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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Jan 26. 2024

평행세계를 찍먹 하는 삶

매그 헤이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인플루엔셜, 2021

죽음을 결심한 노라가 자정의 도서관에 가서 살아보지 않았던 인생을 살아본다. 학생이 추천한 책이다. 학생도 인생을 고민했던 걸까. 새해에 동기부여를 위해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평행세계는 마블 영화의 흥행과 함께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는 다른 세계로 가는 매개체가 책이다. 노라가 선택하지 않은 무수한 삶이 책으로 도서관에 배치됐다. 노라는 책을 한 권씩 선택해 삶을 경험하고, 그 평행세계에 머무르길 원하지 않으면 자정의 도서관으로 되돌아온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 외식을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고, 식사 메뉴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볶음밥을 먹을지 선택해야 하고, 탕수육을 먹을 때 부먹이냐 찍먹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노라는 매달리스트의 삶, 빙하연구가의 삶, 록스타의 삶, 동물보호센터에서 일하는 삶 등 선택하지 않은 직업군에서 일해 보기도 하고 원래의 삶에서 헤어졌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보고, 가보지 않았던 곳에서 살아보기도 한다. 노라가 경험하는 여러 삶에서 100% 불행하거나 100% 행복한 삶은 없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인간은 노란색의 기쁨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슬퍼하고 화를 내고 까칠해지고 소심해지기도 해야 삶이 다채로워진다. 우리는 기쁜 일, 슬픈 일, 화날 일들을 겪으며 산다. 수영선수가 됐으면 지금쯤 완벽하게 행복할 것이라고 상상하곤 하지만 평생세계 속 자신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가족 관계가 나쁘기도 하고, 꿈을 이뤘으나 위험을 맞이하기도 한다. 따뜻하고 안정된 삶이지만 결핍이나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지혜로운 선조들이 인생엔 희로애락이 함께 있음을 말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 아니라 지금 삶에서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후회를 한다. 승진하면서 정규직으로 이직할 기회를 잡지 않아서 아쉽다. 체력이 약해지기 전에 근력 운동을 해야 했는데 한 살 더 먹을수록 운동하려니 힘드네. 놀기라도 적극적으로 했다면 지금쯤 인싸가 됐을까. 학교 급식에 나오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면 키가 더 컸을지도 몰라.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유학을 갔을까? 선택하지 않는 것에서만 후회를 한다. 선택한 삶에서의 기쁨과 슬픔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평행세계의 나는 무한하기에 모두 경험해 볼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지금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다. 탕수육을 먹는 취향과 상관없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씩 찍먹 하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평행세계의 나들(?)이 선택한 일을 지금의 세계에서 N잡으로 찍먹 해본다. 화가가 되고 싶은 나, 기자가 되고 싶은 나, 교사가 되고 싶은 나는 모두 지금 여기에 모였다. 내 그림을 고민하고 작은 매체에서 원고를 쓰고 강사 일로 생활비를 보탠다. 튀김은 구경도 못하고 소스 간을 보다가 그만둔 것들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십자수를 한 달 이내에 그만뒀고 에어로빅은 하루 만에 굿게임을 선언했다. 2년 공부한 시험에 낙방했고 완치를 포기한 병도 있다. 위가 허용하는 만큼 나름대로 맛집 탐방 중, 탈이 나지 않고 입맛에 맞는 집에 단골이 됐다.   

   

앞으로 몇 군데의 평행세계를 더 찾아볼 생각이다. 뭐든 상위권에 들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강박은, 다른 평행세계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겪고 아주 조금씩 무던해졌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좀 못해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도전을 무시하는 이들이 어떤 평행세계에나 있다는 것도 안다. 내 모습이 별로지만,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과 다시 선택해보고 싶은 것들 중 쉬운 순으로 찍먹 하며 삶을 지속하면 그나마 괜찮은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노라가 자정의 도서관에서 펼친 책에서 살다 보면 100% 행복한 평행세계는 없듯이, 살다 보면 100% 불행한 평행세계도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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