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
-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새벽에 읽은 윤동주님의 시에서도 시인은 별을 보며 어머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인생에서 좋았던 힘들었던, 기억에 남는 장면 10가지만 생각해봐."
하고 카톡을 보냈다. 1분 뒤.
"아무 생각 안 나."
엄마에게 답장이 온다.
그러면 나는 시인님처럼 내가 엄마를 그리워했던 장면을 쓰지 뭐, 이러면서 떠올리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어렸을 때라 함은 중학교 시절인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는 엄마는 집에 계셨고 내가 나가 놀기 바빠서 9시가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나를 엄마가 찾고 다녔으니 그 시절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엄마가 일을 하셨나보다. 옆집에 사시는 보험 소장님의 권유로 보험 일을 시작하신 엄마는 학교에 다녀와서도 캄캄해져도 집에 계시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럼 나와 동생은 몇 번이나 보험회사로 전화를 했다. 아니면 계약자의 가게에 가 있는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벨 소리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지금쯤 엄마는 어디로 이동중일지...
기다리는 이유, 물론 있었다.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 돌아올 때 양손에 맛있는 통닭이라도 찜빵이라도 아이스크림이라도 들려있기를 바랬다. 엄마가 그 시간까지 애쓰는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게 전화를 걸어 늘 '00 사와.' 라고 말하는 아들이 달리 누굴 닮은 게 아니었다. "어쩜, 쟤는 뇌가 없나? 입만 있나? 엄마, 보고 싶으니까... 라는 한 구절만 넣을 어휘력이 없나?" 했는데 딱 내 모습이다. 난 나의 판박이를 키우고 있나보다.^^ 엄마는 늘 무언가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셨던 듯 하다. 실망감이 남아있지 않은 걸 보니.
그러다 어느날, 13일의 금요일밤이었다. 유난히 힘들어보이는 얼굴로 들어오셨는데 불빛 아래서 보니 엄마 발이 피로 온통 빨간 범벅이었다.
"엄마 왜 그래?"
"참, 이상하지. 맨날 다니는 길이고 뭐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졌다니까. 발톱이 깨진 거 같아. 00아, 얼른 가서 휴지랑 빨간약 좀 가져와 봐."
스타킹 올이 다 나갔고 스타킹은 피를 닦아낸 거즈처럼 떼어졌다. 오른쪽 엄지 발톱이 너무 심하게 깨져있었다. 넘어졌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다치다니? 상관관계가 전혀 예측되지 않는 중부상이었다.
"이 발로 어떻게 집까지 걸어왔어?"
"와야지. 뭐. 간신히 왔네. 너무나 아파서."
넘어짐의 원인은 13일의 금요일로 귀결되었다. 정말 괴기스러운 날이 틀림없다고 우리는 입을 모았고 어느날보다 일짝 누운 엄마는 잠이 드셨다. 나는 엄마 발을 몇 번이고 바라봤던 것 같다. 엄마의 상처가 흉해서 내 마음까지 후벼졌던 것 같다. 그 후로도 한참 오랫동안 아픈 발을 구두에 끼워넣고 엄마는 걸어다녀야 했다. 또각또각또각. 구둣발에 실린 엄마의 30대. 그러고보니 지금의 나보다 젊어서 염색을 안해도 됐던 엄마. 주름도 없었을 엄마, 그 모든 시작도 다 가능했을 엄마. 그 좋은 시절을 나와 동생을 위해 택시 대신 걸어다니며 양손에는 간식거리를 들고 또각또각또각... 엄마를 위한 건 그 무엇도 못 해 보고 한 발에는 나, 한 발에는 동생을 달고 또각또각또각....나는 또, 동생은 각, 우리는 그 시절 엄마에게 중력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장면에 가슴이 출렁, 일렁임이 잦아들 때까지 좀 기다린다. 엄마도 젊음이 불타고 있던 시간, 그 시간이 깨어났다. 엄마가 웃는다. 30대의 엄마가,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예쁘기도 한 엄마가, 4월에 새로 돋아난 연두색 이파리처럼 싱그럽게 웃는다. 나는 잊어버릴세라 엄마의 웃음을 떠올리고 떠올려 내 무의식의 방 하나에 불을 환하게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