 죽인 스즈키 덴조가 궁금해졌어요. 희대의 이 살인자를 일본에서는 문학 작품에서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시선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인간을 깊이 탐구하는 데는 정치나 역사보다는 문학이 더 쓸모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일본에서 이 사건을 직접 다룬 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이 나카노 고후(中野 光風)라는 작가가 쓴 『도진고로시(唐人殺し)』(1984년) 라는 소설로 보입니다. 이 소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곳이 없어서 저는 박찬기 교수가 2002년에 쓴 「조선통신사와 일본 역사소설 ‘도진고로시’ - 실록사본에서 역사소설로」란 논문에서 관련 부분을 찾아보았어요. 소설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있었던 두 죽음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치쿠첸 번사의 자결은 파손된 배 재목의 조달을 둘러싼 트러블에서 발생했다. 섬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전나무, 회양목의 재목을 한인들이 요구하고 뒤로는 무리하게 뇌물을 바라는 것이 화가나 분을 참지 못하고 발생한 사건이라는 설이 있다.」
『도진고로시』, 나카노 고후, 1984, 大坂町奉行所事件控1, 120P
「“정사, 부사, 종사관의 삼사에 이어서 상상관, 상관도 이곳을 통하여 상륙했다. 이어서 차관, 중관, 하관은 어디로 상륙하는가?” 도훈도의 질문이다. …… 중략 …… 궁한 끝에 “어느 곳으로든 상륙하시오.” “뭐라고” 세 명의 도훈도 중 한 사람은 화난 표정으로 부주의함을 꾸짖었다. 사신 일행의 승선, 하선은 중대한 의례이므로 그 순서와 상륙할 곳은 관위에 따라서 달라야 한다는 항의였다. …… 중략 …… 해안가에 창백한 얼굴로 무릎을 꿇은 젊은 무사는, 수일 후 조용히 할복자살했다.」
위의 책, 121P
사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보탠 역사소설이란 걸 먼저 기억하세요. 앞선 두 사건도 모두 통신사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들이네요. 하나는 날씨가 좋지 않아 파손된 배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다른 하나는 사신들이 하선하는 의례와 관련하여 문책을 받은 하급 무사가 자결한 사건입니다. 의례를 두고 실무자들 사이에서 어떤 다툼이 있었는지 생생한 보기가 되어주네요.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는 걸 자기 목숨과 견주는 일본 무사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기도 하고요. 소설에서 이 두 사건은 덴조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빌드업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음은 그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첫째는 용서할 수 없는 천종의 처사이다. 대마도주 종가의 일원인 나를 평소부터 통역관 나부랭이로 깔보더니 이번 일에는 화를 내며 나의 안면을 채찍으로 때리다니 이 무슨 짓인가. …… 중략 …… 둘째는 번에 대한 항의이다. 조선인의 공적 예단 물품을 모두 매각하면서 그 대금의 지불을 미루는 것은 당치 않은 짓이다. …… 중략 …… 약속을 위반하면서 돈으로 입막음을 하여 애매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고위직의 교활함이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
위의 책, 136~137P
소설에서는 조선에서 가져온 인삼 매매가격을 두고 최천종과 덴조의 다툼을 다루어요. 이런 불만이 쌓여 있던 터에 조선에서 가져온 물품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덴조는 최천종이 휘두르는 대나무 채찍에 얼굴을 맞지요. 덴조의 심리를 묘사한 부분을 보면 치욕스러운 마음과 더불어 번의 잘못을 자신이 뒤집어쓰는 데 대한 억울함이 드러납니다. 여기에 물 끓는 임계점이 넘어가는 하나의 일이 더해집니다.
