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쿠예라에서
스페인 쿠예라(Cullera)에 온 지 벌써 2주 차, 함께 코리빙 스페이스에서 지내고 있던 독일 친구 Don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러 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걸어서 10분 정도 나가니 펌프트랙이 나왔다. Don에게 기본적인 자세와 타는 요령을 배우고 바로 실전에 나섰다. 나의 첫 미션은 오른발로 가속을 붙이고 보드 위에 두 발이 모두 올라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조금만 삐끗해도 무게중심이 뒤로 가버리기도 하고 너무 가속을 밟아 몸이 속도를 못 따라가 넘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나가는 것을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가장 위험할 때가 몇 번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붙을 때라고 하던가. 이제 앞으로만 가는 게 지겨워져 바로 다음 레벨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이번엔 앞으로 가다 언덕을 만날 때 보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조금 테크닉이 필요했지만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언덕을 만나 뒷발을 살짝 밟아 보드 앞부분을 재빠르게 돌려야 했는데, 넘어질까 봐 겁이 나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를 했다. 실패도 넘어지는 실패가 아니라 중간에 겁이 나서 멈추는 실패였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이거 넘어지겠다는 각오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지 못할 것 같은데?' 스케이브 보드야 말로 다른 스포츠보다, 넘어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두려움을 꾹 참고 시도를 했다. 결과는 화려하게 굴러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바닥을 쿵하고 짚었더니 너무 아팠다. 무릎엔 스크레치가 났고 손바닥은 나중에 멍이 들었다. 크게 넘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바닥이 콘크리트이다보니 다치기 쉬웠다. 그 뒤에는 더 무서워져서 시도를 못하게 됐다. 결국 포기했다. 기초부터 천천히 쌓아야겠다 생각하고 직선으로 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내 인생의 많은 도전들이 스케이트 보드 같다. 금방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하지만 겁이 나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가 살짝 긁히기만 해도 바로 포기해 버리는.