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음식을 먹어도 순서만 바꾸어 ‘야채-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먹으면 혈당 스파이크를 막을 수 있단다. 양배추 두 장을 먹고 식사를 시작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야채를 먼저 먹는 것이 혈당과 다이어트에 있어 중요하다고 한다. 혼자 살다 보면 야채 ‘먼저’보다는 야채 ‘자체’를 먹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고군분투를 해야 야채를 썩히지 않고 알맞게 먹을 수 있다.
자취생은 야채를 싫어해서 안 먹는 게 아니다. 다양한 모양으로 썩어 나가는 야채들을 보고 나면, ‘야채가 몸에 좋은 거 알겠는데 왜 이렇게 잘 썩는담.’이라는 생각과 함께 야채를 안 사게 된다. 소분되어 나오는 야채들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양이 많은 것보다 더 비싸서 손이 잘 안 간다.
[1인 가구 야채 관리 대원칙]
1. 되도록 잘 안 썩는 야채를 살 것.
2. 샀으면 부지런히 먹을 것.
3. 야채의 특성에 맞게 보관할 것.
부지런히 먹으라는 건 한꺼번에 다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야채를 다 써버리겠다고 음식에 모조리 넣으면, 맛의 균형이 무너진다. 한 번은 버섯 리조또를 하는데, 버섯을 너무 많이 넣은 나머지 먹기가 힘들 정도였다. 혼자서 힘들게 요리했는데 맛이 없으면 그것만큼 비효율적인 게 없다. 적당량의 야채를 사용하는 게 좋다. 지혜롭게 계획을 세워 여러 요리에 집어넣어야 한다.
부지런히 소모한 야채들
버섯 과다 리조또
야채의 특성에 맞는 보관법이 다르다. 버섯은 이틀을 넘기지 않고 소진한다. 파나 고추는 얼려서 사용해도 괜찮다. 얼리지 않는 경우엔 보관을 잘해야 하는데, 진공 용기 등을 요즘 많이 쓰는 것 같다. 단출한 살림에 진공 용기는 사치인 것 같아서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 야채를 소분한다. 양파는 껍질을 벗기고 양끝을 잘라내고, 키친타월로 하나씩 싸서 냉장 보관하면 좋다. 오이나 파프리카류는 바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씻어서 물기를 잘 닦고 잘라서 보관해도 좋다.
당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야채를 좋아한다. 없어서 못 먹는다. 심지어 끈적거리는 오쿠라나 마 같이 호불호가 갈리는 야채도 좋아한다. 야채가 주연은 아니지만 숨은 감초 역할을 하는 음식들도 좋다. 떡볶이에 넣은 양배추, 밥에 콕콕 박힌 완두콩, 장조림 속 꽈리고추, 오징어 볶음에 들어 있는 양파와 애호박, 갈비찜 속 표고버섯, 생선 조림 속 무.. 주연이 아니라서 더 귀하고 맛있는 야채들을 좋아한다. 어떨 때는 스테이크보다 가니쉬를 더 많이 먹을 때도 있다. 남들이 야채에 관심이 없으면 속으로 ‘아싸!’ 쾌재를 부르곤 한다.
얼마 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보고 왔다. 5명의 배우가 극을 이끌어 가는데, 조연인 한 남자 배우가 여러 역할을 소화했다. 성별이 바뀌는데도 참 맛깔나게 연기했다. 뮤지컬에 잘 어우러지면서도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주연만이 주연은 아니구나.
30대가 되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일에 있어, 인간관계에 있어 내가 최고일 수는 없다. 사실 어디 하나에서라도 그렇게 살기가 힘들다. 그런 욕심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요즘은 주연만 주목받는 세상인 것 같다. 돈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더욱 우러러보며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왠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인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때, 서글퍼진다.
생선 조림 속 무처럼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을 꽉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 보드라움 속에 양념이 쏙쏙 배인 이 맛을, 생선 살점에만 젓가락을 내미는 이들은 모르겠지. 오늘도 나만 낼 수 있는 맛을 내기 위해 졸아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