「“어려서부터 아무리 왜인의 비호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녀들은 틀림없는 조선인이다. 우리 통신사절은 동포 쇄환의 임무도 띄고 있다. 가까이에서 출발하는 부기선에 그녀들을 승선시켜라.”」
위의 책, 137~138P
앞선 논술 조선통신사 두 번째 글에서 피로인 쇄환 문제를 다룬 적이 있지요? 이 소설에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드러나네요. 사절단은 대마도의 저장 창고와 어용 상인들에게 고용되어 있던 조선 여인들을 모두 쇄환하겠다고 통보합니다. 이들 가운데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 온 다마(김옥희)도 포함되어 있지요. 어릴 때 고아가 되어 일본에 끌려와 이미 일본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다마는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덴조는 오랜 시간 연민의 정을 품으며 그녀를 친동생처럼 아껴왔어요. 소설에서 살인은 궁지에 몰린 그의 최후 선택인 셈이지요.
소설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살인자 덴조의 친동생입니다. 홀어머니 아래 살았던 그는 나이 차가 많이 난 형을 아버지처럼 여기면서 산 인물로 나와요. 사건이 있던 해에 주인공의 나이는 12살이었습니다. 가장 노릇을 하던 형이 그런 일로 죽었으니 이후 주인공의 집은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누이와 홀어머니도 죽고, 노 젓는 기술 하나로 먹고살게 된 주인공은 시간이 흘러 살인자로 처형을 당한 형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소설은 다루었어요. 실제로 있었던 역사 사건을 한 편의 소설로 각색한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가요. 사료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것이 바로 소설이 가진 힘이지요. 사필귀정 말고도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지지요. 살인을 저지른 덴조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고요, 저는 이야기의 쓸모에 대해 여러분과 고민해보고 싶은 거예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케빈을 소시오패스 살인마로, 에바를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나쁜 엄마로 기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두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이 이야기 내부에 있으며, 일단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한, 누구도 법적 판단 혹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휘두를 수 없게 된다. 기소에 정확한 방식으로 실패하는 것이 좋은 서사의 목표라면, 이 영화는 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마음산책, 56P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다룬 신형철 선생의 글, 마지막 대목입니다. 영화에서 케빈은 자신의 아버지와 여동생을 활로 쏩니다. 그리곤 자신이 다니는 학교 체육관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활을 쏘지요. 혼자 남은 케빈의 어머니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대체 왜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일까를 알고 싶어 이 영화를 본다면 끝내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할 겁니다. 이 글의 제목 ‘어떤 사랑의 실패에 대하여’에 붙은 부제도 ‘『캐빈에 대하여』가 용감하게 물었으나 현명하게도 답하지 않은 것’이거든요.
뉴스를 통해 이런 사건을 들었다면 어떤가요? 케빈을 소시오패스처럼 우리와 완전히 다른 어떤 별종의 존재로 구분하고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면 그나마 안심할 수 있지요. 하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접했을 때 작동하는 익숙한 가치 판단을 석연치 않게 만들어요. ‘정확’하게 ‘기소에 실패’할수록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과 불편함은 커질 테지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도소를 찾은 엄마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을 질문을 케빈에게 던집니다.
“왜 그랬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
이쯤 되면 그를 비난하고 심판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걸 우리는 깨닫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릴 지도요. 빌어먹을, 인간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도진고로시’가 좋은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중요한 역사 사건들을 ‘좋은 서사’로 재구성해 보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도진고로시’와 같은 역사 사건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일 겁니다. 살인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단순히 흥밋거리나 호기심을 채우는 소재로 다루어선 안 되겠지요.
참고로 『케빈에 대하여』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입니다. 세상에는 사랑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어른들은 여러분에게 그런 것들을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가 봅니다. 대신에 영화보다 앞선 원작 소설(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 번역되어 나와 있단 걸 알려드립니다.
이로써 ‘사건 사고로 보는 조선통신사’ 열세 편의 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첫 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 말을 기억하나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어떤 일을 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이 이런 글을 보태도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어요. 눈 딱 감고 쓰다 보니 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게 뭔지는 비밀이에요. 이렇게 제 안에 비밀 하나가 쌓인 것만으로 저는 충분합니다.
여러분 앞날에 펼쳐질 수많은 사건 사고에 미리 경의를 표합니다.
