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금을 강에다 던져 버려라!

by 구경래

생각하기)


쇼군이 준 금전을 물속에 내던진 이 사건은 조선통신사 사행의 기개를 드높인 본보기가 되었어요. 그 뒤로 일본을 오가는 통신사는 늘 이곳에서 앞선 통신사의 높은 기상을 우러러 받들었지요. 당장 자기 손아귀에 금덩이를 쥐었더라도 그 금덩이를 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툴툴 털어 버리는 조선 사신의 뛰어난 기상과 높은 정신!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는 돈을 으뜸으로 치는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선조의 가르침이에요! 그러나 그 또한 말처럼 쉽지 않아요. 돈이 그 모든 것에 앞서는 기준이 돼 버렸으니 말에요. 여러분은 조선통신사가 금을 금절하란 하천에 내던진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 여러분이라면 그 금을 던질까요, 가질까요, 숨길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생각 열둘)


쇼군에게 받은 금을 금절하에 던져 버린 통신사의 일화를 읽으니 바로 떠 오르는 노랫말이 있지 않나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이 노래 모르는 친구들이 있을까 싶네요. 이 노래 때문에 최영 장군이 남긴 말로 알려졌지만, 그의 아버지 최원직이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라고 하지요. 최원직의 마지막 벼슬은 공무원들을 감시, 감찰하는 ‘사헌규정’(고려 때 사헌부에 속한 종육품 벼슬)이었어요. 아들에게 왜 이런 유언을 남겼는지 충분히 짐작 가고도 남지요?


「일찍이 최영이 16세 때에 부친이 임종하면서 훈계하기를, ‘너는 마땅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였다. 최영이 마음에 새겨서 재산을 늘리지 않았고 거처하는 집이 매우 누추해도 기쁜 마음으로 살았다. (…… 중략 ……) 몸은 비록 장수와 재상을 겸하고 오랫동안 병권(兵權)을 맡았으나 뇌물과 청탁을 받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그의 청렴함에 탄복하였다. 중요한 일에만 힘을 쓰고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았으며, 종신토록 군사를 거느렸으나 휘하 사졸들 가운데 ‘그의’ 얼굴을 아는 자가 수십 명에 불과하였다.」

『고려사 권 113』 「열전 권 제26 제신」, 최영


최영 장군은 공민왕 때부터 우왕에 이르기까지 왜구 토벌, 홍건적 격퇴와 철령 이북의 땅 회복, 국내외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난을 정벌하며 나라 안팎으로 최고의 무신이자 영웅으로 신망이 높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원나라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다시 한족의 국가를 세운 명과 결전을 준비했어요. 동북아 패권을 잡은 명은 고려에게 사대 관계는 물론 수많은 물자를 요구했지요. 나중에는 고려가 공민왕 때 어렵게 되찾은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까지 하거든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해온 최영 장군은 땅을 내주느니 차라리 요동을 정벌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십만 대군에 가까운 병력을 모읍니다. 당시 신진사대부와 연결되어 있던 이성계는 요동 정벌이 무모한 계획이라 생각하지요.


「지금에 출사(出師)하는 일은 네 가지의 옳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하는 것이 한 가지 옳지 못함이요,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이 두 가지 옳지 못함이요,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니 세 가지 옳지 못함이요,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弓弩]은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들은 역병(疫病)을 앓을 것이니 네 가지 옳지 못함입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83번째 기사 중


