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아이들은 미역국과 김이 키운다고 한다. 나는 된장 먹여 기른 딸이다. 평소에도 많이 먹지만, 아플 때 된장찌개가 간절하게 떠오른다. 마음이 헛헛하거나 속이 느끼할 때도 그렇다. 된장은 본가에 갔을 때 김치와 함께 품어오는 식재료이다. 시판 된장도 좋지만, 우리집에는 김치와 마찬가지로 재야의 고수들이 담근 된장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엄마의 된장찌개이다. 여건에 맞게 채소들을 넣은 된장찌개부터 우렁을 넣고 되직하게 끓여낸 된장찌개도 있다. 또 배추, 쑥, 냉이 등 제철 푸성귀들을 넣은 외할머니의 된장국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속에 자극이 가해지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한껏 올라오는 맛이다. 그래서 나도 여전히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다.
된장을 여기저기에 많이 활용한다. 된장으로 나물을 무치기도 하고, 수육을 할 때도 된장 한 스푼을 꼭 넣는다. 고기가 신선하다면 된장만 풀고 삶아도 맛있다. 최근에 먹었던 가지 덮밥도 된장을 바탕으로 소스를 만든다. 가지를 넣어서 강된장을 끓여본 적은 없는데 해보니 내가 느끼기엔 가지강된장에 밥 비벼 먹는 느낌이었다. 편애하는 마음으로 된장을 더 많이 넣었으니 원래 레시피와 맛이 좀 달랐을 수는 있다. 나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최근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된장 요리는, 새우고구마순 지짐이다. 사실 이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고구마순 껍질 벗기는 데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본가에 가면 엄마가 된장을 넣고 새우고구마순 지짐을 해주곤 한다. 밥 두 그릇은 후루룩 먹는 메뉴이다.
본가에 갔다가 엄마에게서 여러 식재료를 받아 왔다. 그중에는 껍질을 벗겨서 삶아둔 고구마순 한 봉지가 있었다. 내게는 전복보다 귀한 식재료로 느껴졌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육수를 뽑아서 역시 엄마가 싸준 새우를 넣고 지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면 엄두가 안 나는 일인데, 손질된 고구마순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 지져봤다.
<엄마표 새우고구마순 지짐 레시피>
1. 새우 머리와 몸통을 분리한 후, 몸통은 껍질을 벗긴다.
2. 새우 머리와 다시마, 멸치를 넣고 육수를 우린다. (나는 새우 머리와 코인 육수를 썼다.)
3. 껍질을 벗겨 삶은 고구마순에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 양념 : 고추장, 된장, 마늘, 참치액젓
4. 육수를 붓고, 고구마순이 부드러워지고 간이 밸 때까지 푹 끓여준다.
5. 깐 새우는 마지막 불을 끄기 전 2~3분가량만 끓여준다. (새우가 질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익힌다.)
처음 해봤지만, 집에서 먹었던 맛을 떠올리면서 만들었기에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드럽게 익어 된장맛이 잘 배인 고구마순 여러 가닥을 집어 면처럼 후루룩 먹으면 감칠맛이 감돈다. 중간중간 탱글하게 씹히는 새우의 맛이 조화를 이룬다. 우리집에서만 맛있게 먹는 건가 싶어서 남자 친구네 집에서 요리해 함께 먹었다. 남자 친구도 밥 두 그릇을 먹었다.
어릴 적 외갓집 앞마당엔 텃밭과 닭장이, 뒷마당엔 장독대와 머루가 있었다. 그때는 알알이 터지는 머루를 먹기 바빠 장독대엔 관심조차 없었다. 엄마 말로는 할머니 된장에서 향기가 났다고 했다. 직접 맡아보진 못했다. 방에서 메주를 뜨는 쿰쿰한 냄새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엄마의 말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내 로망 중 하나는 맛있는 된장을 담그는 손맛 좋은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된장찌개를 먹으면 속이 풀린다. 부대낀 마음까지도 개운해지는 맛, 용기를 주는 맛. 엄마도 할머니의 된장국을 먹으며 용기를 얻곤 했겠지. 그래서 그 향기를 더 잘 느꼈겠지. 장독에 담긴 건 말로 다 못한 사랑이었겠지.그 맛이 내게도 스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