13. 왜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조선 영조 때인 1763년, 조선은 조엄(1719~1777)을 정사로 하는 통신사절단 472명을 일본에 파견했어.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하루(1760~1786)가 쇼군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야. 조엄은 고구마 종자를 쓰시마로부터 가져와 퍼뜨린 것으로 이름난 조선의 선비이자 관리야. 당시 통신사는 1763년 8월 3일부터 1764년 7월 8일까지 약 11개월에 걸쳐 일본을 오갔지. 일본 쇼군에게 국서를 무사히 전달한 통신사 일행은 1764년 3월 1일 일본의 에도를 떠났어.
에도를 떠난 지 약 한 달쯤 지난 4월 5일에는 오사카에 도착했지. 그런데 오사카에 머물던 4월 7일 새벽이야. 갑자기 도훈도 최천종(?~1764)이 왜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어. 도훈도란 통신사 길에 나선 사신 일행의 움직임을 관장하고, 정사를 비롯한 통신사 삼사를 수행하면서 사행 길을 열고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무관이야. 그런 사람이 일본인의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졌거든. 이 일은 자칫하면 외교 마찰로 이어질 만큼 아주 큰 문제였어.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외교관은 면책특권을 비롯해 각종 치외법권을 누리잖아. 그런 외교관이 죽었으니 어떻게 되겠니? 문제가 심각해질 게 빤하잖아. 그래서 조선과 일본 모두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야 상호 갈등을 피할 수 있었지.
그렇다면 최천종이 죽임을 당한 그 일은 도대체 어떤 일이었을까? 왜 그는 일본인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을까? 당시 통신사 정사로 떠난 조엄이 쓴 『해사일기』를 보면 그 배경을 그나마 엿볼 수 있어.
“날마다 이렇게 먼 길을 떠나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게다가 찾아오는 일본 손님을 맞이하여 시와 글, 그림과 이야기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시달리니 죽을 맛입니다!”
“그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오! 다만, 우리는 임금님의 명을 받들어 오랑캐 나라를 가르치러 오지 않았소? 그러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도록 합시다! 힘내시오!”
날마다 밀려오는 일본인 방문객으로 말미암아 통신사 일행은 삼사는 물론이요, 하급관리까지도 죽을 맛이었지. 생각해봐. 교통도 불편한 그 옛날에 하루 내내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했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러면 푹 쉬어야 하잖아?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일본인의 처지에서는 어쩌면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행사니 어쨌거나 통신사 일행을 만나려 했어. 그러니 통신사 일행은 날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푹 쉬기는커녕 다시 일정이 진행되는 거야. 이미 통신사를 기다려 줄 서 있는 일본인을 차례로 만나야 했고, 그들이 원하는 글을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어. 이야기가 좀 통한다 싶으면 학문을 논하고, 토론까지 했으니 밤새기가 일쑤였지. 그러므로 통신사 삼사는 삼사대로, 그 이하 문관, 무관은 그들대로, 심지어 춤을 추는 무동까지도 전부 동원됐을 정도야. 따라서 통신사 일행의 피곤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지.
도훈도 최천종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4월 6일 밤, 잠자리에 눕자마자 곧 곤히 잠들었어. 그러다 가슴이 답답해져 눈을 떠보니 아 글쎄, 어떤 일본 사람이 배 위에 올라타서는 칼로 목을 노리지 않겠어?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으아악!”
고요한 밤, 적막을 깨는 소리가 요란하니 사람들이 이내 잠에서 깨어났지.
“아닌 밤중에 어인 비명이? 방금 최천종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소?”
“그러게요. 살려달라고 한 듯싶은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빨리 가봅시다. 어,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최천종의 방에서 나오고 있소!”
“네 이놈! 게 서거라! 거기 당장 멈추지 못할까?”
최천종의 비명에 깜짝 놀라 잠든 사람들이 깨어나 달려갔을 땐 범인은 이미 달아나버렸고, 최천종은 온통 피범벅이 된 채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최천종은 얼마 동안 긴급치료를 받지만, 곧 숨을 거두고 말아. 최천종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통신사 일행은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에 빠졌어. 첫째, 오랑캐인 일본 사람의 손에 죽었다는 울분과 비통함, 둘째, 임무를 마치고 그리운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안타까움이 그것이지. 그러니 분위기가 어땠을까? 찬물을 끼얹은 듯 통신사 일행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서둘러 범인을 찾아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그런 짓을 하면 어떤 앙갚음을 받는지 본때를 보여야 했어!
