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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Aug 17. 2023

놀리지 마

김려령, 『완득이』, 창비, 2008


2010년대에 평생교육원에서 독서 논술 지도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들은 적이 있다. 멀끔한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쓰기 위해 수강 신청을 한 나를 포함해 취업을 위해, 학생들 수업을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수업을 선택한 이들이 강의실에 모였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거나 책 읽고 토론을 하거나 논술 이론을 듣는 수업이 이어졌다.


다문화를 소재로 한 책을 공부하는 날이었다. 강의계획에 있던 책을 미리 읽어 와서 수업 중 짧게 내용을 요약하고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감상을 나눴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좀 알려줘요ㅠ) 주인공은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다. 주인공 친구의 어머니가 주인공을 향해 ‘네가 백인이면 얼마나 좋겠니’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슬펐다. 다른 수강생이 그 장면을 언급하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발표했다. 수강생들의 의견은 나와 같기도 했지만 나와 다르기도 했다. 의견이 다른 이들은 영어 공부를 위해 아이의 친구가 백인이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고 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느낀 점은 다를 수 있었다. 설령 정말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공존을 주제로 수업하는 시간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조용했고 다음 수강생이 발표를 했다. 나는 책 제목도 기억 못 하면서 이 상황만 기억한다.


강사가 영화 <완득이>를 언급했고 한 수강생은 영화를 보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작 책이 너무 재밌어서 실망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였고 작가가 천재인 것 같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나도 재밌게 읽은 책이다.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는 현대 문학에서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를 대중에게 알린 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외에도 보석 같은 청소년 문학들은 계속 나왔다. 현재의 청소년들은 해마다 권장 독서 목록에서 청소년 문학의 제목들을 확인하고 있다.


2020년대에 내가 강사인 수업 시간이었다. 독서 시간도 논술 시간도 글쓰기 시간도 아닌 글씨 쓰기 시간이었다. 책 표지, 드라마 포스터,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제목을 따라 쓰는 날이었다. 나는 손글씨 느낌으로 제목을 쓴 표지이면서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자료를 찾아갔다. 그중엔 『완득이』도 있었다. 책 표지의 글씨 디자인 ‘완득이’는 세로로 쓰고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글자의 크기가 작아진다. 둥글둥글 곡선이 많이 사용되며 필압을 조절해야 하는 글씨다. 요즘의 학생들이 『완득이』를 알지 못할 것 같았지만 우선 책 표지 목록에 넣었다. 학생들이 어린이일 때 출간된 책이라 간혹 읽은 학생도 있었지만 모르는 학생이 더 많았다. 준비해 간 표지 몇 가지 중 학생들이 쓰고 싶은 것을 골랐다. 3 음절인 ‘완득이’는 적게 써도 되기에 학생들 기준에서 통과다.


‘완득이’는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하니 몇 명의 학생들이 조금 웃었다. 내가 그 책을 읽을 때도 완득이라는 이름을 또래에서 찾지 못했으니 ‘율’, ‘하’, ‘시’, ‘로’가 들어간 이름이 많은 학생들 또래에서는 더욱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다정하게 웃음을 말린다.

“야아, 이름 가지고 놀리지 마아.”

나는 자격증 수업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이 수업에서 구원받는다. 소설이 재밌다며 여러 번 읽은 나보다 읽지 않은 학생들이 내용을 더 잘 알고 ‘놀리지 마’로 요약해 낸다. 이름 가지고 놀리지 마, 인종 가지고 놀리지 마, 신체 조건 가지고 놀리지 마, 직업 가지고 놀리지 마. 놀리지 말라는 말들은 ‘차별하지 마’로 모인다. 언제 웃었냐는 듯 학생들이 진지한 자세로 책 제목을 쓴다.


같은 수업을 다른 반 학생들과 하던 때였다. 책 표지에서 제목을 따라 쓰다가 드라마 포스터에 연예인 사진이 나오니 학생들이 신난다. 작품 제목이 크게 보이면 따라 쓰기에 좋다. 나는 작품 제목은 보이면서 연예인 얼굴이 나오도록 화면을 조정한다. 학생들은 센스 있다며 나를 칭찬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나빌레라>의 포스터를 본다. 발레 동작을 취한 20대 배우를 70대 배우가 바라보는 사진에 작품 제목이 적혀 있다. ‘ㄹ’ 자가 특이하다. ‘ㄹ’을 쓰기 위해 아라비아 숫자 3과 한자로 쓰는 일(一)이 언급된다. 내가 또 화면을 조정하니 한 학생이 할아버지는 화면에 안 보여도 된다고 장난스레 말한다. 또 다른 학생이 장난을 이어받는다.

“우리도 할머니 돼~”

“미안해.”

장난을 친 학생이 사과를 한다. 지루한 내 수업 시간을 재밌게 만들려던 목적뿐이었음에도 친구의 말을 수용한다. 수업 공간에서 가장 나이 든 나보다 지혜로운 학생들의 의젓한 대화가 오간다. 학생들 생각이 맞다. 나이 가지고 놀리면 안 된다.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안다. 늙어본 적 없이 한창 자라기만 하는 이들도 나이 듦을 인지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을 보고 매체를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 유행하는 글자를 이름표에 쓴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타인의 상처를 인식한다. 타인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한 사회 제도적 노력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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