요동 정벌에 반대하는 이성계의 ‘사불가론’입니다. 나라의 병력 대부분을 이끌고 평양을 떠났던 이성계는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과 최영 장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엽니다. 바로 조선이지요. 사불가론 가운데 첫 번째로 내세운 이유를 보면 동북아시아에 새롭게 등장하게 될 조선과 대륙을 완전히 장악한 명나라, 두 나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맺어질지 예견할 수 있지요. 이제 조선은 중화를 내세운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면서 정치로는 사대 외교, 경제로는 조공무역이라는 나름의 처세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스스로 소중화로 자리매김하고 북방의 다른 민족은 물론 일본 또한 자신보다 열등한 나라로 규정하지요. 중화사상 아래 성리학을 배우고 익힌 조선통신사 관료들이 예를 앞세워 일본이 주는 예물을 마다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고려 말기 요동 정벌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어요. 끊임없이 외세 침략을 받아온 우리의 마음 한 칸에는 만주벌판을 내달렸던 광개토대왕의 기개를 흠모하잖아요. 신라가 아닌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나가려 했던 고려는 한때 제국이라 불린 원나라(몽골)의 침략에도 끝까지 맞서 싸운 나라고요. 물론, 그때가 무신반정으로 오늘날로 치면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때이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고려는 중국을 상대하는 분위기가 조선 때랑은 꽤 달랐어요. 고려에 과연 그만한 힘이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명의 무리한 요구에 맞서 요동을 먼저 친다는 최영 장군의 계획은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정서와 별개로 전쟁은 정치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극단의 세계지요. 이성계가 회군의 이유로 든 것처럼 농사철인 여름에 대규모 군사를 일으키는 것부터가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명분이기도 하고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최영의 계획대로 큰 나라인 명과 요동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면 이후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확실한 건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란한 처지가 되었겠지요. 안 그래도 고려말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사회 혼란 속에서 당시 지배층이던 권문세족의 부정부패까지 널리 퍼진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최영은 이성계에게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처형당합니다.


「엄마랑 아빠는 어디 계셔?

멀리, 아주 멀리!

그럼 넌 누가 돌봐 주고 있는 거야?

나야 내가 돌보지.

사실이었어요. 삐삐는 뒤죽박죽 별장에 정말 혼자 살았어요. 그리고 혼자 사는 걸 아주 좋아했죠.」

『세상에서 가장 힘센 소녀 삐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시공주니어, 2020, 6~7P


린드그렌이 쓴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출판을 거절당하기도 하고 인기가 모일 때조차 학부모나 비평가들한테 원성을 듣기도 했다네요. 삐삐는 ‘부모 없이 스스로 자기를 돌보고, 학교에 가지 않으며, 죄책감 없이 거짓말도 술술 잘하는 되바라진 소녀’거든요. 어른들이 보기에 불편한 아이였던 거지요. 저는 집에서 아이를 혼내고 나면 종종 이 삐삐가 생각납니다. 만일 내가 삐삐를 만난다면 아주 혼이 날 것만 같거든요. 힘이 무척 센 삐삐는 자신을 어린이집으로 보내려는 경찰관을 골려주고, 말을 못살게 구는 어른을 혼내주지요. 저 또한 힘과 권위를 가진 어른의 시선으로 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바로 잡겠다고 혼을 낼 때가 많으니까요. 삐삐가 당당하게, 아니 아무렇지 않게 ‘나야 내가 돌보지.’ 하고 말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답니다.


명나라를 형님으로 모시고 일본은 오랑캐로 깔본 조선의 유학자들을 떠올리면 한심해 보이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던 앞뒤 사정이 이해되면서 짠한 마음이 듭니다. 또한, 자신이 배우고 익힌 성리학의 가르침대로 바람직한 인간이 되려고 애쓴 선비들의 글을 접하면 그들의 꼿꼿한 태도와 삶의 자세가 경이롭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조선의 선비에게 스웨덴에서 건너온 말괄량이 소녀, 삐삐를 꼭 소개해주고 싶어요. 정말 재미난 만남이 될 것 같거든요. 자신의 힘을 알고, 세상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자기 힘을 믿고 약자에게 영향을(선한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끼치려는 어른을 골리거나 혼내주는 이 아이와 조선의 선비가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이들이 가게 앞에 서서 진열창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것도 당연했다. 다들 돈이 한 푼도 없었으니까.

…… 중략 ……

삐삐는 금화 한 닢을 흔들며 말했다.

“여기, 사탕 18킬로그램만 주세요.”

사탕 가게 종업원은 입을 쩍 벌리고 삐삐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사탕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꼬마 백만장자 삐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시공주니어, 개정판 2000, 30~31P


먼저 언급한 『세상에서 가장 힘센 소녀 삐삐』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과 위의 책 『꼬마 백만장자 삐삐』의 두 책을 바탕으로 12편의 에피소드만 따로 요약, 편집한 책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삐삐의 진면목을 알려면 단행본으로 된 두 책을 읽어봐야 할거에요. 어쨌든, 삐삐는 힘만 센 게 아니라 사실 엄청난 부자거든요. ‘식인종의 왕’이 된 삐삐의 아빠가 바다에 빠지기 전에 남겨준 금화가 옷가방 가득 들어있지요. 어느 화창한 봄날, 삐삐는 옆집에 사는 친구 토미와 아니카와 함께 읍내로 나가요. 그리고 돈이 없어 가게 밖에서 구경만 하는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 장난감을 잔뜩 사서 나눠주지요. 절대 뻐기거나, 그렇다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지도 않아요. 딱히 계획한 것도 아니고요. 하나의 이벤트, 재미있는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이날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겐 말 그대로 선물과도 같은 날이 되지요.