그러면 당시 통신사절단은 최천종 사망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대체 최천종이 누구의 칼에 맞아 죽었단 말씀입니까?”
“음,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 사람의 짓이 분명하다 하오!”
“뭐라고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겠습니까?”
“이 사건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니 일본 쪽에 조사를 철저히 하라고 다그쳐야 할 것이오. 그리고 범인을 하루빨리 잡아 들여 처벌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외다!”
정사 조엄의 지휘 아래 삼사는 즉시 일본에 이 사건을 알렸어. 상상관 최학령(?~?), 이명윤(?~?), 현태익(?~?)이 각자 이름을 적어서 보냈어. 오늘날로 치면 공문을 정식 발송한 거야.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아.
「조선통신사 일행 중 무관인 도훈도 최천종이 살해되었다. 최천종은 일본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할만한 원한을 산 적이 없다. 우리가 현장을 살펴보니 ‘어영’이라고 적힌 일본제 창날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조선통신사로부터 이 서류를 받은 일본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통신사와 관련된 일은 우리 쓰시마가 맡게 돼 있으니 먼저 오사카 관청에다 알리시오!”
하지만 오사카 관청에서는 조선 사절에 관한 모든 일은 쓰시마가 맡아서 하게 돼 있으니 쓰시마에서 일차로 조사하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문의하라고 했어. 그래서 쓰시마 다이묘는 최천종이 죽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급히 조사관을 임명했지. 사쿠라키 헤이지(?~?)와 오이시 덴주로(?~?)가 그들인데, 이 사건을 속히 명쾌하게 처리하도록 했어. 조사관 두 사람은 최천종 살해 사건에 관하여 조사를 시작했고, 결과도 나왔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사쿠라키 헤이지! 그래, 사건을 조사해 보니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죽은 최천종의 몸을 살펴보니 목 말고는 상처가 없으며, 상처도 3cm 정도로 깊지 않습니다. 또, 상처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으로 봐서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아무렴! 설마 우리 일본 사람이 최천종을 죽일 까닭이 없지. 오이시 덴주로! 너도 헤이지와 똑같은 생각이냐?”
“아닙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우나 죽은 최천종 옆에 ‘魚永(어영)’이란 글이 새겨져 있는 일본제 창날 끝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살이 아니라 일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 게 틀림없습니다!”
현장을 조사한 조사관 두 명의 의견이 다르니 일본인 사이에는 이 사건을 두고 자살이다, 타살이다는 의견이 맞섰어. 그 바람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듯했지.
한편, 쓰시마에서는 조사관의 조사와 더불어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여 통역 일을 맡은 통역관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라고 했거든. 그런데 ‘스즈키 덴조(?~1764)’란 통역관만 나타나지 않은 거야. 그래서 어쩌면 통역관인 스즈키 덴조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게 돼. 실제로 스즈키 덴조는 사건이 일어난 뒤로 통 보이지 않았어.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스즈키 덴조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돼. 며칠 뒤 사라진 스즈키 덴조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어. 그 내용은 이래.
「지난 6일 밤 니시혼간지 부엌에서 조선 관리 한 사람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때 일본을 욕하는 말이 있어 제가 ‘조선 사람은 숙소에 있는 장식품을 아무 말 없이 가져가는데 이게 무슨 짓이요?’ 하자 그 관리가 화를 내며 저를 몽둥이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그 조선 사람의 방에 몰래 들어가 찔러 죽인 겁니다.」
이제 스즈키 덴조가 최천종을 죽인 범인이라는 게 밝혀졌어. 하지만 스즈키 덴조는 이미 오사카를 빠져나간 뒤였지. 그래 일본 쪽에서는 범인이 스즈키 덴조라는 사실을 통신사에게 알리고, 범인을 찾기 위해 힘쓰겠다 했어. 그 결과 4월 18일 셋츠 고하마무라에서 오사카 관청의 관리인 야다 고로자에몬(?~?)의 부하가 스즈키 덴조를 붙잡게 돼.
