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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Oct 15. 2024

소분의 기술

 자취 초보 시절, 꼬막이 세일하길래 덜컥 2kg을 샀다. 어릴 적, 엄마가 꼬막을 삶아 양념장을 올려주면 밥이 술술 들어갔었지. 그 맛이 생각나 꼬막 비빔밥을 해 먹었다. 껍질이 한쪽에 온전히 붙어 있게 하려면 한 방향으로 휘휘 저으면서 삶아야 하고, 꼬막 껍데기를 깔 때는 손에 힘을 주고 숟가락을 비틀어서 까야한다. 은근히 신경 쓸 게 많다. 엄마가 꼬막을 요리하고 있으면 하나씩 집어 먹곤 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깠던 거구나 싶다. 비빔밥엔 생각보다 꼬막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번 먹고 나니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요리한 꼬막 무침을, 먹은 것보다 더 많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식재료를 잔뜩 사서 감당하지 못한 유구한 역사가 있다. 숱한 음식물 쓰레기들을 갖다 버리면서, 혼자서는 먹는 양이 적고 집에서 밥을 아예 안 먹는 날도 많아서 잘 관리하지 않으면 음식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식재료든 이미 한 음식이든 잘 소분해서 되도록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나름 소분의 기술을 몸소 터득해 간다.


 되도록 1인분만 요리한다. 오래가는 식재료는 냉장, 금방 상하는 건 냉동실에 잘 보관한다. 대부분의 음식은 갓 만들었을 때 먹어야 맛있다. 된장찌개는 냉장고에 넣어 두고,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으면 막 끓였을 때와 맛이 크게 다르지 않다. 김치찌개는 아무리 맛있게 끓였어도 데우면 누린내가 나거나 고기가 으스러진다. 그래서 된장찌개는 여러 번 먹을 걸 끓이지만, 김치찌개는 딱 1인분만 끓인다. 이렇게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여러 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면 애초에 1인분만 만든다. 수육, 전골 같은 음식도 1인분씩만 만든다.

 식재료가 많을 경우, 용도에 맞게 다듬어 냉동한다. 국거리 소고기 300g을 사면 두세 번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나누어 얼린다. 버터는 작게 깍둑썰기해서 용기에 차곡차곡 담지 말고, 무질서하게 쌓는다. 그래야 필요한 만큼만 떼어내서 사용하기에 편하다. 청양고추 같이 조금씩만 쓰는 야채는 잘 씻어서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고, 쫑쫑 썰어 지퍼백에 보관하면 각종 요리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나의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질리지 않게 다양한 요리를 해 먹는다. 여러 번 먹어야 하기에, 질리지 않도록 메뉴를 바꿔가며 먹는다. 양배추 같이 보존성이 좋은 식재료를 사서 고기와 함께 볶음 요리, 덮밥, 샌드위치, 찜으로 먹으면 쉽게 질리지 않는다.


혼자만의 식탁을 차리는 건 누군가와 함께할 때보다 품이 많이 들면서도 얼마 먹지 못해 보람이 덜 한 일이다. 그래도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고단한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 요리는 한 만큼 맛이 나온다. 나라는 밭을 정성스레 일구는 느낌도 든다. 고단한 날일수록 소박한 밥상으로 스스로를 잔잔히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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