조선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조선통신사는 일본에서 주는 예물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중에는 금을 빠뜨려버리기까지 하지요. 이후 조선의 사신들은 물론, 일본인들도 이러한 기개에 탄복했다고 하는데요, 만일, 통신사가 삐삐를 알았다면 조금 달리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일본에서 받은 금을 돌아오는 사행길에 쌀 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 노리개로 바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죄다 나눠주는 거지요. 저는 삐삐의 행동에 훨씬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거든요.


「선생님은 정성을 다해 가르쳐 주었고, 삐삐는 귀 기울여 들었다. 먹으라고 권하기 전에 먹어서는 안 된다. 케이크를 한 번에 한 개 이상 먹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 몸을 벅벅 긁으면 안 된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 (…… 중략 ……) 삐삐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란히 줄지어 섰다. 삐삐는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잔디밭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삐삐 왜 그러니?”

“선생님, 멋진 아가씨는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안 되나요?”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안 된다면, 해적이 되는 게 낫겠어요.”」

위의 책, 84~85P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삐삐도 소풍은 좋아하나 보지요. 학교 소풍에 따라간 삐삐에게 선생님은 예의를 가르치고 싶어요. 멋진 아가씨가 되는 법을 알려주거든요. 삐삐는 자기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역시, 해적이 되는 편이 낫다고요. 조선통신사는 높은 수준의 글과 문화를 전하고 체면을 세우며 당당한 유학자가 되고 싶었을 거예요. 왕의 분부, 사신으로서의 책무를 멋지게 해내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요, 조선통신사가 시문에 능하고 학문을 깊이 깨친 사람인지는 몰라도 삐삐처럼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단 말이죠. 삐삐는 멋진 아가씨가 되고 싶지 않냐는 선생님에게 되물어요. 해적도 되고 멋진 아가씨도 될 순 없냐고요. 선생님은 그럴 수 없다고 하거든요. 맞는 말이에요. 다 갖는 건 욕심일 거예요.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죠.


여러분은 해적이 될래요, 아니면 멋진 아가씨가 될래요?



12. 금을 강에다 던져 버려라!


일본으로 떠난 통신사의 최종 임무는 조선 국왕의 국서전달, 일본 쇼군의 회답서 수령이야. 그러니 한양에서 에도에 이르는 그 먼 길을 가야 해. 그래서일까 국서를 전달할 때면 일본에서는 통신사의 노고를 위로하려고 잔치를 베푼다 했지? 그때 먼 길에 고생했다며 잔치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신을 위한 선물 즉, 예물도 전달해. 놀랍게도 우리 사신은 일본의 쇼군이나 바쿠후에서 주는 값비싼 예물을 종종 포기했다는 거지. 왜냐하면, 오랑캐가 준 선물이니까 받을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쇼군이나 바쿠후가 보는 앞에서 예물을 거절하면 조선과 일본 사이에 외교 문제가 발생할 테니 고민에 빠지게 돼. 어떻게 하면 그 예물을 표가 나지 않게 버릴 수 있을까?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고민하면서 머리를 맞대던 통신사 사신들은 마침내 그 해결책을 찾았어!


“우리가 일본 쇼군이 주는 예물을 굳이 가져가야 하겠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그렇다고 받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테니, 거 참 답답한 노릇이구려.”

“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우리 통신사 삼사가 받은 예물은 정중히 물리치고, 아랫사람이 받은 것은 그냥 가져가도록 합시다!”


이렇게 통신사 삼사가 예물 처리에 관한 논의를 할 때 바쿠후 관리가 그 말을 듣고 한마디 해.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우리 쇼군 전하께서 내려준 예물을 받지 않겠다니요? 그건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오. 예를 존중하는 조선에서 온 사신이 그렇게 말하다니 섭섭하기 짝이 없소!”


