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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May 22. 2024

마음을 씻는 행위

김유·소복이, 개욕탕, 천개의바람, 2024


외출 후에는 바로 씻는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얼른 이불에 눕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씻을 땐 주로 불쾌했던 일을 복기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나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당시 내가 하지 못했던 말을 생각해 낸다. 본인이 실수해 놓고 오히려 분노하는 이를 보며 일하고 집에 와서 씻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욕설 없는 욕을 했다. 찝찝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거칠어진 생각으로 씻는 시간을 보낸다.


평온해야 할 시간임에도 나는 힘든 순간에 머물러 있다. 내 마음이 번뇌로 가득해 어지러운가 보다. 물리적인  씻는 행위로 마음까지 씻을 수 있다면 찝찝한 땀 없이 보송한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고 거칠한 각질 없이 반질한 마음을 날마다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든 순간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개욕탕은 개들이 목욕을 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잠든 밤, 개들이 개욕탕을 찾아온다. 투덜거리는 얼룩 개, 찌푸린 털북숭이 개, 한숨 쉬는 할머니 개, 꼬마 개에게 눈을 부릅뜬 엄마 개의 표정은 즐겁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개들은 신발 네 짝을 벗고 무거운 짐도 내리고 씻을 준비를 한다. 신발장 벽에는 ‘마음까지 씻고 가 개(그림)’라고 쓰여 있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목욕탕일 때 주인 할머니도 ‘마음까지 씻고 가라’고 말한다.


같은 작가들이 2022년 낸 『마음버스』와 『개욕탕』은 형식을 같이 한다.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에 곰과 개가 등장하는 의인화 방법을 사용한다. ‘마을버스’는 ‘마음버스’가 되는 음운의 변화와 ‘목욕탕’이 ‘개욕탕’으로 되는 음절 변화로 언어유희가 생긴다. 사람들은 마음버스를 타고 소통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개들이 개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목욕 후 요구르트를 마시며, 마음에도 꽃이 피고 빛이 난다는 주제 문장을 어린이와 꼬마 개의 입으로 또박또박 읊어준다.

나도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언어를 몇 개 바꿔본다. 개욕탕처럼 음절을 바꿔 재미를 주려니 ‘출근-퇴근’부터 생각난다. 수업에서 만났던, 이름이 변00인 학생이 활동지 이름 칸에 자신을 별00으로 쓴 반짝이는 창의성이 내겐 발휘되질 않는다. 마음에 빛이 나는 별00이와 비교하니 나의 찌든 마음이 더 칙칙해 보인다.



세수든 샤워든 목욕이든 씻고 나가고 들어와서 씻는다. 마음을 빛낼 타이밍이 자주 찾아온다. 외출도 하지 않은 날 씻기엔 아까운 마음이 들기에, 씻을 이유를 만들려면 일단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야겠다. 업무로 피로하고 사람 때문에 힘든 날은 씻으면서 나의 피로와 힘듦을 씻자고 생각하는 것이, 불쾌했던 일을 복기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매일을 보송하고 반질한 마음으로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덜 찝찝하고 덜 거칠게 지내는 건 시도해 볼만하다. 마음에 땀띠가 생기지 않도록, 마음에 각질이 쌓이지 않도록 내 마음을 씻는 행위를 찾으며 지내야겠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을 씻는 행위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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