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겨울나기
‘슬기로운’이라는 단어를 참 오랜만에 직접 써본다. 오래된 해외 생활로 한국어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잊고 있었던 단어를 다시 찾은듯한 느낌. 적어도 나에게 슬기롭다는 단어는 새롭게 다가온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 단어의 뜻은 이렇다고 한다.
사물의 이치나 주어진 상황 등을 바르게 판단하여 일을 잘 처리하는 재능이 있다.
겨울이 되니 날씨와 겨울이야기로 나의 이야기가 많이 제한되고 있는 느낌이다. 또 이번 겨울은 갖가지 이유로 몸이 아프기까지 한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슬기로운 겨울생활이
더욱 절실해진다.
사전의 정의에 따라 우선, 주어진 상황을 바르게 파악하자니 이곳의 겨울은 춥고, 어둡고, 활동량이 적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상화이다. 따뜻할 수 있는 것 찾아낼 것, 어둠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 많은 사람을 만날 순 없지만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 등을 생각하며 나름의 슬기로운 겨울 생활을 준비해 본다.
저도 슬기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겨울을 이미 수도 없이 지내 온 이곳 사람들은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서 겨울나는 법들을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이라는, 복지국가라는 모든 게 주어진 것만 같고 다 가진 것만 같은 이곳도 정녕 완벽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그래도 공평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삶이 질이 높고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이곳 사람들도 다 가지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햇빛과 날씨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더욱더 차분해진다. 다 가진 자처럼 콧대를 세우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불평의 불을 지피기보다는 작은 것에 몰입할 거리를 찾고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정한다. 그 반응은 꽤 긍정적인 것들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이곳에서의 최대 명절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것 사람들은 겨울을 슬기롭게 보내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더욱 확대해서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진짜 전나무를 사용하는데 밖에 두고 꼬마전구를 달아두면 적어도 몇 달은 어두운 겨울밤을 밝힐 수가 있다. 1월의 깊고 어두운 겨울이 오기 전에 12월은 에너지를 모아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그 과정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휘게(Hygge)중 최고의 휘게
슬기로운 겨울 생활의 한 일환으로서 휘게의 처음의 시작은 아니었을까? 큰 것보다는 작은 것, 해야 할 일이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에 대한 불평보다는 있는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몇몇을 모아 놓은 것이 휘게인 것 같다. 휘게 중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끼고 즐기는 율르휘게(Julehygge 크리스마스 휘게라는 뜻) 휘게 중에 최고의 휘게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식에서 슬기로운 겨울나기 방식들이 보인다. 그 구체적인 예들의 몇 가지는 이렇다.
도시를 빠져나와 교외의 작은 농장들은 이 시기가 되면 크리스마켓으로 변신을 하여 겨울 손님들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은 차에 트레일러를 연결해서 실내를 장식할 크리스마스트리 쇼핑해 운반해 간다.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사용되는 상록수과의 구상나무 농장에 직접 들어가서 원하는 나무를 결정할 수 있다. 몇만 그루의 나무 중 원하는 나무 하나를 고르면 직원이 와서 나무를 잘라 운반까지 해준다. 보통 이런 크리스마스트리들은 1-2미터 정도가 많이 사용된다. 솔향을 가득 머금은 푸른 나무는 겨울의 시간을 잠시 푸름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땅바닥에서 뒹굴며 올해는 끝났다고 널브러져 있던 전나무 솔방울들도 긴급소집되어 휴일 동안 단기 알바로 인테리어를 담당해 내어야 한다. 바닥에 꺾어져 떨어진 솔방울 가지들을 한움춤 모아 집으로 데리고 온다. 담당 임무는 자연적인 느낌으로 꾸밈없는 듯 창가에 포즈를 취하고 않아있거나 너무 강하지 않은 은은한 자연의 솔향을 머금은 듯 뿜어주는 것. 쓸모없이 보이면 절대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쓰레이통 행이다.
12월 되면 전국에 숨어 있던 금손들이 모여 재능들을 뽐낸다. 여러 종류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먼지를 털고 나올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인기 있는 종목은 귀엽고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핸드메이드 제품들이다. 핸드메이드 장식들과 소품들로 크리스마스 마켓은 가득 찬다. 재료를 보는 눈, 그리고 집접 만져보는 촉감을 통해 잊고 있었던 즐거움이 올라온다. 손노동을 통한 가벼운 몰입은 추위와 어둠을 이기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모여 문에 걸 크리스마스 화환을 함께 만들며 율르휘게의 시간을 가진다. 일 년 중 한 번쯤은 어른들도 가위와 여러 가지 장식들을 꺾고 붙여가며 손을 움직이면 잊어버리고 있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의 문짝을 잠시는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평소에는 합리적인 선택과 실용정을 강조하는 이곳 사람들이지만 크리스마스 때에는 귀여운 것들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든 것들을 집합시킨다. 작은 인형들은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하는 장난감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동화와 환상이 필요하다. 나만의 세계가 아닌 요정들의 세상을 상상하며 우리는 행복도 상상하기가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요정들아 나의 세상에도 좀 놀러 와 줄래?!
긴 겨울의 초입에서 겨울을 잘 지켜내 볼 수 있는 힘을 좀 얻고 싶었다. 복잡하기만 하던 생각들 큰 목표들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커피 한 모금도 그 따뜻함과 진한 향을 진심을 다해 느껴보고 전나무 내음도 깊은숨으로 들이마셔본다. 작은 것들에 집중하며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그냥 내보내지 않는 게 지금의 내 숙제이다.
가벼운 몰입과 정겨운 나눔에 집중하며 슬기롭게 겨울을 나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