이 이야기는 실제로 1617년 사행 때 삼사와 바쿠후 사신이 나눈 말이야. 그때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러니 일본에 대한 조선 사신의 적개심, 오랑캐에게 삼천리강산이 불바다가 되고, 조선 백성이 목숨을 앗기고, 고초를 겪었다는 생각에 당연히 원수가 준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때였지. 그런데 그 당시 조선 사신의 생각은 진실로 어떠했을까? 조선 사신은 왜 일본 바쿠후가 준 엄청난 예물을 받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엿보려면 통신사 사신이 일본을 오갈 때 취한 태도와 자세를 알면 도움이 될 거야.


“비록 우리 조선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당하기는 했지만, 유학과 문화만큼은 섬나라 오랑캐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칼깨나 쓴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오랑캐보다야 백 번 천 번 낫지요!”

“일본으로 가면 늘 상국, 곧 높은 나라에서 가는 사신으로서 말과 몸가짐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일본 사람이 준 쌀이며 반찬은 꼭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진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일본 사람의 초대에는 응하지 않는 게 좋을 성싶습니다. 혹시, 초대에 응할 때는 반드시 학문을 높이 받든다는 뜻으로 문방구를 가져가 감사의 뜻으로 전하도록 합시다!”

“아울러 일본 사람이 하는 예절을 눈여겨보면서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응당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랑캐 나라를 상대로 지난 일을 시시콜콜 따지는 것보다는 예와 법으로 오랑캐 나라를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신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임을 명심 또 명심합시다!”


이제 왜 통신사 삼사가 일본 쇼군이나 바쿠후에서 주는 예물을 받지 않으려는지 알 수 있겠지? 그래도 참 대단해. 주는 선물을 마다하니 말이야. 그것도 싸구려 선물도 아니고 비싸고 귀한 선물이 대부분일 텐데, 그치? 어쨌거나 일본을 오랑캐 나라로 여기는 조선 사신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일본의 쇼군이 주는 예물조차 받으려 하지 않은 거야. 그런데 조선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외교사절단이 보여준 이런 모습은 당시 관행과는 맞지 않아. 그 당시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온 사신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거든. 비슷한 시기인 1609년, 광해군을 조선의 임금으로 승인하는 책봉 의식을 하러 온 명나라 사신을 살펴볼게.


“우리 명나라는 조선보다 높은 나라 곧, 상국이오! 우리나라는 각 오랑캐를 다스리고, 동서양의 여러 나라와 무역하기 위해 은이 필요하오. 그러니 조선은 북쪽 국경인 의주에서 수도 한양으로 가는 동안 사신인 나를 위해 써야 할 돈을 죄다 은으로 주면 좋겠소!”


당시 명나라 사신은 우리가 대접하면서 자신에게 줘야 할 예물이며 필요한 모든 경비를 은으로 달라고 했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걸 이해하려면 그 당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좀 알아야 해.


16세기부터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모든 은이 죄다 중국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어. 이는 중국이 유럽, 일본 상인과 무역할 때 은으로 거래한 탓이야. 상업이 발달하니 은에 대한 수요도 날로 더 증가했거든. 그때만 해도 해외 상인과 어떤 상품을 거래할 때는 화폐보다는 은을 더 선호했단 말이야. 그러니 차츰 중국 내부에서조차 은을 중시하는 풍조가 퍼졌어. 그래서 농촌에서 세금을 낼 때도 은으로 내라고 할 정도였지. 그러니까 명나라 사신의 처지에서는 은이 최고였던 거야. 따라서 조선으로 온 명나라 사신은 대놓고 자기 예물을 은으로 달라고 요구한 거지. 참 다르지? 일본으로 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예물을 받지 않으려 하는 데 반해, 조선으로 온 명나라 사신은 그저 은에만 관심이 팔려 한밑천 챙기기에 급급했으니 말이야.


이듬해인 1610년, 왕세자 책봉 의식을 주관하러 온 명나라 사신은 아예 호조에서 한 해 동안 애써 모아둔 은을 몽땅 가져가 버렸어. 싹쓸이한 거지. 이건 뭐 거의 외교적 결례나 마찬가지야. 또, 1621년, 명나라 황제가 새로 들어섰다는 걸 알리러 온 사신도 마찬가지였대. 그때도 무려 8만 냥이나 되는 은을 싹 거두어 갔거든. 정말이지, 거의 횡포에 가깝지 않아? 그런데도 왜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 사신이 요구하는 그 많은 양의 은을 순순히 내줬을까? 잠시 명나라 사신과 조선 관리가 나눈 이야기를 잘 들어봐.


