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없고 운동도, 연애도 하지 않던 시절. 실컷 자고 일어나 맛있는 토요일 점심을 차리는 것이 한 주의 가장 큰 이벤트였다. 그럴싸한 요리를 할 줄 안다는 뿌듯함을 만끽하면서도 입이 즐겁기까지 한 즐거운 루틴이었다. 돈 벌기 시작했다고 스테이크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익힘의 정도는 제멋대로라 맛은 매번 달랐다.
어느 날은 식당에서 맛봤던 당근 퓌레를 만들고 싶어졌다. 당근 퓌레에 어울릴 멋진 스테이크도 같이 굽고 싶어졌다. 그래서 양갈비 스테이크를 구웠다. 이렇게 입맛의 흐름대로 소고기, 양고기, 오리고기, 연어 등 다양한 식재료가 프라이팬에 올랐다.
그렇게 주말 특식 요리는 꽤 오랫동안 다양하게 이어졌다.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도자기 공방에 가서도 스테이크 접시를 만들었다. 스테이크 자체는 간단하지만 알맞게 굽기가 어려웠고, 기름으로 스케이트장이 되어 버린 주방 바닥과 식기를 닦는 것이 일이었다. 그래도 이 은밀한 작은 전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요리는 가장 손쉽게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자주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아빠의 주도 하에 주말 특식으로 함박 스테이크를 함께 만들곤 했다. 내가 한 일은 기껏해야 다진 고기를 치대고, 동그랗게 빚는 일이 전부였다. 함박 스테이크가 맛있기도 했지만, 함께 요리하며 단란하게 보내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함박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아빠가 해줬던 특식들이 기억에 남는다. 주말 저녁에 함께 누워 TV를 보다가 갑자기 밥솥으로 계란빵을 구워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밥솥 카스테라인데, 우리 집에서는 계란빵이라고 불렀다. 갓 구운 계란빵을 피자처럼 조각내어 먹었다. 출출한 시간에 입안을 채우는 달콤하고 폭신한 그 맛. 음식을 요리해서 먹었다기보다는 행복을 빚어내어 먹었달까? 내 입맛을 형성한 건 엄마의 요리들이지만, 아빠의 음식은 하나의 이벤트였다. 엄마의 음식은 몸에, 아빠의 음식은 기억에 배어 있다.
그때의 기억이 주말 특식을 만드는 일은 곧 즐거움이라는 공식을 내게 남겼다. 음식에 버무려진 따스한 기억 덕분인지 솜씨는 부족하지만 요리가 주는 기쁨을 누리고 산다. 이번 주말은 뭘 요리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