이어, 다음날인 19일에는 에도에서 검사 마가리부치 가츠지로(?~?)가 직접 와서 조사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어. 그러니 이 대목을 보면 도쿠가와 바쿠후가 이 사건의 신속한 처리에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 수 있지. 어지간하면 쓰시마에 맡길 텐데 오죽하면 에도 바쿠후가 직접 조사를 책임지고 지휘할 관리까지 파견했을까? 그렇다면 마가리부치 가츠지로는 일본 바쿠후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아왔을까?
「조선 사람이 죽은 사건을 조사할 때 쓰시마 번과 기시와다 번의 다이묘에게도 따로 그 상황을 듣고 진술서를 받아둘 것, 조사할 때는 장로를 오게 해 함께 그 상황을 알아볼 것, 조선에서 쓰시마 번의 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들었으므로 쓰시마 번 다이묘를 철저히 조사하여 한 점 의혹도 없도록 할 것!」
참고로 기시와다 번은 최천종이 죽을 때 통신사 접대를 맡은 번을 말해. 그렇다면 일본 바쿠후는 왜 그토록 최천종 살해 사건의 조기 해결에 목을 매달았을까?
“이런 사건은 자칫 잘못하다간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소! 그렇게 되면 문제가 점점 꼬이게 돼 조선과 일본 사이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지 않겠소? 그리고 이 사건에 얽힌 사람이 죄다 쓰시마 사람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더는 머뭇거릴 필요도 없소!”
스즈키 덴조로부터 모든 자백을 받은 일본에서는 그 내용을 통신사에게 밝혔어. 어떤 내용인지 사건이 일어난 그 날로 되돌아가 살펴볼게.
때는 4월 6일 낮이야. 나가하마 하역장에서 조선의 한 관리가 거울을 도둑맞는 일이 생겼어. 바로 그 때문에 최천종과 스즈키 덴조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진 거지. 스즈키 덴조가 ‘너희 조선 사람도 우리 일본의 방과 집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느냐?’고 따지면서 말다툼은 차츰 심해져.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최천종이 스즈키 덴조에게 몽둥이찜질을 해댄 거야. 결국, 그때 당한 일을 두고 부끄러움과 분함을 삭히지 못한 스즈키 덴조가 밤에 몰래 최천종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 최천종을 죽인 거지.
그럼 그 뒤 스즈키 덴조는 어떻게 되었을까? 스즈키 덴조는 붙잡힌 뒤 니시혼간지 경내에서 고문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최천종을 죽였다고 말해. 그래 몇 가지 심문을 받고는 곧장 옥에 갇히게 되지. 일본 쪽은 일본법에 따라 4월 29일 스즈키 덴조를 즈키마사지마란 곳에서 처형한다고 했어. 그런데 스즈키 덴조가 죽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조선 쪽 요구로 스즈키 덴조의 처형 날짜를 5월 2일로 미루게 돼. 결국, 스즈키 덴조는 조선 사절 오십사 명이 보는 앞에서 목이 잘렸어.
“스즈키 덴조의 목을 쳤으니 이제야 최천종의 억울함이 풀렸소!”
“그렇습니다! 이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러야 합니다!”
일본도 범인을 재빨리 잡아 죽임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외교 마찰이 생기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지. 그러나 이 사건은 백성의 눈길이 확 쏠릴 만큼 일본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어. 그래서일까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일본 사회 곳곳에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대. 그 좋은 보기가 바로 「도진고로시」야. 도진고로시는 최천종이 죽은 사건을 문학이나 예술로 꾸민 것을 말해. 그래서 가부키나 문학 작품에 종종 나타나지. 아, 가부키는 일본 에도 시대에 교토, 오사카, 에도 같은 도시에서 탄생한 일본의 전통 연극을 말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