“임진왜란 때 우리 명나라가 군대까지 보내 조선을 도와줬으니 마땅히 조선은 명나라에 진 빚을 갚아야 하오! 그렇지 않소?”

“네, 어찌 명나라의 큰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그리 하겠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국토는 황폐해졌지, 백성의 삶은 피폐하지, 나라 곳곳은 복구해야지 뭐,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야. 쉽게 말해 나라 살림이며, 백성들 세간이며 모두 궁핍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힘들었단 말이지. 그런 처지였건만 예를 중시한 조선은 임진왜란 때 군사를 보내온 명나라에 대한 신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어. 그래서 명나라 사신이 요구하는 은을 달라는 대로 다 내준 거야.


자, 비슷한 시기에 명나라의 사신이 예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봤으니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볼게.


임진왜란으로 그토록 어려운 상황임에도 일본으로 떠난 조선의 통신사는 일본이 주는 예물만은 받지 않으려 한 거야. 사실, 거기에는 단순히 오랑캐 나라라서 받지 않으려 한 이유 말고도 또 다른 까닭도 있어.


과거에 중국과 조선은 조공무역을 해왔잖아. 종주국인 중국에게 조공으로 예물을 갖다 바치면 중국은 조공국에게 그 못지않은 양의 예물을 보내야 했거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중국한테 우리는 적게 주고, 많이 받아왔잖아. 그러니 돈벌이가 되는 장사를 해왔다 이 말이야. 그런 관계 즉, 마치 중국이 조선을 대하듯 조선은 일본과 그런 관계를 맺고 싶었던 거지. 그러면 어떻게 돼? 조선이 일본보다 높은 상국이 되잖아. 그러니 상국인 조선의 외교사절단으로서 일본에 더 많이 주면 줬지, 일본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은 거야. 그런 탓에 통신사가 오간 초기의 조선 사신은 일본에서 접대를 받는 것조차 꺼렸어. 그런데 하물며 예물까지 받는다면 상국의 사절단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고 여겼거든. 그래서 한사코 쇼군이 주는 예물을 받으려 하지 않은 거야. 그런데 명나라 사신의 경우에서 보듯 받아도 그만일 텐데, 그지? 그만큼 명분이 중요했던 거지. 적어도 일본을 상대로 해서는 말이야.


또 다른 이유도 있어.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오간 사신이 바쿠후가 주는 예물을 많이 받아왔다고 해서 조선 조정에서 뒷말이 많았거든. 왜 오랑캐 나라로부터 그런 걸 받아왔냐, 원수이자 오랑캐인 일본에서 온 은과 예물로 임진왜란의 상처를 씻는다면 그게 어디 말이 될 법한 소리냐, 선비이자 유학자인 통신사 사신으로서 그런 재물에 혹한다면 어찌 되느냐 등등 무척 시끄러웠어. 그러니 사신들도 골치가 아프지. 그들이 나눈 대화를 한번 들어볼까.


“쇼군이 준 은의 양이 엄청난데, 그것을 나라에 바쳐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궁궐을 새로 짓는 경비로 쓰고, 남는 것은 은을 좋아하는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데 쓰도록 하면 어떨까요?”

“아니, 오랑캐 나라인 일본 쇼군이 주는 예물은 상국인 우리 조선이 받아선 안 되는 예물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 형편이 어렵다 하여 그것을 덥석 받아서 조정에 갖다 바치면 조선의 체면이 뭐가 됩니까?”

“자, 싸우지 말고요, 우리가 받은 은자 6천 냥과 금으로 만든 병풍 30면을 쓰시마에 줘 버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애쓴 쓰시마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고, 우리도 상국의 체면을 살린 명분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신은 논의 끝에 쇼군으로부터 받은 은자 6천 냥과 금 병풍 30면을 정말로 쓰시마에 줘버렸어.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말이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쓰시마는 통신사로부터 받은 은자 6천 냥을 부산 왜관으로 도로 보내왔어. 쇼군의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프다는 생각을 한 건지, 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 그러자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두고 또 한바탕 갑론을박이 펼쳐졌어.


“전하! 소신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예물을 받지 않은 것은 다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서입니다. 원하옵건대 쓰시마가 다시 가져온 은자를 물리치옵소서! 통촉하여 주옵소서!”

“경들의 뜻은 잘 알겠소.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뭐 있겠소? 이왕 받은 돈이니 그 은자로 궁궐을 새로 짓는 데 쓰도록 합시다!”


어때? 신하와 임금의 생각이 전혀 다르지? 당시 조선의 왕은 광해군(1575~1641)이었어. 광해군은 나라가 어려울 때 이것저것 다 따지다간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은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궁궐을 새로 짓게 했대.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일본은 궁궐을 새로 지을 만큼 엄청난 양의 은을 조선에 주었단 건데, 대체 그 많은 은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그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군자금으로 쓰려고 오사카성에 쌓아두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은을 도쿠가와 바쿠후가 1615년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없앤 뒤 빼앗았기 때문에 가능했어. 조선으로 쳐들어와 우리 강토를 피로 물들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자금으로 조선의 궁궐을 새로 지었으니 이럴 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어쨌건 일본에서 주는 예물을 두고 고심하기는 1636년 통신사 사신도 마찬가지였어.


“가는 곳마다 우리를 반기는 대접이 화려해지니 이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오! 우리한테 이토록 잘해주는 것을 보면 분명 일본 쇼군이 명령을 내린 것이 틀림없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듯 반가이 맞아줄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일본의 속셈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를 접대하는데 성의를 다한다는 것은 조선의 체면을 세워 주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오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기품을 잃어선 안 될 것이오. 그러니 일본으로부터 남은 양식과 반찬은 모조리 되돌려주라고 단단히 이르도록 하시오!”


그러나 통신사 접대를 맡은 일본 각 지역의 다이묘 쪽에서는 남은 양식과 반찬을 되돌려받는 즉시 은으로 계산해 보내왔어. 하지만 사신은 끝끝내 그 은을 받지 않았지. 에도를 떠나올 때는 남긴 양식과 반찬이 얼마나 많았던지 바쿠후에서 아예 금으로 바꾸어 사신에게 보냈어. 그러니 사신은 또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 거야.


“참 곤란하구려! 쇼군이 보낸 돈을 그냥 아랫사람에게 주자니 체면이 구기는 일이고, 그렇다고 돌려보내려니 그것도 걱정이고……. 대체 어떡하면 좋단 말이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쓰시마에 이 금을 가지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쓰시마에 쇼군으로부터 받은 금을 가지라 했으나 쓰시마는 바쿠후의 눈치를 보느라 받기를 꺼렸어. 그러자 세 사신은 이 금을 대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궁리하다가 마침내 결정한 거지. 즉, 나고야의 하마나 호수 가까이에 있는 이마기리강(금절하)의 얕은 여울에 이르러 금을 물속에 던져 버리기로 한 거야.


“금을 물속에 던질 때 쓰시마 사람이 다 알게끔 한 뒤에 던지는 거요! 그러면 쓰시마에서는 밤을 새우는 일이 있더라도 몰래 그 금을 가져갈 것이오!”

“그건 좀 아깝지 않습니까? 우리 조선도 경제가 어려워 돈이 무척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쇼군으로부터 책망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요! 우리가 금을 버리더라도 첫째, 이미 바쿠후로부터 금을 받았으므로 바쿠후의 체면은 충분히 섰으니 바쿠후와 갈등이 벌어질 이유가 없소. 둘째, 우리 처지로 보자면 마땅히 상국의 사신으로서 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의젓함을 보여줄 수 있으니 그 또한 괜찮소! 셋째, 게다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궂은일을 하는 쓰시마에 따로 금을 챙기도록 한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참 대단하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금이나 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데 한몫을 하잖아. 그런데 그걸 그토록 의연하게 하천에다 던져버렸으니 생각도 못 할 일이지. 정말로 금 보기를 돌같이 한 거잖아! 그래서일까 훗날 그곳을 지나는 조선의 사신들은 그 행위에 경의를 표하고, 심지어 일본인조차 조선 사신의 그 높은 기개에 탄복했다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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